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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십자가의 끝은 영광된 부활/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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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십자가의 끝은 영광된 부활/배광하 신부
사순 제2주일 (마르 9, 2~10) : 그의 말을 들어라
발행일 : 2009-03-08 [제2638호, 17면]

아브라함의 순명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의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은 모든 믿는 이들의 표양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됩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땅, 낯선 민족들과의 두려운 만남, 사랑하며 정든 땅을 떠나야 했던 모든 애착과 미련을 버리고 아브라함은 길을 떠납니다. 그 때에는 그래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인 안전과 수많은 자손들을 약속해 주셨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늘그막에 겨우 얻게 된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는 아무런 축복과 약속이 없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처럼, 땅의 먼지만큼 많으리라던 자손의 약속은 사라지고 자신의 후손을 잇게 할 하나밖에 없는 이사악을 죽이고 대를 끊으라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인생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겪을 때, “하느님! 왜?”라는 눈물과 탄식의 언어를 쏟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절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 34)

우리는 예수님의 이 탄식의 말씀 이전 겟세마니의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

예수님께서도 고통스런 십자가만은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당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십니다. 그분의 뜻을 따를 때,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지만 그 고통의 너머에는 분명 주님의 섭리와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끝에 죽음이 아닌 부활이 있었고, 이사악을 죽이라시는 하느님의 명령 뒤에 이사악의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이든, 단련이든 그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과 의지가 약하다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의 섭리를 굳게 믿도록, 당신께서 제 인생을 더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

우리는 분명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시련을 이기고 새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보다 더 큰 시련 속에 사시면서 하느님 약속의 말씀에 희망을 사셨던 수 많은 신앙인들은 이를 끝없이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 32)

예전 민주화 운동 때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주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달픈 생애에 또다시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에 문승현님의 ‘그 날이 오면’을 묵상해 봅니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십자가가 끝내 십자가로 끝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우리는 결코 믿을 수 없고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끝은 부활이기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순이 결국 고통의 사순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순의 끝은 영광된 부활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을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변모 직전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를 제자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스승의 말씀에 세상 영화와 영광을 꿈꾸었던 제자들의 희망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실망과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뒤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영광의 변모입니다. 이 같은 희망을 살기 위하여, 이 영광의 변모에 우리 또한 동참하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뒤에 울렸던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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