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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악인과 원수 = 자신이나 이웃/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2. 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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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12) 악인과 원수 = 자신이나 이웃/ 최인각 신부

연중 제7주일 (마태오 5, 38-48) 원수를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가르침 중 세상의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원수'(怨讐)라는 낱말에는 원한(怨恨)과 복수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나에게 준 상처가 이미 가슴 깊이 새겨져 있고,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죽도록 미운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쉽게 다가오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며,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네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과 '원수'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악인', '원수'라고 하면, 우리는 '나쁜 사람'이나 '상처를 준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달리 '악인'이나 '원수'를, '불쌍한 사람'으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하신 말씀을 묵상하고 있으면, 남의 뺨을 친 사람은 정신이상자이거나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재판을 걸어 남의 속옷을 가지려는 자는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과, 무언가를 달라고 하고 돈을 꾸려고 했던 이들은 정말 곤궁에 빠져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참으로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이나 '원수'를 '나쁜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보지 않고, '불쌍한 처지에서 ~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 악인과 원수는 바로 나 자신이었고,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악인'으로, '원수'로 여겼던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그들의 악인이고, 원수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인과 원수 = 자신이거나 이웃'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예수님께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은 바로 '불쌍한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주어라.'라는 말씀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신 주님 말씀이 더욱 이해가 갑니다.

몇 해 전,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으로, 사회전체가 온통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그 가족들이 많이 아파하였습니다. 어느 날 강론 중, "여러분 가운데 그 범인의 구원을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신 분 계십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딱 한 분 손을 드셨습니다. "그럼, 상처받은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분은 계십니까?"하고 물었더니 많은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도와 회개가 필요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저 역시, 예전에는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하고 손해를 끼치며,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쉽게 욕을 하곤 했습니다. 더욱이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가 나오거나, 운전 중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욕이나 거친 말을 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복이 필요한 사람은 선인과 의인보다는 불쌍한 사람(악인과 원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나가도, 길가다 누군가 넘어져도, 누군가 싸우는 모습을 봐도, 교통사고가 난 것을 볼 때도, 누군가 내 차를 추월해도, 좋지 않은 뉴스를 들을 때에도, 누군가 욕을 하는 것들을 들어도,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을 빈다. 그때마다 변해있는 제 자신을 보며 대견스러워합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선인과 악인, 사랑하는 사람과 원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며,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인각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학생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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