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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

인물(People)

by 巡禮者 2016. 7. 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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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

 

 

 

 

 

 

출생: 1978년12월 17일 필리핀

신장:167cm

소속:필리핀 하원의원

데뷔:1995년 프로전향

 

경력

1998년 WBC플라이급 세계챔피언

1999년 WBC밴텀급 세계챔피언

2001년 IBF슈퍼밴텀급 세계챔피언

2005년 WBC슈퍼밴텀급세계챔피언

2008년 WBC슈퍼패더급세계챔피언

2008년 WBC라이트급 세계챔피언

2009년 IBO라이트웰터급세계챔피언

2010년 WBC슈퍼웰터급 세계챔피언 복싱8체급석권(챔피언)

2010년 5월 필리핀 하원위원 당선 현재 하원의원

 

 

아시아 스포츠선수로는 최초로 2009년에 TIME誌 표지모델로 등장하여 세계적인 스타임을 증명을 하였다. 복싱체급을 불문하고 세계적인 복싱잡지 RING誌에 3년 동안 최고의 선수로 평가하는 복서랭킹 부동의 1위를 기록되었고 그의 파이트머니는 2500만달러(한화280억)에 육박하였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4체급 타이틀을 석권했고 21세기 아시아의 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천하 통일한 필리핀이 배출한 불멸의 복서 8체급을 석권한 슈퍼스타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다.

 

세계 정상급 복싱 선수 중에 가장 영화 같은 인생을 산 사람으로는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를 꼽을 수 있다. 1978년 필리핀 민다나오 섬 제너럴 산토스市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파퀴아오는 코코넛 나무로 지붕과 벽을 만든 야자나무 오두막집에서 홀어머니와 여러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빈곤과 싸웠던 어린 파퀴아오는 “우리가 자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하는 물음을 날마다 마음에 품었다. 그는 5살 때부터 바닷가에 나가 일을 했는데 어부들의 일을 돕고 물고기를 나눠 받았다. 12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길거리에서 도너츠와 담배 등을 팔았다. 복싱을 처음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얹혀살던 삼촌에게 처음 복싱을 배웠고, 동네 공원에서 스파링도 벌였다.

 

 

 

 

 

 

 

 

파퀴아오는 금방 복싱에 두각을 드러냈고 어린 나이지만 대전료까지 받으며 경기를 치렀다. 13살이 되던 해, 파퀴아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사흘 동안 밀항선을 타고 수도인 마닐라로 상경했다. 주먹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노숙자 생활을 하며 열심히 복싱에 매달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17살의 나이로 1995년 프로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파퀴아오는 제대로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한 상태였다. 기준 계체량을 통과하기 위해 주머니에 무거운 돌과 잡동사니를 잔뜩 넣은 채 저울 위로 올라갔다고 그는 회고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이었지만 데뷔 첫 해 10전 전승을 기록했다. 단 한 차례 부상으로 인한 패배를 제외하고는 데뷔 2년만인 1997년 동양타이틀을 획득했고 3년째인 이듬해 드디어 첫 세계타이틀(WBC 플라이급)을 따냈다.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승승장구했다. 그해 6월 IBF 세계 챔피언 레로 레드와바를 6라운드 TKO승으로 물리쳤다. 2008년 12월에는 미국의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를 만나 예상을 깨고 특유의 소나기 펀치로 8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결국 그는 사상 최초로 8개 체급에서 10번의 타이틀을 획득하는 복싱의 전설이 됐다.

 

그리고 2015년 5월에는 무패의 전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판정패를 당했지만 그는 대전료 약 1억달러를 받았다. 가난 때문에 단돈 2달러를 받고 복싱을 해야 했던 소년에서 1억달러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

 

조국 필리핀에서 파퀴아오의 인기는 최고 수준이다.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내전이 중단됐고 거리에는 차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50%이상의 시청율을 올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복싱커리어를 보면 95년의 복싱에 입문을 하여 멕시코가 나은 세계적인복서 3인방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 모랄레스, 안토니오 바레라등과 2008년 12월 미국의 자존심 복싱천재 6체급을 석권한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를 꺾은 그는 지난해 5월 IBO 라이트웰터급 타이틀매치에서 영국복싱의 혼이라고 불리우는 리키해튼을 KO로 꺾고 5체급을 석권했다. 2009년 11월 WBO 웰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중남미를 대표하는 저승사자 미겔코토를 물리치고 챔피언이 되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격인 필리핀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2015년에는 상원의원에도 당선됐다. 연예계에서도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았다. 가수로 앨범을 내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선행도 잊지 않았다. 2013년에는 태풍 하이옌으로 고통 받는 이재민들을 위해 대전료로 받은 191억원을 전액 기부했고 이후에도 수 백 억원을 추가로 내놓고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1970년대는 무하마드알리 1980년에서 1990년초는 마이크타이슨이 복싱흥행을 주도를 한것처럼 말이다. 2000년 미국 복싱 작가 협회(Boxing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로부터 Fighter of the Decade라는 호칭을 수여 받았다. 또한 2006, 2008, 2009년에 Edward J. Neil 트로피 및 Fighter of the Year 칭호를 각각 BWAA와 링 매거진으로부터 수여 받았다.

 

 

 

 

 

 

 

 

 

 

 

 

최강의 방패 vs 최강의 창

 

경기장 미국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

 

경기일 2015년 5월 3일, 오전 11시 10분 (한국기준)

선수

주심

부심

부심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118

116

116

매니 파퀴아오

110

112

112

 

 

 

WBC, WBA, WBO, The Ring 매거진 웰터급 (~66.7kg) 통합 타이틀전.

침체기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현대 복싱산업에 반등의 계기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져버린 경기

 

경기 전, 오죽하면 미국 현지에선 앞으로 복싱 역사상 다시없을 마지막 슈퍼 파이트라고 점치는 매체도 있었다. 물론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기에 또 다른 복싱 슈퍼스타는 분명 다시 나타나겠지만 두 선수가 복싱계, 스포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아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메이웨더는 21세기 최초의 디지털시대 복싱 슈퍼스타이고, 매니 파퀴아오는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8체급 석권의 아시아인이다.

 

 

경기 당일은 직접 관람도 엄두 내기 힘들었다. 티켓 예약은 티켓마스터(Ticketmaster) 웹사이트에 오르자마자 1분도 안돼 매진되었다. 입장료는 관람석 위치에 따라 3,500달러(약 382만원)부터이고 구입에 따른 서비스 수수료가 별도로 붙었다. 입장권 절대부족에 이미 암표값이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가장 비싼 링 사이드 암표 값은 경매로 무려 25만 달러(약 2억7천3백만원)까지 치솟았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계체랑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계체량 테스트 사상 유례없이 10달러의 입장료를 받았지만, 11,500명의 관중이 들어와 이 경기의 열기를 북돋았다. 이 테스트에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각각 146파운드(약 66. 22kg)와 145파운드(약 65.77kg)를 기록했다. 웰터급 기준은 147파운드(66.68kg)으로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시작 된 경기였지만..

경기 직전 라스베가스 맥카렌 국제공항의 모습.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개인 항공기로 공항이 도떼기 시장이 된 희귀한 장면이다. 얼마나 이 경기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두 선수의 매치 메이킹은 2009년부터 몇 차례 논의되었지만 그때마다 양측이 세부 사항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으며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5] 하지만 2014년 12월, 메이웨더가 "과거에 기량을 겨룰 기회를 갖지 못해 유감이다"는 말로 대결 의사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이에 대해 파퀴아오가 "전 세계 사람들과 팬을 위해 대결이 이뤄지도록 하자"고 화답하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2015년 1월 27일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NBA 경기가 열린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선수는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였고 이후 양측의 협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2월 20일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와 대결에 합의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S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챔피언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경기 예측

머리는 메이웨더, 가슴은 파퀴아오

HBO에서 복싱선수들과 인터뷰 하며 경기의 승자를 물어보니 프로그램에 나온 선수의 다수가 경기중에 냉정한데다가, 키가 크고 속도도 빠른 메이웨더가 우세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 경기에 대한 배당은 메이웨더가 더 낮다. 즉, 메이웨더가 이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장정구 챔프는 메이웨더의 판정승을, 유명우 챔프는 파퀴아오의 KO승을, 박종팔 챔프는 예측불가라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유명우 챔프는 2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파퀴아오의 왼주먹에 메이웨더가 7, 8회 KO패를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장정구 챔프의 신의 한수

 

중계

복싱의 인기가 현시창인 한국에서조차 지상파로 생중계를 볼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적 관심을 끄는 매치답게 53개국 70개 방송국에서 생중계한다. 방송으로 인한 매출은 4억 달러(약 4,297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페이퍼뷰’ 수입으로 3억 달러, 해외 방송 중계권료와 입장권 수입으로 1억 달러이다. 이 매출은 향후 메이웨더 60%, 파퀴아오 40%로 나눠 지급된다.

대한민국에서는 SBS가 중계권을 구매하였다. 배성재 캐스터와 변정일, 황현철 복싱 해설위원의 목소리로 SBS와 SBS Sports에서 동시에 11시부터 생중계한다. 우리나라는 스포츠 PPV 중계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중계방송 시장이어서 지상파를 통해 고화질로 이 경기를 시청할 수 있게 편성되었다.

 

미국에서는 HBO, SHOWTIME 두 케이블 TV에 의해 공동으로 PPV 중계된다. 이 경기를 화질에 따라 SD급으로 시청할 경우 89.95달러, HD급으로 보면 99.9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복싱의 목소리'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링 아나운서인 마이클 버퍼가 HBO를 대표해 나서고, '넘버2' 격인 지미 레넌 주니어가 SHOWTIME을 대표해 링에 오르는 링 아나운서계의 1, 2인자의 진행대결도 볼거리.

 

SBS의 중계 결정 자체는 찬사받을만 하지만, 막상 중계는 매우 실망스러웠다는 의견이 복싱 팬들 사이에선 절대 다수다. 복싱 전문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캐스터와 해설의 복싱에 대한 이해도와 현재 복싱계 추세에 대한 정보력이 매우 떨어졌고, 집중을 방해하는 아마추어같은 잡담이 너무 많았던 데다가, 무엇보다 심각한 편파해설은 문제가 컸다. 초반부터 기술적으로 파퀴아오가 완전히 밀린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파퀴아오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었고, 심지어 판정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등 전혀 솔직하지 못한 진행이였다.

 

물론, 파퀴아오가 같은 아시아인 이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만 복싱을 모르는 사람이 절대 다수인 대한민국에선 프로다운 진행을 했어야 옳다. 이러니 복싱을 잘 모르다가 이 경기만 본 사람들은 메이웨더가 도망만 다니다 불합리하게 이겼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아래 기술 했지만, 메이웨더가 종합적으로 완전히 앞선 경기였고 재경기를 거론하기 힘들만큼의 압승이였다. 정직한 해설을 위해서는 시청자의 메이웨더 스타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와야 했고, 메이웨더의 사생활이나 왈가왈부 하기 전에 그의 복싱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 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본적인 라운드 채점에 대한 설명조차 안 했으니 말 다한 거나 다름없었다. 시청자는 왜 이긴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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