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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금) 한국 순교자 6위 순교하신 날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0. 10. 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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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한국 순교자 6위 순교하신 날
 

103위중에서 9월 한 달 동안 33위님이 순교하셨으며,

           9월 3일에 다음의 6위님이 순교하셨습니다.

                           

                   박큰아기 마리아   서소문 밖   1839.09.03

                   권희 바르바라      서소문 밖   1839.09.03

                   박후재 요한         서소문 밖   1839.09.03

                   이정희 바르바라   서소문 밖   1839.09.03

                   이연희 마리아      서소문 밖   1839.09.03

                   김효주 아녜스      서소문 밖   1839.09.03

 

 聖女 박 큰아기 마리아님 

     


박큰아기 마리아님은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궁녀인 동생
박희순님<서소문 밖 형장에서 같은 해  5얼 24일에 먼저 순교하심>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839년 4월 15일 동생과 함께,
피신해 있던 순교 성녀 전경협님의 집에서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동생 박희순님이 순교한 지 100여 일이 지난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4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시었다

 

聖女 권희 바르바라님

순교 성인 이광헌님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순교자>의 어머니인 권희님은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을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을 권면하여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수차의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특히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 냈다.  이렇게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 박후재 요한님

 

‘명관’으로도 불리던 박후재님은 경기도 용인 지방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성장하면서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도와 짚신과 미투리를 팔아 생활하였고, 36세 때 교우 처녀와 결혼하였다.
 
1839년 5월 아내를 피신시키고 혼자 체포된 박후재님은 포청에서치도곤 40대를 맞는 가혹한 형벌을 당하였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하게 흘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또 흉악한 죄수들에게는 천주교의 바른 도리를 강론하였다.
 
이어 형조로 이송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박후재님은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41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女 이정희 바르바라님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난 이정희님은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순교 성녀 이매임(李梅任)님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동생 영희(英喜)와 함께 입교하였다.   <위 전 가족이 순교하심>

 

그 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틴 뒤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님과 이광헌님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당시 이매임님의 집에 머물던 김성임(金成任), 김 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동생, 고모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님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임을 밝혔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41세에 순교하시어었다.
 
聖女 이연희 마리아님 
이연희 마리아님은 순교 성인 남명혁(南明赫)님의 부인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사리에 밝았다. 회장인 남편을 도와 공소(公所)를 세워 주교와 신부를 맞아들이고 또 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준비하며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 열두 살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하며 모정을 억누르고 자신도 혹형과 고문을 감수하였다.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3차의 형문을 받았으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36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女 김효주 아네스님
언니 김효임(金孝任)님과 같이 동정 순교자인 김효주님은 서울 근교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뒤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로 이사해 살았다. 아버지를 여읜 뒤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하여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언니 김효임, 동생 김 클라라와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아름다운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5월 3일 언니 김효임님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잔인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형조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1839년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4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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