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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영성의 음치 치유하기 위해 /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11. 2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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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46) 영성의 음치 치유하기 위해 / 최인각 신부

연중 제31주일 (마태 23, 1-12) 위선자의 삶 청산
발행일 : 2011-10-30 [제2768호, 10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어릴 때부터 음치(音癡)였던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보좌신부 시절, 어린이 미사 중 대영광송 음을 제대로 잡지 못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느라 한동안 미사를 진행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음악을 좋아하는데, 왜 음치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노래 부르는 연습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적 영향, 남들이 노래할 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따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려는 가장된 노력 등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음정·박자·가사·관중 무시, 자아도취에 빠져 지금의 음치가 된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때에 진땀을 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겉꾸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고, 좋게만 보이려는 위선적인 삶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이처럼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산다면 최종적으로 알맹이가 없는 삶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제가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부르긴 하지만, 결국 음치인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음치인 제가 미사나 기타 행사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는 신부이기 때문에 대체로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곳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성가를 따라 합니다. 그것도 성가 책은 보지 않으며, 입은 움직이지만 자신없이 끝까지 어물어물 따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학생처장이기에 성가 책을 보지 않고, 노래를 안 부르는 친구들이 누구인지 둘러보며, 지적할 학생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또 눈을 감고 학생들이 부르는 성가를 떠듬떠듬 따라 하며 자아도취에 빠집니다. 도중에 성가 소리가 작거나 음정, 박자 등 뭔가 이상하면 다시금 눈을 떠 그 원인을 찾습니다. 성가대의 소리가 작다는 것, 반주가 틀린 부분, 어느 부분의 박자가 틀린 것, 노래를 부르지 않는 학생, 분심 중에 미사 참례하는 학생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지적하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저는 전례와 성가에 대해 선생이 되어 있는 듯 우쭐해 합니다. 가장 많이 지적당하고 배워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학생들의 문제점만 바라보며 지도하려고 나서는 선생님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은 학생들보다 더한 음치이면서 말입니다. 이처럼 음치인 제가 학생들의 음악 교사라도 된 듯 행동하면서 저 자신을 꾸미는 이유 중 하나는 ‘전례와 성가에 문제가 있다’라고 다른 신부님들이 지적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치 저의 능력이나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학생들만은 저와 같은 음치를 만들지 않겠다는 좋은 의도도 있지만, 그 안에는 위선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전례가 좋았다.’ ‘성가 소리가 크고 아름다웠다.’ ‘잘 지도했어. 수고했어.’ 등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대부분 학교 전례를 끝내고 나면, 저 스스로 만족해하며 뿌듯했었습니다. 저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가를 제대로 부르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만 부담을 주었으며, 스승이라고 자부하며 영광스럽게 드러나는 일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영성 생활에도, 사제로서의 삶에도 이런 위선적인 모습, 영성의 음치, 인성의 음치, 사랑의 음치의 모습이 많이 배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깊은 성찰을 통하여 묻은 때를 털어버리고, 진정으로 배우는 자세로 겸손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금 시작할 것을 다짐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저와 같은 모습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위선자의 삶을 청산하고 영성적인 음치의 치유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바라며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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