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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 “너희는 내게 먹을 것 주었느냐”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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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 “너희는 내게 먹을 것 주었느냐” / 배광하 신부

연중 17주일(요한 6, 1-15) : 나누어 주어라
발행일 : 2009-07-26 [제2658호, 10면]

밥상 공동체

민중 신학자로 불리는 ‘안병무’(1922-1996) 박사는 그리스도교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모이는 공동체’와 ‘보내는 공동체’로 구별할 수 있는데, 갈릴래아의 공동체는 보내는 교회였습니다. 특히 지도층이 곳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 공동체는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거기서 어떤 계층성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상은 예수님과 민중이 식탁을 함께 하는 얘기가 많은 것과 특히 마르코 복음에 5000명을 나누어 먹이는 예수님 이야기(6,30 이하)와 또 한 번은 4000명을 나누어 먹이는 이야기(8,1 이하)가 기록된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4복음 사가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는 이 기적 이야기에서 특별히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 사가의 증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입니다. 가엾은 마음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러한 사랑의 나눔은 바로 예수님과 같은 측은지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많은 수해가 났을 때 수재민을 돕기 위한 TV 모금 운동의 예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방송국에서는 수해의 처참한 현장을 보도한 뒤 수재민들의 울부짖음을 화면에 내보냅니다. 그러면 그같은 슬픈 현장을 목격한 시청자들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수재민들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 빵의 기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군중에 대한 가엾은 마음, 그리고 먹을 것이 있는 이들의 나눔, 모두가 십시일반 나누게 되자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어쩌면 빵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으로 우리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다면 그 기적은 예수님에게서만 그칠 일회성의 기적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결코 그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뒤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엾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 나눌 수 있는 진실한 빵의 기적, 늘 연속성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기적을 가르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 이전에 당신께서 혼자 하시지 않고 함께 기적을 이루자는 뜻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실천하는 삶에서

사랑은 너와 내가 서로를 부르며 대답하는 영혼의 목소리입니다. 고독한 생의 여정에서 서로의 고독한 자리, 고통의 자리, 굶주림의 아픔을 함께 채워주고, 달래주고, 나누는 관계입니다. 사랑은 뜨거운 만남입니다. 그같은 사랑을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 6,2).

사실 빵의 기적은 나눔의 기적과도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세상심판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기도에 열심하였는지, 성당에는 얼마나 잘 다녔는지, 우리가 세상에서 직업이 무엇이었고 성당에서 직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묻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렇게 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내가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느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와 주었느냐?”(마태 25,35-36 참조)

A.F.I.(국제 가톨릭 형제회)의 일원으로 1962년 한국에 온 프랑스의 ‘콜레뜨 누아르’는 오늘 빵의 기적 복음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서에 무려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바로 초대교회가 거기에 부여했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분명코 바로 거기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기주의를 부수고 깊은 나눔을 체험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자기완성으로 가는 데는 이런 나눔의 좁은 길밖에 없다. 인간은 남에게 내주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것은 유일하게 좋은 인간관계다.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는 것, 그것은 퇴보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군중을 먹이고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해 스스로를 양식으로 내주실 수 있었던 것은, 사막에서 겪은 유혹에서 돌을 빵으로 바꾸기를 원치 않으셨고, 당신 혼자 배를 채우기를 거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빵의 기적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실천하며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또한 당신의 나눔을 본받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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