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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월) 한국 순교자 7위 순교하신 날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0. 10. 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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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한국 순교자 7위 순교하신 날
 
 

        *9월 20일은 聖 김대건 안드레아와 聖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103위님들의 순교일에 개별 등재하고 있으므로

                       일괄 등재는 줄입니다.

 

    남경문   베드로   포청옥   1846.09.20
 
    한이형   라우렌시오   포청옥   1846.09.20
 
    우술임   수산나   포청옥   1846.09.20
    임치백   요셉   옥사   1846.09.20
 
    김임이   데레사   포청옥   1846.09.20
 
    이간난   아가타   옥사   1846.09.20
 
    정철염   가타리나   옥사   1846.09.20

 

 

         

 
 
 
 
 
聖 남경문 베드로님
 
관련성지 포청옥 순교일 1846.09.20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남경문님은
 20세 때 교우 처녀 허 바르바라와 혼인하였는데,
큰 병에 걸려 대세를 받고 회복된 뒤 회장이 되시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하여 석방되고 나서는
첩까지 거느리고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김대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다음 과거의 죄를 보속하고자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으며, 교우들에게 순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임성룡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남경문님은 금위영(禁衛營)의 군인 신분이었으므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유혹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마침내 9월 20일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 한이형 라우렌시오님
 
관련성지 포청옥 순교일 1846.09.20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이형님은
14세 때 교리를 배워 입교하시었다.
21세 때 혼인한 뒤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 마을로 이사하였고,
정직하고 헌신적인 성격과 뛰어난 덕행,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인정받아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46년 7월 말에 포졸들이 은이 마을을 습격하리라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을
피신시킨 뒤 혼자 집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포졸들에게 심하게 매를 맞고 서울로 압송되시었다.
 
 
압송될 때 이미 상처투성이의 몸이어서 포졸들이 그를
말에 태워 가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신 예수님을 본받고자
백 리가 넘는 길을 맨발로 끌려갔다.
포청에서도 심한 형벌을 이겨 내고,  
9월 20일 마지막으로 곤장 70대를 맞은 뒤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48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女 우술임 수산나님
 
관련성지 포청옥 순교일 1846.09.20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난 우술임님은 15세 때 인천의
한 교우와 혼인하여 남편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828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뻔하였으나
해산이 임박하여 두 달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 나왔는데,
그 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남편을 여의고 1841년 상경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다가,
과부인 순교 성녀 이간난님과 함께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김 신부의 집에 있던 여교우들은
이간난님의 집을 거쳐 새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이 때 이간난님도 함께 피신하시었다.
 
 
결국 우술임님은 혼자 남아 이간난님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시었다.
 
9월 20일에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몸으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 임치백 요셉님
 
관련성지 옥사 순교일 1846.09.20
 
 


‘군집’(君執)으로도 불리던 임치백님은
한강변의 한 부유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0년에 천주교를 알았으나 입교하지는 않았고, 천주교와 천주교인을
호의적으로 대하기만 하였다.
1846년 5월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으로 가서 천주교인이라 속이고 자수하시었다.
며칠 뒤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곧 세례를 받아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9월 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고,
6명의 교우와 함께 4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시었다.

 
 
 
 
 
 
 
 
聖女 김임이 데레사님
 
관련성지 포청옥 순교일 1846.09.20
 
 


동정 순교자 김임이님은 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이미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뒤 신앙 생활에 전념하시었다.
 
 
20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오빠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 순교 성인 이문우님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에서 5년 동안 살다가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당시 회장이었던 현석문님은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는데,
7월 11일에 포졸들이 새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하여 현석문님, 이 아가타님, 정철염님 등과 함께 체포된 그는 9월 20일,
매를 심하게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36세에 순교하시었다.
 
 
 
 
 
 
聖女 이간난 아가타님
 
관련성지 옥사 순교일 1846.09.20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 아가타님은 18세 때 혼인하였다가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우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현석문님, 김임이님, 정철염님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시었다.
 
 
 
 
 
 
聖女 정철염 가타리나님
 
관련성지 옥사 순교일 1846.09.20
 
 


정철염님은 경기도 수원(水原)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포천의 어느 양반집 하녀로 들어갔는데,
주인집 가족 가운데 한 교우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시었다.
 
 
20세 되던 해 동지날 미신 행위에 참여하라는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였다가
혹독한 벌을 받았고, 이듬해 봄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자
서울로 피신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았다.
 
 
1845년에는 김대건 신부 집에 하녀로 들어갔고, 이듬해 김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0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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