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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과 마음 /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11. 2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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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47)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과 마음 / 최인각 신부

연중 제32주일 (마태 25, 1-13) 차세대 리더의 상(象)
발행일 : 2011-11-06 [제2769호, 10면]

오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이번 주 복음생각의 주제를 ‘준비’로 해야지 맘먹고 있는데, 마침 매사에 준비가 철저한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그 친구의 성격이 꼼꼼해서 그런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대원들의 모습을 어쩌다 볼 때면 그들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모자를 쓰고, 단복 위에 스카프를 매고, 가슴에는 몇 개의 배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무언가 달라 보이며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준비’라는 표어를 갖고 활동한다고 합니다. 스카우트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항상 준비 상태에 있게 하려고, 마음과 신체를 단련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의 이런 교육과 봉사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범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차이는 바로 ‘준비’에 있습니다. 신랑과의 만남, 혼인 잔치, 첫날밤에 대한 기대 등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설랬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설렘, 희망의 기다림은 열 처녀 모두 비슷했겠지만, 이들의 준비성은 서로 달랐습니다.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과는 달리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라는 소리에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불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라고 대답하며, 매몰차게 그 부탁을 거절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힙니다. 기름을 사러 갔던 처녀들이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청하지만, 주인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려주시며,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니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은 오히려 슬픔과 절망, 아픔과 불행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생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을 밝힐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꿈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지혜를 쉽게 만나고’,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이며’,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라고 하면서, ‘지혜는 자신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지혜는 자신을 찾고 알아보며 만나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상냥하게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준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준비된 이들에게 온전히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과 그 뜻이 통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교훈적인 가르침입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황이 된 후, 오래된 유골(遺骨)을 머리맡에 두고 지내셨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자신의 죽음과 그 뒤의 일을 미리 염두에 두고 사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커다란 방향을 설정하시고, 인류에게 쇄신의 빛을 선사하려 했던 그 힘은 바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염두에 두고 사셨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덧없음’과 그 덧없음 너머의 세계를 찾고 갈망하며 사셨기 때문에, 인류와 교회에게 덧없음 너머의 커다란 문을 열어주시며 밝은 빛이 들어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차세대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 유골을 머리맡에 두고 사셨던 삶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기름을 준비하며 살았던 차세대 리더의 모습이며, 슬기로운 처녀의 삶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위령성월을 지내는 우리 모두,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시는 하느님’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진정한 지도자, 슬기로운 처녀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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