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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경하드립니다, 어머니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1. 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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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55) 경하드립니다, 어머니 / 장재봉 신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 16-21) 순명·겸손·사랑·믿음의 삶
발행일 : 2012-01-01 [제2777호, 10면]

새해 첫날, 하늘에서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위한 잔치가 한창이겠지요. 천국 가족들께 세배를 올린다 생각하니, 새삼 삶의 매무새를 살피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말씀은 명절마다 봉독되는 특별한 성경 구절입니다. 요점은 대사제 ‘아론과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축복해 주면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분의 사제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상대에게 복을 빌어주는 행위가 그분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이며 원하고 바라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 싶은데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야말로 세상을 지키는 힘이며 은혜를 부르는 통로이며 그분 사랑을 전하는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제2독서를 읽는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아론 사제의 축복으로 한껏 고무된 우리에게 한 술 더 떠서 듬뿍, 축복을 보태주고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당시 갈라티아 교인들이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고 교우들을 ‘교란시켜’ ‘복음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답답하고 애가 타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렸을 바오로 사도를 생각하니, 낼름 받아넘기기가 쑥스러웠습니다. 우리 안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을 또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은총 안에서 불러주신 분’을 ‘그토록 빨리 버리고’ 돌아서는 우리 모습에 마음이 뜨끔했기 때문입니다(갈라 1,6-7 참조).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그분의 것을 외면하고 그분 길을 따르지 않는 천방지축인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 자녀의 긍지’를 추스르도록 ‘하느님 상속자의 자존감’을 되살리도록 호소하는 그분 사랑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이 좋은 날, 그분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되레 근심덩어리가 되어 있는 우리를 향한 딱한 시선이 따갑더라는 얘깁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그저 교회 주위를 어슬렁대는 군중의 모습으로 지낼 뿐이라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 아드님의 영’을 아프게 할 뿐이라는 질책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서 한참이나 동떨어진 생각으로 주님 말씀의 주변에서 서성댈 뿐이라면 그분의 자녀가 아니라는 따끔한 일깨움입니다. 말씀이며 생명이며 빛이며 은혜이며 진리이신 그분을 믿는다면서 그분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아픈 외침을 깊이 새깁니다.

우리는 그날 외양간으로 찾아갔던 목자들처럼 특별한 일을 목격하고 놀라워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뜻을 찬양하고 찬미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풍요와 성공에 매달려 땅의 생각과 가치관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너무나 쉬이, 바르지 않아도 빠른 길을 택합니다. 눈앞의 이익이 있는 것만을 그분의 축복인양 오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공을 위해서 가장 빠르고 잽싼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디어도 그분께서 이르신 바른 길을 고집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여 헛되고 헛된 세상의 방법에 흔들리지 않고 응하지 않는 배포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약한 존재,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후에 하느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단 한 말씀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그분의 약하고 낮고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길을 묵묵히 따르신 성모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당부하셨을 뿐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이렇듯 높고 영광스런 칭호를 얻으신 이유는 바로, 아무도 몰라주던 그분 심정을 오직 믿음으로 동행하며 꿋꿋하게 살아 준 마리아의 진심에 감격하신 결과라 믿습니다. 시골 처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등극되신 엄청난 신분상승은 그분을 낳은 혈연 덕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그분의 뜻을 겸손과 순명과 사랑과 믿음으로 채워 산 삶의 결실임을 믿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느님의 부탁을 기억하고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새기며 살아가는 단순한 삶이야말로 완덕에 이르는 첩경임을 일깨움 받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실천하며 지내는 삶이야말로 주님께 바치는 최고의 경배이며 봉헌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께 ‘신앙이 많이 자랐구나’라는 덕담을 듣고 ‘믿음이 몰라보게 컸구나’라는 성모님의 칭찬을 듣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축원해 드립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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