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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 예수님 안에서 참기쁨, 자유 누리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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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 예수님 안에서 참기쁨, 자유 누리자/배광하 신부

연중 제11주일 (마태 9, 36~10, 8)
발행일 : 2008-06-15 [제2603호, 6면]

- 수확할 밭의 일꾼들 -

지상에서 천국을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크리스찬’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라는 말에 접미사 ‘~ian’이 붙여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좋은 의미의 뜻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복음을 전해 교회 공동체가 탄생되었던 그 옛날 안티오키아에서는 죽은 예수라는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전하고 있는 사도들을 분명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안티오키아 사람들의 눈에는 사도들이 얼마나 밥 먹고 할 일이 없으면 부활이라는 허망한 것에 빠져 세월을 낭비하고 있을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 같은 생각에 붙여진 이름이 ‘그리스도 밖에 모르는 덜 떨어진 인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나쁜말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를 쫓아다니는 떼거지들’, ‘그리스도의 똘마니들’이 될 것입니다.

예부터 우리네 어른들은 ‘이름값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예수쟁이’입니다. 예수님 밖에 모르고, 그 이름 때문이라면 가족도, 직업도, 생명까지도 내놓을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따르며 사셨던 선배 신앙인들은 모두 이 같은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예수가 밥 먹여 주냐?’라는 조롱이든지, ‘예수한테 미친놈들’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신앙을 지키신 분들이셨습니다. 자신들이 받아들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이름을 세상이 비웃어도 결코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이름이 자신들을 구원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더욱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도록 신명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에 뜨거운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체험한 바오로 사도는 이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 7~8).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 같은 넘치는 사랑을 지상에 살면서 천국을 만들고자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하느님 추수 밭의 일꾼들입니다.

예수님 마음을 닮은 일꾼들

예수님께서는 오늘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태 9, 36).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 하느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이들, 그분의 사랑을 모르고 사는 불쌍한 인간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시는 애끓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이 같은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호세 11, 8).

인간이 너무도 불쌍해 애간장이 녹으시는 하느님의 사랑, 이 마음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이며 연민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같은 사랑의 마음이 모든 사람을 당신 품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추수밭의 수확할 일꾼들은 이 같은 예수님 마음을 닮은 일꾼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마음은, 모든 인간들이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기죽어 살거나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여 살지 않고 참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이것을 독일의 영성가이신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성생활의 목적은 인간 구원이고 해방이다. 그리스도인은 외부로부터 받는 고통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세상이 아닌,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하느님께서 만든 사람,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진실로 자유롭다. 이것이 성경의 기본 복음이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체험이다.”

이 같은 자유를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다가갈 줄 아는 일꾼들이 이 시대에는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먼저 자신들이 세상에 얽매여 살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참다운 기쁨과 자유를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 이 지상의 삶을 자유와 해방을 위한 축제의 삶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그 축제의 장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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