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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7: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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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7)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현실과 이상 괴리에도 오롯이 맑은 영혼
 
이광복(프란치스코, 소설가) 
 
 
바오로딸에서 출간된 A.J. 크로닌의 대표작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표지. 이 작품은 크로닌이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소설로, 1944년 미국에서 137분짜리 영화로 만들어졌다. 존 M. 스탈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프랜시스 치셤 신부 역에 그레고리 펙이 출연한 것을 비롯해 토마스 미첼과 필립 안 등 당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했다.
 
 
'발바닥 신자'라는 말이 있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집에서 성당까지 꼬박꼬박 '발바닥' 품을 파는 신자다. 여기에 '얼굴' 잘 내밀고, 이따금 이런저런 '입놀림'까지 보탠다면 미상불 '삼위일체 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야말로 한때 본당에서 연령회 총무에다 구역장도 하고, 꾸리아 단장까지 했으니 모름지기 '삼위일체 신자'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직분을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권유에 마지못해 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내키지 않는 일을 남들에게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맡았던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신앙이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니, 내 경우 노골적으로 말해서 신앙의 '신'자조차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언젠가 몇몇 교우들과 신부님을 모시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 자신 '나일론 신자'라고 진솔하게 고백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일론 끈이 더 질기다"고 해서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은 적도 있다.
 
그렇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이른바 '삼위일체 신자' 또는 '나일론 신자'이면서도 누군가가 내 종교를 물어올라치면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천주교 신자'라고 답변해 왔다.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와 식사를 하게 되면, 설령 상대가 초면일지라도 그 앞에서 예외 없이 성호를 기똥차게 긋고 식사 전 기도를 바쳐 당당하게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냈다.
 
별 신심도 없으면서 나는 이렇듯 뻔뻔하게 신자 행세를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언제쯤 신자다운 신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신심이 풀풀 넘쳐나는 교우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끝까지 '나일론 신자'로 살다가 '나일론 신자'로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살아온 별 볼일 없는 신앙생활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더욱이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나는 하느님을 적잖이 원망했다. 유년 시절 이후 죽자 사자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왔건만, 그리하여 이제는 그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실 때도 됐건만 하느님께서는 왜 이토록 가혹한 고난을 안겨주는 것일까. 하느님에 대한 회의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사가 고르지 못하다고 느낄 때마다 곧잘 하느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불공평한 사회, 대립과 반목이 극과 극을 달리는 사회, 노력에 비해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물질이 인성까지 오염시키는 부조리한 사회, 인간이 기술과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시대, 온갖 범죄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인간사회…. 그런 현실을 돌아볼 때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A.J. 크로닌의 장편소설 「천국의 열쇠」를 읽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크로닌은 1896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천주교 신자였고, 모친은 개신교 신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서 외롭게 성장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 유머와 사랑이 넘치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5년 글래스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에 앞서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종전 후에는 남(南)웨일즈와 런던에서 개업해 전문의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과로를 못 이겨 의업을 포기하는 대신 요양 중에 작가수업에 몰두, 1931년 「모자장수의 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41년 크로닌은 불후의 명작 「천국의 열쇠」를 발표했다.
 
▲ 캐나다 중부 마니토바 주 수도인 위니펙 성 마리아대성당에 유리화로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의 소명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서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올들어 주님 승천 대축일을 한달 남짓 앞두고 지난 4월 말 공개됐다. 【위니펙(캐나다)=CNS】
 
 
작품은 주인공 프랜시스 치점 신부의 회고담으로 시작한다. 고아로 자라난 치점은 신학생 시절부터 해맑은 영혼을 지키며 성실성과 인간의 양심을 바탕으로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냉엄한 현실은 도리어 그의 성실성과 양심을 배척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치점은 자기 소신을 더욱 굳게 다진다.
 
반면 어린 시절 친구이자 동급생인 안셀모 밀리는 철저히 현실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신학교에서 반장 노릇도 하고, 선배 성직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는 주교직에까지 오른다. 말하자면 절친한 친구 치점과는 정반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 교회는 보수적 중진 성직자들과 심심찮게 갈등을 빚어온 치점 신부를 중국 선교사로 보낸다.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은 그 나라 특유의 문명과 도덕률로 말미암아 천주교 신부가 활동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치점은 중국이 낳은 공자의 가르침까지 흡수하며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신앙을 확립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흑사병과 싸우고 물난리를 겪는 등 온갖 어려움과 마주친다. 여기에 수녀들과의 갈등은 고통을 한층 가중시킨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종교들을 넉넉한 이해와 폭넓은 사랑으로 아우르면서 사제로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특히 작가 크로닌은 이 작품의 주인공 치점의 입을 통해 곳곳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옥이라는 곳은 말일세. 인간이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거라네."(388쪽)
 
"당신의 정의(定義)대로 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자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7일 중에 하루만 교회에 나가고 나머지 6일은 거짓말도 하고, 중상모략으로 남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겁니까?"(403쪽)
 
1981년에 타계한 크로닌의 역작 「천국의 열쇠」에는 무엇보다도 영혼을 끌어당기는 힘과 우리네 평범한 인간에게 던져주는 따뜻한 위안이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은 이상과 현실을 상호 교직(交織)하면서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케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명작 중 명작이, 고전 중 고전인 동시에 특히 신자들의 필독서라고 말할 수 있다.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 1896~1981)은
 
 
1896년 스코틀랜드 덤바턴셔 카드로스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 의학부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1914년에 졸업한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군 외과의사로 복무(1916~1917년)했고, 전후 1921년부터 4년간 사우스웨일스에서 개업했다. 그 뒤 1925년 글래스고대학에서 '동맥류 역사에 관한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광산에서 의학감독관으로 있으면서 탄광 직업병을 연구했다. 1926년 런던에서 개업해 전문의로 널리 인정을 받았으나 건강이 악화돼 의사로서 삶을 포기하고 요양 중에 작가로 데뷔했다.
 
처녀작 「모자장수의 성」(1931년)은 발표하자마자 성공했다. 남자의 허영과 아내의 인내, 사랑과 미움,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출판과 동시에 경이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1941년에 영화화되기도 했고 각색 상연과 함께 21개 국어로 번역되는 성과를 거둔다.
 
이어 웰시 탄광지역을 무대로 한 「별이 내려다보다」(1935년), 「성채」(1937년) 등을 썼고, 희곡 「주피터가 웃다」는 런던과 뉴욕에서 동시에 공연되기도 했다. 1941년에 발표한 「천국의 열쇠」는 그가 쓴 소설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는데 이바지했다.
 
이밖에 「녹색의 세월」(1944년)과 속편 「섀년의 길」(1948년), 「두 세계에서의 모험」(1952년), 「줄리어스 나무」(1961년), 「6펜스의 노래」(1964년), 「카네이션을 단 여자」(1976년) 등이 있다. 1981년 스위스 몽트뢰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사실주의에 기반해 구상력을 갖춘 대하소설을 집필해 명성을 떨쳤고, 특히 그의 작품은 사회성과 대중성이 짙어 인기를 얻었다.
 
[평화신문, 제1031호(2009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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