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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0)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난 무얼 했나”/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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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0)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난 무얼 했나”/배광하 신부

연중 제19주일 (요한 6,41~51) : 생명의 빵
발행일 : 2006-08-13 [제2512호, 6면]

- 예수 천국 불신 지옥? -

우리의 불충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터미널이나 지하철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가두 선교하는 모습입니다.

확성기를 들고 크게 외치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심지어 타종교인들과 심한 말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같은 일을 목격한, 믿지 않는 분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 역시 그 같은 일로 상당한 불쾌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글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반성의 글로 다가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TV <칭찬합시다>에 등장했던 어느 스님, 고아들을 거두어 택시 운전을 하시며 돌보시는 부산의 스님, 지하철로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구하려고 이국 땅 일본에서 살신성인의 덕을 보여준 불교도인 고(故 )이수현 청년,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영국에 대항하여 비폭력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루어낸 힌두교도인 마하트마 간디 같은 분들도 정녕 지옥에 가야만 하는가? 정말로 예수만 믿었지 인간성의 됨됨이는 싸가지 없는 속물 근성의 기독교인들… 그런 자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간다면,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가서 세종대왕님이나 이순신 장군님을 만나 뵙고 지옥 불장난이나 하련다.”

참으로 예수님을 죄스럽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렇게 보여졌다면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복음의 생명의 빵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세상에 나누지 못한 죄와 그 불충으로 재를 뒤집어쓰고 단식을 선포하며 참회의 예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믿고 외쳐왔던 생명이신 예수님을 욕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삶이 온전한 나눔이셨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어 세상에 생명이 되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살지 못한 불충의 죄를 우리가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나눔을 너무나 애타게 바라는 이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내려옴의 신앙

우리는 너무 자주 부활 신앙을 강조하여 왔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너무 도취하여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은‘강생’이요, ‘내려옴’이라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자주 잊고 살았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마지막으로 생명까지 나눌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감히 그리스도인이라 외칠 수 있는 길임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은 가장 낮은 자리, 비천한 자리로의 내려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상 가르침은 온전한 나눔, 생명의 빵이 되심이었습니다. 그 같은 삶의 뒤에 부활이고, 천국인 것입니다. 내려오지 않고 지붕 위에서 외치기만 한다고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천국에 계신 성인 성녀들은 끊임없이 내려오는 삶을 사셨고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서> ‘겸손’의 장에는 “땅으로 내려오는 자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늘의 하느님을 모시고 있으면 우리가 하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심사상에는 늘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내려오심이 강조되어 있고, 장엄한 성경의 끝인 묵시록에는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묵시 21, 3)

오늘날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복음의 진복팔단을 묵상하시면서 ‘마음이 가난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신바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의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또는 노동조합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세상에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에 남으시고자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 gsmnp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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