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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엔트로피 법칙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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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엔트로피 법칙
 
이윤식
 
 
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엔트로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리 화학적 변화의 바탕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알려진 엔트로피 법칙이 있다. 엔트로피란 이른바 ‘무질서도(無秩序度)’라는 것인데 어떤 시스템 안에서 모든 물질의 무질서도는 계속해서 증가하려 한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물감을 물에 떨어뜨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물감이 전체로 퍼져 자연적으로 물은 색을 띠게 된다. 물감과 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질서가 있는 상태이고, 섞여있으면 무질서한 상태인 것이다. 이 무질서도를 줄이려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곧 물을 증발시키거나, 물감을 흡수하는 흡착제를 통과시키는 등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사무실의 책상은 여러 가지 서류며 편지 등으로 늘 어지럽혀 있다. 날마다 정리정돈하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며칠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한다. 큰맘먹고 하루 품의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내 방의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하게 되어 내 업무는 많은 방해를 받게 된다.
 
우리의 몸에도 엔트로피의 법칙은 예외없이 적용된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해야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이 질서 정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포가 늙어가는 것, 우리 몸 안에 암세포가 자라는 것 등등 모두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고, 우리가 죽어 몸이 썩고 분해될 때 우리 몸의 엔트로피는 최대가 되는 셈이다.
 
창세기에 나와있는 인간 창조 이야기를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 2,7)는 말씀이 있다. 야훼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흙으로 빚어서 입김(에너지, 사랑)을 불어넣어 창조(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로 변화시킴)하신 것이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과 일치되지 못하게 됨에 따라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되리라(엔트로피가 최대가 된다)고 말씀하신다(창세 3,9 참조). 나는 이 말씀들을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그때부터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이해하고 있다. 어찌 몸뿐이랴? 마음이 정리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방황하게 되지 않는가?
 
모든 물질의 변화 과정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 인간이 행동하는 양식도 엔트로피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에너지가 충만한 상태가 되면) 혼인을 하게 된다. 둘이 하나가 되려고 연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에너지를 쏟는가?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때 쏟았던 정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결국 둘은 몸과 마음까지도 하나(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혼인 관계에도 예외 없이 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된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뜨거웠던 사이는 어느새 식어가게 되고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둘은 다시 혼인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한다. 끊임없이 사랑의 에너지를 혼인생활에 투입하지 않으면 부부는 이제 더 이상 한 몸이 아니라 두 몸과 두 마음이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죄 사함을 받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정신상태에서 해방이 되면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평안한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불안해지고 정신이 혼란해진다. 그러다 고해성사를 보고 나면 또다시 하느님과 일치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계속적인 노력도 없이 저절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도 어긋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불완전한 삶을 살게 되어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의 삶을 살게 되면 우리도 불완전한 삶에서 벗어나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신다.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9-12).
 
최근 인간 지놈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처음에는 무신론자였는데, 지놈의 구조를 밝혀감에 따라 신의 존재를 점점 확산하게 되었고 결국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근본을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한 지식이 하느님 안에서 완전해짐을 보고 믿음을 갖게 된 것이리라.
 
하느님 안에서 일치된 삶을 살아야 엔트로피 법칙을 거슬러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하느님과 일치된 상태에서 누리는 천국에서의 삶은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평화와 일치의 삶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한 상태의 삶인 것이다. 죽어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이렇게 살려면 끊임없이 내 자신과 내 주위를 돌아보며 기도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이윤식 휴고/ 서울대학교 공대 응용화학과 교수로 수원교구 인덕원성당에 다니고 있다.
 
[경향잡지, 200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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