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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묵묵히 자기 소임에 충실한 삶 /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12. 1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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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52) 묵묵히 자기 소임에 충실한 삶 / 최인각 신부

대림 제3주일(요한 1, 6-8. 19-28)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세
발행일 : 2011-12-11 [제2774호, 10면]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누구요?”하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사제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구네 아들’, ‘무엇하는 사제’, ‘마음이 어떠한 사제’, ‘영혼의 상태가 어떤 사제’ 등으로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 대답은 나에 대해 긍정적이며 호의적인 대답일 것이며, 거기에 약간의 부풀림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누군가 나를 잘난 사람으로 이야기해 주면, 어깨까지 으쓱해질 정도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저와는 많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옛 예언자들이 살던 것처럼 지내며, 거침없이 정의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오?’라고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의롭지 못한 거짓말쟁이였다면, ‘그렇다.’라고 답하고 자기 이익을 챙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그 모든 질문에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아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라고, 자기에 대해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소개하는 모습에서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을 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전한 것은 ‘말씀’이라고, 자신이 전한 것은 ‘소리’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소리를 통하여 전해지기 때문에 말씀은 의미가 있지만, 그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례자 요한은 말씀을 위해서 자신은 스스로 의미 없는 존재가 됨을 받아들였던 인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음이 드러납니다. ‘광야에서의 외침’은 ‘듣는 이’에 대한 관심보다 ‘외치는 이’에게 초점이 모아집니다. 이 모습 속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에 외로움, 성실함, 거침없음, 둔탁함, 광대함 등까지 엿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합니다. 그는 홀로였지만 외롭지 않게, 듣는 이가 없었지만 성실하게, 맞바람에 소리가 묻히기도 하고 메아리 속에 숨어들어가지만 좌절하지 않고 거침없이, 어떠한 기교도 말솜씨도 부리지 않고, 전해야 할 내용을 전달하는 소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그 어떤 장소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외쳤습니다. 최대한 많이 전하는 소리가 되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지만, 그는 언제나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외침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신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예언을 존중하며,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을 간직하고 악한 것을 멀리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지만, 평화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완전히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주셨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라고 준비시켰던 그리스도를 찾아 떠나지 않습니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라고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지만, 정작 자신은 그분을 찾아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높일 때, 겸손되이 이를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대답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랑하거나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이 의미 없는 존재로 치부되거나 낙인찍히더라도 하느님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의식하는 것, 보이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삶 등을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허점이나 잘못된 습관에 빠져 있었다면, 잘 성찰하고 통회하여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고해성사에 임하여, 최종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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