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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모두 내어놓을 때 영원한 삶 있다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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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모두 내어놓을 때 영원한 삶 있다 / 배광하 신부

연중 20주일(요한 6, 51-58) :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발행일 : 2009-08-16 [제2660호, 10면]

맛보고

참으로 많은 분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세상이 온통 캄캄한 암흑의 절벽 같다는 아픔을 쏟아냅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을 때 더욱 답답한 가슴을 쓸어냅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끝까지 희망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장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여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대학에 들어가서도 사회의 변혁과 신앙, 인간 본질의 문제로 늘 고민하며 아파했었다고 합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쓰린 가슴으로 살았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어두운 곳에서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라도 희망을 일구어 보려는 장하고 아픈 꿈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마지막 일기엔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 있었다고 합니다.

“지복이로다. 지복이로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모든 예수님이 이 내 한 몸 위해 온 마음을 내니 모든 산 사람 중에 이 한 몸 지복이로다. 엎드려 경배하노니 모든 우주의 이치로 그 베품에 곱절 더하여 받으소서. 달이 차면 이울고 이우면 다시 차나니, 생과 사도 이와 같아 마음 한 자락 봄바람에 거칠 것이 없어라. 보름달 빛 타고 계곡물 흘러 어두운 밤을 씻어 내리도다.”

실로 가슴 아픈 글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생을 살다 천국 본향의 아버지 집으로 떠난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에 죽음은 있을지라도 신앙인의 삶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머물던 자리의 이동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확신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슬프고 짧은 생을 아파하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욱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실로 우리는 지존하신 하느님의 몸과 피를 이 지상에서부터 맛보았던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를 통하여 감미로운 그 맛을 이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생명주는 살아있는 빵이여, 제 영혼 당신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깨달아라

이탈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세계 문학사의 시성으로 대접 받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그의 대표적 작품인 「신곡」에서 이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쓸쓸한 벌판을 지나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기 위해 걸었네, 하늘은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별들을 보여주며 우리 영혼을 감싸고 있건만 우리의 눈은 오직 지상의 것에만 쏠려 있었으니, 오랜 세월동안 눈물로 간구해 온 평화, 기나긴 금단을 풀고 천국 문을 여는 평화, 그 평화를 지상에 알리러 온 천사가 거기 눈앞에 살아있는 것처럼 새겨져 있었네.”

단테의 말처럼 우리의 고통은 어쩌면 온통 지상의 것들에만 목표와 눈을 돌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행복에 이르는 참 평화의 길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셨건만 세상 집착과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려 천국의 문을 볼 수 없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오늘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을 주님께 듣는 우리 모두에게 사도 성 바오로는 다시금 이야기 합니다.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에페 5,15-17).

진정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우리는 신앙의 삶 안에서 너무도 깊이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감각의 맛에만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는데, 그것만을 찾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삶,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 때 영원한 생명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살과 피를 온전히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을 오늘 예수님과 사도 성 바오로는 ‘깨달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과 육적인 것만을 쫓다 보면 그 길은 고통이며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살과 피를 모시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게 되면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같은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살고 계시는 앞서 가신 성인 성녀의 삶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 잠언의 현자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잠언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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