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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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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배광하 신부

연중 제12주일 (마태 10, 26~33)
발행일 : 2008-06-22 [제2604호, 6면]

- 흩어진 것을 모으시는 주님 -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는 서기 50년 경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노예였는데 주인에게 심하게 맞아 다리를 절었습니다. 노예로 로마에 보내진 그는, 그곳에서 네로의 해방 노예인 에파프로디토스에게서 고용살이를 하였습니다. 같은 노예였던 에파프로디토스는 그를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며 괴롭혔습니다.

에픽테토스는 그와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같은 노예로 주인에게 깊은 상처를 겪었으면, 자신이 주인의 위치에 있을 때는 그 같은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들은 자신을 저주하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해치게 됩니다. 그 같은 상처의 악순환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체험하였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는 치유 받지 못한 상처들 안에서 미움의 고리를 끊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분단의 아픔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같은 상처의 아픔과 미움이 통일된 민족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전에 TV에서 어린이 병영 체험에 관한 내용을 시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었을까 싶은 어린이들에게 총을 쥐어 철조망을 통과하는 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분명히 북한 병사로 만든 모형물에 총을 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승리하였다고 고함을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넘어 비애가 몰려왔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증오를 먼저 배우며 살았던 것이 우리네 세대였는데, 아직도 저 짓을 하고 있구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만큼은 전쟁의 증오가 아닌 평화의 힘을 가르쳐야 하는데 또다시 미움의 상처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 또 그 같은 모습에 모든 어른들이나, 교육 당국에서 조차 침묵하고 있는 것이 슬펐습니다.

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의 아픔을 사는 것은 외세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들 스스로에게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화와 사랑을 살아야 할 모든 신앙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신명 30, 2~3).

이제 통일의 길을 하느님 평화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원한과 격분을 버리십시오

우리 민족의 분열은 분명 외세에 의한 분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열도 우리의 일치된 힘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분열은 분명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배 세력에 의한 것이지 외세의 간섭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수많은 무관심과 침묵하는 종교인들, 지식인들, 기득권을 쥔 자들의 비겁함이 통일의 길을 더 많이 돌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때문에 배운 자들이, 가진 자들이, 믿는 자들이 조국의 이 같은 아픔의 현실에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평화와 화합의 통일된 조국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희생과 투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으로 익숙한 ‘홍세화’ 선생은 자신이 조국을 위해 악역을 맡은 이의 슬픔을 지더라도 마지막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습니다.

“프랑스 친구가 건네준 해묵은 잡지에는 한 노인의 사진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1930년대 후반, 스페인의 좌파들과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코에게 쫓겨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했다. 프랑코의 독재는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었고, 2만 명이 넘는 스페인 사람들이 프랑스 땅에서 기약 없는 망명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속절없이 세월은 흘렀다. 10년, 20년, 30년…, 청장년들은 노인이 되었고, 하나 둘 동지들 손에 의해 남의 땅에 묻히기 시작했다.

흰 수염을 날리는 잡지 속의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기억만으로 평화로이 눈감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 되어 남북이 부둥켜 안고 부를 노래는 진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노래는 용서가 있어야 부를 노래,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릴 때(에페 4, 31)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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