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98) ‘부활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적다’/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11. 8. 19:51

본문

 

복음생각] (698) ‘부활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적다’/ 손용환 신부

연중 제32주일 (루카 20, 27-38) : 부활 논쟁
발행일 : 2010-11-07 [제2720호, 10면]

부활이 있을까요?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부와 권세를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풍요로움을 이대로 영원히 유지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죽음뿐입니다. 죽음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습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루카 20,27-33)

예수님의 답변은 간단명료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4-36)

예수님께서는 저 세상은 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과 저 세상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은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율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2마카베오 7,2) 그래서 일곱 형제가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숨을 거두면서 한 말들은 한결같이 부활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베오 7,9)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베오 7,14)

하지만 요즘은 하느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어린이 미사 때 아이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곱 형제가 하느님의 법을 지키려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순교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니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돼지고기보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더니, 한 아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도 돼지고기 먹잖아요.” 저는 정곡을 찌르는 그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저도 순교보다는 돼지고기를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주님, 그냥 돼지고기를 먹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고해성사를 보고 회개하겠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는데 제가 죽길 바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요? 문제는 풍요입니다. 물질의 풍요 때문에 우리의 정신이 죽었습니다. 오늘날처럼 물질의 풍요를 누린 시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하느님을 과소평가한 시대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는 부활도, 영생도, 구원도, 예수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이는 것에 올인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과 권세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습니다. 보이는 것은 결국 모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은 사람들 중의 하나는 아닌지요? 또 우리도 부활을 위해 살지 않고, 물질을 위해 사는 어리석은 사람 중의 하나는 아닌지요?


손용환 신부 (원주교구 안식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