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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심판하기보다 용서하기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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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심판하기보다 용서하기를/배광하 신부

연중 제10주일 (마태 9, 9~13)
발행일 : 2008-06-08 [제2602호, 6면]

- 하느님 마음을 아는 예지 -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홀로 남겨 질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마지막 말씀에서 오시게 될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예수님께서 떠나신 큰 빈 자리를 성령께서 다 채우시리라는 뜻밖의 약속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빈자리를 채우실 성령의 일을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 8).

우선 먼저 죄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일을 바로 잡아 깨우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죄에 대한 개념이 바뀌게 됩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나, 남을 속이는 사기, 윤리적인 타락 등의 죄가 아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 큰 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께서 망나니 같이 사는 사람들을 꾸짖으실 때 자주 쓰는 말씀은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이놈아!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큰 죄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니 그 같은 끔찍한 죄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는 믿는 이들에게도 크나큰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허울 뿐, 일상의 삶에서는 하느님께서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방탕과 혼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은,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너무도 미약하고 겉치레뿐인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에 오늘 호세아 예언자는 절규합니다.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호세 6, 4).

어쩌면 나와 내 집안에 크나큰 시련이 올 때 더욱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뜬 구름과 이슬 같아서 그 때에는 하느님을 멀리 하다가 오히려 평안할 때 주님을 찾게 되는 이중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믿음과 신앙을 살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것, 그 마음을 파악하고 헤아릴 줄 아는 것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습니다. 더구나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를 잊지 않고 그가 그토록 바랐던 소망을 살아가는 삶은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1).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온갖 편견과 자신의 판단에 얽매어 있었던 그릇된 삶에서 빠져 나오는 것, 그리하여 우선 먼저 남을 단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마지막까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소망이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단죄하였던 이들과도 하나가 되는 일, 기피하고 등 돌리고 싶었던 이들을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읽는 것, 그 마음에 함께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같은 신앙의 가장 큰 핵심은 남을 단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크고 작은 실수로 잘못을 행하였을 때, 남의 관대한 용서를 받으면, 무언가 잔뜩 움츠렸던 굴레에서 해방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 기쁜 해방을 남들에게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자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간절히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 37).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게 되면 우선 자신이 상처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상처는 상처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됩니다.

그것을 끊어 버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와 상처의 고리를 끊어 버리신 분,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더 이상은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가운데 자신이 얽매이거나 또 다른 상처를 받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유인, 해방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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