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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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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배광하 신부

대림 제4주일 (루카 1, 26~38)
발행일 : 2008-12-21 [제2628호, 6면]

-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

감추어진 신비

이 같은 질문과 답이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드십니까?”

“인간들이 품고 있는 시기와 증오와 질투를 드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느님께서는 늘 교만한 자, 높은 자를 내치시고 겸손한 자, 낮은 자를 들어 올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제일 슬퍼하십니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잊을 때 가장 슬퍼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뜻도 바로 이와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우리 인간들이 집착 속에 늘 품고 지내는 시기와 증오와 질투, 그것 때문에 일생을 괴로움 속에 사는 가련한 인간들의 얽매인 사슬을 끊어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언제나 소외와 억눌림 속에 잊혀진 가난한 이들, 핍박받는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 멸시받는 이들, 한마디로 낮은 자를 들어 올리시고, 그들이 떳떳이 기를 펴며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교만한 인간들이 저 잘난 양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느님 따위야 하며 그분을 가슴과 생각에서 지우며 살 때, 다시금 당신께서 현존하신다는 것, 지금 우리와 함께 여기, 이 땅에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신비, 우리는 이 신비의 신앙을 2천 년 전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도 언제나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셨던 분, 오실 분이 아니라, 지금 계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오셨던 주님의 탄생을 다시 한 번 기뻐하며 그 신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고, 앞으로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을 희망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진정 성탄은 화해와 용서이며, 낮추임의 겸손과 자기 비움이고, 오신 주님의 현존을 굳게 믿는 축제인 것입니다. 양육강식의 세상, 저마다 자신이 높아지려는 아귀다툼의 이기적 세상에서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이 같은 낮아짐의 기적을 오시는 주님께서 분명히 이루신다는 것이 성탄의 신비이며 기쁨인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밝힙니다.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로마 16, 25)

우리는 다만 이 성탄의 무궁한 신비의 힘을 믿고 마리아의 대답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태어날 아기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께서는 분명 쉬실 집도, 머리 누일 자리도 없으셨습니다. 철저한 비움, 낮추임, 가난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셨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소외되고 박해받는 이들이 기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구세주인 표징은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소박하고 가난한 모습의 표징이라고 루카 복음사가는 증언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 12)

이 같은 가난과 겸손의 낮추임이 끝내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자유와 해방을 이룰 수 있고 그곳에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가난의 위대한 이 아기를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풀어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9, 5)

결국 가난과 낮추임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세상 어떤 지혜와 지식으로도 따를 수 없는 놀라운 경륜가이시고, 세상의 그 어떤 권력과 통치로도 따를 수 없는 용맹한 전지전능의 하느님이시며, 우리 곁에 우리가 친근히 부를 수 있는 보호자인 아빠, 아버지,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기쁨의 하느님께서 오늘 작은 아기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이 기쁨을 대림시기 찬미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창생이 죽음으로 멸망할세라 자비의 사랑으로 굽어보시어 죄인들 구원의 길 가르치시며 기진한 이 세상을 구원하셨네”

이 같은 영광과 평화의 길을 비천한 인간에게 보여 주셨기에 우리는 오늘 천사의 환호를 함께 외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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