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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생명력 얻는 사랑의 밥상”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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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생명력 얻는 사랑의 밥상”

발행일 : 2006-06-18 [제2505호]

밥짓는 남자

나는 매일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립니다. 날마다 고슬고슬한 밥을 짓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면 식구들은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밥짓는 사람의 행복은 식구들이 밥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는 때입니다.

밥상을 차려 놓으면 어떤 식구들은 ‘복스럽게’ 밥을 먹기도 하지만 어떤 식구들은 ‘복이 달아나게’ 밥을 먹기도 합니다.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며 밥을 먹는 사람, 반찬투정을 하며 편식을 하는 사람, 밥보다도 군것질로 배를 채우는 사람,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꾸역꾸역 미련스럽게 챙겨먹는 사람…이런 사람들에게는 정성들여 차려놓은 밥상이 아깝습니다.

소담스럽고 복스럽게 밥을 잘 먹는 사람은 사는 일도 담박하고 기운찹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밥 잘 먹는 사람은 ‘복덩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밥을 잘 챙겨먹으면 잔병치레가 없고, 생활력도 강해서 사는 일이 힘차고 복 받은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미사는 당신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에 모여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는 생명의 축제입니다.

나는 매일 이 밥상을 차리고 밥을 퍼서 나누어 주는 일을 하며 밥 짓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밥 퍼주는 사람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사에 지친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갈증을 풀고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음으로써 힘을 얻어 사는 모습은 밥 짓는 남자의 보람이며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밥상의 밥이 되셔서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를 살리십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이사 55, 1~2)

먹는 일이 단순히 육신의 허기만을 채우는 일로 그치면 인간으로서 먹는 일이 아니라 짐승처럼 먹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으로서 먹는다는 것은 몸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일만이 아닙니다.

밥을 나누어 먹는 일은 자신의 존재를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동반자’(Companion)라는 단어는 ‘함께’(Com)라는 단어와 ‘빵’(Panis)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빵(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은 먹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먹는 일은 생존의 기반이기에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생명의 축제이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나누는 사랑의 축제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놀라운 선물을 현재화시키는 생명의 밥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마련된 이 좋은 밥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써 한 식구가 되는 것이며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식탁에 모여 그분을 먹고 마시는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이는 성체안에 담긴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정성껏 받아 모시지만, 어떤 이는 마음의 준비 없이 형식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도 합니다.

성체성사 안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그분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지만 의미도 모른 채 허겁지겁 자신의 허기만을 채우려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시고 그 밥을 함께 나누어 먹도록 하신 일은 ‘밥’이 지닌 가치와 ‘먹는 일’ 안에 담긴 신비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밥상을 차리는 먹거리에는 농부들의 수고와 땀이 들어있고, 밥 짓는 사람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으며, 힘들고 혼란스러운 세상 안에서도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을 얻는 사랑의 밥상입니다.

우리를 먹이고 살리시기 위하여 조건 없이 바쳐진 예수님의 몸을 먹고 사는 일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천상의 양식이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양식인 성체성사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이 담긴 사랑의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 자신을 밥상에 내어 놓으시며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오늘도 나는 식구들을 위해 맛있는 밥상을 준비합니다. 밥상 위에 차려지는 예수님의 구원이 오늘도 새롭습니다.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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