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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살아온 모든 날이 은총입니다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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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살아온 모든 날이 은총입니다 / 배광하 신부

연중 16주일(마르 6, 30-34)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발행일 : 2009-07-19 [제2657호, 10면]

좀 쉬어라

벨기에 출신의 법학·철학 박사인 ‘쟈끄 러끌레르끄’(1891-1971) 신부는 바쁘고 빠르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가한 사람보다 더 바쁜 사람은 없습니다. 지치고 지쳐서 이젠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소리 안 하는 사람 하나라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쉬는 걸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그런 이들의 삶은 쓸데없는 근심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지금, 잠시만 있어 보십시다. 그러고는 멈추어 보십시다. 요가의 도사들이 말하듯 숨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어지러움을, 이 모든 소란을 그쳐 보십시다. 우리 영혼의 평화를 찾으십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랑이 내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다. 가이 없는 사랑이 이 세상에 깃들어 있지 않은들 우리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지치고 바쁜 우리들에게 착한 목자로서 이렇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바쁜 일상사에서 우리는 자주 영혼의 참된 의미를 잊고 삽니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빠른 시간과 세월 속에 넋을 놓고 영혼 구원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 앞서 주님 안에서 참 평화를 사셨던 성인 성녀의 삶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들은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비롯된 바쁨과 소란을 벗어 놓았기에 비로소 주님 안에 참 평화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초대교회의 교우들 역시 세상을 버렸기에 참 평화와 기쁨, 진정한 나눔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가 나누고 사랑하며, 신분의 높낮이를 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었던 초대교회의 행복한 모습과는 달리 오늘날 교회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바로 ‘구원에 대한 체험’일 것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세상을 초월할 수 있게 만들었고,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와 해방, 평화의 기쁨을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바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초월하여 구원의 기쁨을 살았기에 여유로울 수 있었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평화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시키셨음을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3-14).

목자 없는 양들

세상 모든 종교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전통적인 기능과 물질적·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기능인 세속화된 기능, 즉 기복신앙입니다. 둘 다 무엇인가 인간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기능인 것인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주님으로부터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세상의 온갖 질곡의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 등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먼저 알고 계셨고, 그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수많은 고통은 씻은 듯 낫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가엾은 우리에게 오시어 같은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며 또다시 힘을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얼마나 우리가 힘들어 하는지, 얼마나 우리가 지쳐 있는지, 얼마나 외로워하는지를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 같은 위로의 말씀을 거듭 들으면서도 우리는 늘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조금 힘들면 쉽게 포기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것들로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향한 원망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살아온 모든 날들의 발자국이 그분 은총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위로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우리에게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하여 또다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예레 23,4).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늘 화답송의 말씀을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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