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07) 순명·희생으로 완성되는 사랑/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54

본문

 

(607) 순명·희생으로 완성되는 사랑/배광하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 22~40)
발행일 : 2009-01-01 [제2629호, 6면]

사랑합니다

바보같이 로마에 유학을 떠난 어느 여학생의 글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로마 시내에서는 방을 얻기가 어려워 여학생은 시내 외곽에 방을 얻어 기차로 통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마치고 기차를 이용해 집으로 가는데 기차 안의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들로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졸고 있거나,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기차가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갑자기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타더라는 것입니다. 기차에 오른 청년은 이내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책을 보고 있어?” “왜, 잠만 자?” “신문에 무슨 기사가 났어?” “누구하고 통화를 하는 거야?” 그러면서 놀란 사람들의 대답을 자기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읽고 있대.” “아빠, 신문에 이런 일이 생겼대.” “아빠, 이 사람은 여자 친구가 있대.”

그 순간 고요한 정적이 감돌던 기차 안은 모두 청년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고 술렁거림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청년은 아버지에게 오줌 마렵다고 소리를 쳤고 아버지는 청년을 데리고 기차에 딸린 화장실로 데려가 용변을 보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마치고 손을 씻은 청년은 기분이 좋았는지 또다시 기차 안의 승객들에게 다가가 비누로 씻은 자신의 두 손을 내밀며, “맡아봐! 냄새 좋지?” 하며 일일이 냄새를 맡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기차 안은 폭소가 터졌고 모두가 연실 청년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학생은 그 글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주변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정적만이 감돌던 기차 안은 머리가 부족한 청년 한 명으로 인하여 이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사랑은 계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이기겠다는 욕심으로는 완성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속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사랑은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고 순수한 관심의 배려입니다. 이것이 사라지고 있기에 많은 가정의 행복이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용서가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감사가 사라지는 가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서 이 같은 아름다운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이름은 스스로 허물을 벗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부의 이름은 사라지고 ‘여보’와 ‘당신’만 남는 거랍니다.”

사랑은 내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이미 늦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의 사랑은 바로 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라늄 꽃의 꽃말은 “그대가 있기에 행복이 있네”라고 합니다. 가족 한 명 한 명을 예쁜 꽃으로 생각하여 지금의 있는 그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있어, 네가 있어 행복해”라고 말입니다.

쑥스러워하며 입안에 웅얼거리고, 생각만으로 말하지 않고 내일로 미루다가는 영영 그 아름다운 말을 가족이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시린 가슴의 상처로 영원히 남을 수 있습니다.

세속의 한해가 마무리 되는 오늘 교회는 세상의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을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오늘날 모든 가정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닮으라고 가르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부모님에게 하신 자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카 2, 51).

예수님은 분명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계산적이지 않고 바보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사랑을 사셨습니다. 성모님 역시 이기적인 삶이 아닌 희생의 사랑을 사셨습니다. 그분의 순명과 자기 헌신이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완성된 것입니다.

요셉 성인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로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바보스러움의 희생이 나자렛 성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 12).

진정 사랑으로 한 해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