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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회개의 증표는 나눔/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11. 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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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697) 회개의 증표는 나눔/ 손용환 신부

연중 제31주일 (루카 19, 1-10) : 예수님과 자캐오
발행일 : 2010-10-31 [제2719호, 10면]

복음은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자캐오입니다.

그는 세관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키가 작았기 때문에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자캐오야.”(루카 19,5)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얼른 내려오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기쁘게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도 부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성체를 겸손하게 모시고 성체의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체의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눔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자캐오는 예수님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남에게 횡령한 것을 네 곱절로 갚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모신 우리는 예수님과 무엇을 약속하겠습니까?

요즘은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배고플 때 원조를 받아서 넉넉해졌다면 이제는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으로 넉넉해졌다면 이제는 하느님께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드러납니다. 내가 나눔을 실천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자캐오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순간,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눔보다는 질투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캐오가 예수님을 집에 모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투덜거렸습니다. “저 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루카 19,7)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단지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원합니다. 이런 이기심이 의인과 죄인을 갈라놓게 하고, 편 가르기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으니, 예수님도 죄인이군.”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마음을 돌립니다. 이내 구원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편 가르기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를 구원에로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루카 19,9) 바꾸어 말하면 의인이든, 죄인이든, 모두가 하느님의 자손이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 이것이 그분의 소명입니다.

자캐오는 돈 때문에 그분을 저버렸고, 그래서 그분께서 자캐오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자캐오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눔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구원을 얻었습니다.

자캐오는 나눔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시기로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나눔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동전 기부함에 기부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무료급식소에 쌀을 갖다 주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홀로 사는 노인에게 연탄을 배달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사회복지시설에 과일을 선물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도 그분 앞에서는 이른 아침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를 그분께서 사랑하시어 소중히 여기셨으니, 우리도 회개하여 부족한 이웃들을 소중히 여깁시다. 회개의 증표는 나눔입니다. 나눔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구원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지금 당신은 기쁘십니까?


손용환 신부 (원주교구 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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