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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조건없는 사랑으로 가능한 평화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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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조건없는 사랑으로 가능한 평화 / 배광하 신부
남북통일 기원미사 (마태 18, 19ㄴ-22) : 용서, 우리가 살 길
발행일 : 2009-06-21 [제2653호, 10면]

반드시 해야 할 일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저항하였던 많은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은 독일군에게 붙잡혀 끔찍한 고문 끝에 처형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붙잡혀 온 사람들 중에는 평범하게 지내며 조용히 살다가 잡혀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이 절규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항운동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순순히 죽음을 기다리던 구석의 저항운동가가 울부짖는 사람을 향하여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죽어 마땅한 것이오. 전쟁은 5년 동안 계속되었고,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무참히 피를 흘렸으며,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어 잿더미가 되었고 조국과 민족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도대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진정 무서운 경고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조국도 벌써 반세기가 지나도록 갈라져 있고, 수많은 이산가족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데, 무심한 세월은 쏜살 같이 흘러 이제는 헤어진 가족의 얼굴조차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제 남과 북의 가족들은 하나둘 땅의 먼지로 천추의 한을 안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쪽은 배부름 속에, 북쪽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서로를 향한 증오의 살기만 쌓아가고 있는데, 사랑과 용서를 외치는 신앙인들은 이 모든 저주의 세월을 나 몰라라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죽어 마땅한 일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남녘과 북녘의 고통 받는 동포들을 위하여 쓰고 또 써도 남을 돈들을 쓸모없는 전쟁의 소모전을 치루기 위해 끊임없이 쏟아 붓는 현실에 우리가 눈을 감고 있다면, 그것이 죽어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세월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희망과 작은 의지와 기도마저 사라진다면, 그것이 벌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그 나태함과 무관심으로 받게 될 징벌을 피하고자 또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남과 북의 위정자들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고, 바꾸도록 애써야 합니다.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 행동해야 합니다. 서로가 소통할 길을 뚫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능력과 한계로 불가능해 보이는 이 통일의 염원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사랑으로 해야 할 일

창세기의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로 팔려 갑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갈 때, 요셉이 형들에게 울부짖는 모습이 지금 이 땅에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가 얼마나 형들에게 통곡하며 살려 달라고 하였을까? 카인과 아벨에게서 보듯, 요셉과 형들에게서 보듯, 또는 이 나라 이 땅에서 보듯이, 모든 인류의 전쟁과 살인은 형과 아우의 혈육의 전쟁이고, 피붙이들의 살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살육의 전쟁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용서뿐입니다.

요셉은 피눈물 나는 고통과 슬픔 속에 이집트 파라오 왕 다음가는 재상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때 형들이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건너와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요셉은 증오의 한 맺힌 형들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현자 요셉, 착한 요셉의 증오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가 형들을 용서하는 장면은 실로 감동입니다. 그는 신하들을 모두 물러가게 한 뒤,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큰 소리로 목 놓아 웁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이집트 전역에 들렸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창세 45,1-2). 요셉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수많은 아픔의 세월 때문에 목이 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을 용서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울었을 때, 이미 그에게는 환희의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울음소리였을 것입니다.

이제 진정 기도해 봅니다. 요셉의 용서의 기쁜 울음소리가 이 땅에도 울려 퍼지길 말입니다. 남과 북의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용서하며 부둥켜 한 몸이 되어 그동안 막힌 증오의 한을 강물 같은 울음으로 모두 뚫어 버리길 주님께 간청해 봅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할 때, 이유와 조건 없이 사랑할 때,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이 민족, 이 땅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신명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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