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
사제로 수품 되기 전, 주교님과 함께 가졌던 피정 마지막 밤 주교님께서는 함께 수품 될 동창 신부와 저를 부르신 후 순명과 독신 서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신 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천천히 읽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경의 믿음대로 살고 교우들에게도 그 믿음을 가르치라 하시며, 또 서명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
그날 밤, 이 믿음의 신앙문을 읽어 내려가던 저의 눈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신앙고백 한 단락 한 단락 믿음의 내용 때문에 2000년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고통과 죽음의 길을 걸었는지…. 이 믿음의 내용 한 소절 한 소절에는 그야말로 피와 눈물이 흥건히 젖어 있는 순교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 같은 거룩한 순교의 믿음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에 저같이 부족한 이가 사제로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죄스럽고, 송구스러우며, 감격스런 감동의 눈물이 흘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때마다 고백하는 이 믿음의 내용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이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든, 그 한 소절에는 순교의 처절한 믿음 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소중한 신앙의 가르침을 오늘도 말없이 실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하고 사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본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를 세우시고, 죽음의 십자가로 그 교회의 반석을 견고히 하신 예수님의 교회 사랑에 우리도 열정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진정 당신의 몸과 성전을 동일시하였던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교회 역시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된 불협화음이 있었고, 또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세상 많은 종교들 가운데 사랑과 존경의 인정을 받게 된 데에는 교회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던 많은 분들의 눈물어린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지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 분명히 보았습니다.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요한 2,17)
십자가를 살아라
2007년 10월, 한국 개신교 신학자들의 모임인 목회 사회학 연구소에서 2006년 그들의 포럼 자료를 엮어 출간한 책 ‘그들은 왜 가톨릭 교회로 갔을까?’에는 개신교 신자였던 이들이 가톨릭으로 신앙을 바꾼 이유를 여러 가지로 꼽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신비적 이미지의 전통적 전례’였습니다. 우리 가톨릭의 미사를 비롯한 여러 전례가 장엄하고 신비적인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쉼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을 주기 때문’ ‘묵상을 하는 종교’ ‘약자들의 피난처가 되는 교회’ ‘외부 요인에 대한 발 빠른 융통성,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보편 교회로서의 결속력이 있는 교회’ ‘성직자, 수도자들의 청렴성, 교회 재정의 투명성’ ‘정의와 인권 등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 등을 꼽았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장점으로 꼽히는 이 같은 이유 등은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신학자들의 깊은 성찰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양심 한켠에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은, 과연 우리가 남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그 장점들을 그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남들은 우리의 장점을 알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가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자신 없는 대답이 나올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여러 전례를 지루하고 지겨워하였고, 쉬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더 높은 담을 쌓았으며, 묵상 보다는 많은 소란과 혼란 속에 살았고, 약자들 편에 서기 보다는 있는 자, 권력에 기대기를 좋아하였고, 외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보편 교회로서 결속력은커녕 교구와 교회의 이기적인 골이 더 깊었으며, 성직자 수도자들은 날로 사치와 부유함이 늘어났고, 정의와 인권과 사회봉사에는 눈을 돌리고 화려한 성전의 치장에 급급하였습니다.
이 모든 거짓과 성전을 상술에 이용하려는 악행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노의 채찍을 드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진실로 당신 희생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실로 우리의 거짓된 위선을 뉘우쳐 회개하는 시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