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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1) '생명의 빵'먹고 '세상의 생명'되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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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1) '생명의 빵'먹고 '세상의 생명'되자/배광하 신부

연중 제20주일 요한 6, 51~58 : 하늘나라의 빵


발행일 : 2006-08-20 [제2513호, 6면]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진정한 투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받은 생명의 빵을 먹은 우리 역시 세상에 생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내 온 몸을 바쳐 사랑하고 세상을 위하여 투신할 가치와 진리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우주보다 가치 있는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또한 그 진리가 내 곁에 왔을 때 진정 내 한 몸 투신할 각오가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그 같은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종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19~20)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귀중한 것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은 대단히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저처럼 서른 여덟 먹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언젠가는 이 사람은 어떤 위대한 원칙이나, 위대한 사안, 위대한 대의를 위하여 일어서야할 시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겁이 나서, 혹은 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런 사명을 거부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결국 대의를 포기하고 아흔 살이나 살았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는 나이는 아흔을 살았겠지만 이미 서른 여덟에 죽은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위해 일어서기를 거부한 그 순간, 그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는 그 빵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생명을 나누는 일에 무얼 머뭇거릴 이유가 있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고통은, 내 자신이 생명의 빵이 되기를 거부하고 피하려 들었던 그때부터 생겨난 고통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집회서의 저자는 “나를 먹는 이들은 더욱 배고프고 나를 마시는 이들은 더욱 목마르리라.”(집회 24, 21)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는 달리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 각자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시편의 저자가 이렇게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 4~5)

어째서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여럿을 만들지 않으시고 한 명만을 창조하신 것일까? 그 한 명 만으로 위태롭게 인류의 시작을 계획 하셨던 것일까요?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Adam)’은 그 이름이 동서남북을 뜻하는 4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곧 한 사람의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지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 우주적 존재라는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 인간은 그가 잘났든, 못났든 그 작은 육체 속에 우주적 가치와 전 인류를 대표할 이유와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정신이기도 한 것입니다.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으신 당신의 모상으로 만드신 것이며 그 시작의 엄청난 사랑의 폭발을 마지막 완성에 가시어도 당신의 온 몸으로 끝맺음 하신 것입니다. 이 뜨거운 사랑에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며, 이 사랑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할애하면 넘치는 주님의 사랑인 생명의 몸을 미사성체 안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우리 신앙인들은 자주 생명의 빵인 성체를 잊고 살아왔습니다. 귀한 것을 귀하지 못하게, 생명의 빵을 생명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오늘 미사 화답송 합송 부분에서는 이렇게 노래하자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망각을 깨우치고자 말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시편 3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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