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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낮은 곳에서 태어난 구원의 왕/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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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낮은 곳에서 태어난 구원의 왕/배광하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 1~12) 당신을 드러내 보이심
발행일 : 2009-01-04 [제2630호, 6면]

낮은 자로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을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구세주의 모습을 처음 본 동방의 박사들 눈에 비친 예수님은 화려한 궁궐도 비단 이불도 아닌 초라한 구유에 누운 연약한 아기였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작은 이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 51~53).

예수님 오실 길을 닦았던 세례자 요한도 작은 자의 모습을 먼저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은 가장 작은 고을이었습니다. 가장 작은 고을에 방 한 칸 없이 마구간 구유에 뉘이신 작은 아기가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의 왕이셨던 것입니다.

사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입니다. 빵집 마을에 동물들 ‘빵통(구유)’에 누우신 예수님께서는 훗날 스스로 가장 작은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빵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 교황으로 ‘magnus(大 : 위대한)’ 교황으로 불리는 ‘대 레오 교황’(440~461년 재임)은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 박사들이 새로운 별빛의 인도에 따라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을 때 그들은 그분께서 마귀들에게 명령하신 일, 죽은 이들을 부활시키신 일,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신 일, 절름발이들을 걷게 하신 일, 또 신적 능력을 가지고 기적들을 행하시는 일 등을 보지 못하였고, 단지 어머니의 보호 하에 내맡겨진 채 조용하고 평온히 쉬고 있는 한 아기를 보았을 따름이었습니다. 그 아기 안에는 아무런 권능의 표지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놀라운 겸손의 모습만 보였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겸손의 스승이며 무죄함의 거울이며 양순함의 표본이 되는 어린이의 모습을 사랑하십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처음 세상 사람에게 보이신 것은 ‘낮추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게 살라하신 것입니다.

넓은 자로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은 가장 넓은 자로서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2000년 전이라는 시간과 아스라엘이라는 작은 공간과 유다인이라는 인종의 틀에 얽매어 계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종의 틀을 깨뜨리시는 영원한 인류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넓은 가슴에 모든 이가 모이고, 그 가슴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더 넓은 가슴으로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더욱 각박한 숨 막히는 세상으로 만드는 주된 요인은 작기 때문입니다. 보고 있는 시야도 작고, 마음 씀씀이도 작고, 나눔도 작고, 신심도 작고, 사랑도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신동엽’ 시인은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란 시에서 좁고 작게 사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누리 보일거예요. 잡답(雜踏)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 뿐이에요. /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높아만 보세요. 온 역사 보일거예요. /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 밭이었음을 눈뜰 거예요. /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 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 밭 부딪칠거예요.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온 세상의 보편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 가장 넓은 자로서의 모습을 보이신 이 예수님을 이미 먼 옛날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 6)

이를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더욱 확실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 12~1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넓음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우리 역시 넓게 살라 하십니다. 좁고 편협됨 속에 옹졸하게 사는 것을 가장 싫어 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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