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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와 동양철학

東洋哲學

by 巡禮者 2010. 8. 1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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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와 동양철학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할 때 재미삼아 또 어떤 이는 진지하게 신년운세를 보며 본인에게 펼쳐질 한 해를 궁금해 하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사주 또는 토정비결이 신년운세를 보는 대표적인 방법이지요. 또한 흔히 어려움 없이 인생이 평탄한 사람을 두고 ‘팔자가 좋다’고 말하는데 여기서의 ‘팔자’는 운세를 볼 때 사주팔자와 같은 말로, 옛날에는 남녀가 결혼할 때 생년월일시를 적은 문서를 상대방에 들려 보내 사주팔자를 비교해 궁합을 봤으며 지금도 궁합을 결혼 성사의 중요한 요건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세시풍습처럼 우리 생활에 등장하는 사주팔자는 점, 미신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만도 명리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다뤄지면서 명리학 전문가를 뽑는 관직이 있기도 했으며 오늘날 차츰 다시 동양학문으로 인정받으면서 대학 부설기관에 명리학과가 개설되어 수 천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기도 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하늘의 변화를 인간 삶의 변화로 적용시킨, 한자문화권의 천재들이 체계를 정립했다고 할 수 있는 명리학, 주역 등의 유래와 차이점을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http://yoksa.aks.ac.kr)'의 도움을 받아 재미있게 알아봅시다.

 

>> 조선시대의 학문, 명리학

명리학은 그 사람이 태어난 생년, 월, 일, 시를 간지(干支)로 환산해서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입니다. 명리학이나 역학은 일종의 기상학으로 기후에 따라 자연만상이 변하는 것처럼 인간도 계절에 따라 성장하고 쇠퇴한다는 이론입니다.
일본에서는 추명학, 중국에서는 산명학이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1. 명리학의 유래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에 의한 음양(陰陽)의 학설이 먼저 존재하였습니다. 이는 당나라시대에 와서 연주(年柱:태어난 해)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분석하던 것을 이허중(李虛中)이 일주(日柱:태어난 날)를 위주로 하여 보는 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를 근간으로 이후 송나라의 도교 수련가였던 서자평이란 사람에 의해 명리학의 이론 체계가 정립되었습니다. 서자평은 대략 900년대에 활동한 인물로 추정되는데, 당시 중국의 왕실과 상류귀족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유통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명리학은 우리나라에 빨라도 1~2백년 후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리학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당대 과학과 문화가 꽃핀 전성기 세종 때의 기록에도 ‘1445년 연소자 10명을 뽑아 서운관에 소속시키고 훈도 4~5명을 선출해 3일에 한 번씩 모여 습업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명리학은 조선 초기부터 내내 과거제도에서 잡과 내 음양과 또는 명과학이라는 분야로 시행되어 천문학, 지리학과 함께 학문으로서 인정받았으나 일제 강점기에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학문적 명맥이 단절되고 미신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일본과 중국에서는 동양학문으로서 대학 강좌도 개설되는 등 학문적 명맥이 유지되었습니다.


2. 사주팔자(명리학)의 원리
사주팔자를 고려하여 신랑 신부의 혼인 날짜를 정한 택일기 (새창)개인의 생년월일시의 간지(干支) 여덟 글자에 나타난 음양(陰陽)을 분석하고 5행 즉 나무, 불, 물, 쇠, 흙 등 5 가지 기운의 배합을 알아낸 후 이를 다시 특정시간의 공간을 구성하는 5가지 기운의 배합률과 비교합니다. 음양과 오행의 배합을 보며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며 나아가 특정시간의 기운의 배합과 개인의 기운의 배합을 비교하여 그 사람의 부귀와 빈천, 부모, 형제, 질병, 직업, 결혼, 성공, 길흉 등의 제반 사항을 판단합니다.

만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다시 수, 화, 목, 금, 토 오행의 성격으로 분화되고 이 오행이 다시 만물을 형성한다는 체계입니다. 사람의 사주도 크게 음사주와 양사주로 나뉘는데 음사주는 내성적이고 양사주는 활발하다고 보며 오행의 경우 각 오행의 성격에 따라 수가 많은 사주는 술을 좋아한다든지, 화가 많은 사주는 언변이 좋고 담백하다고 보는 등입니다. 옛날, 5일장 날을 정할 때에도 그 지역의 주 산의 성격이 수라면 수를 뜻하는 숫자인 1과 6일을 장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주역과 비교할 때 주역의 괘는 현 시점에서 ‘그렇다’와 ‘아니다’ 두 가지로만 결론이 나오는 것에 비해 명리학은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으로 같은 문제에 대해 훨씬 복잡한 체계로 깊이 있게 풀이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 국교로 발전했던 성리학의 기본원리이자 우주관인 태극도가 명리학의 음양오행설을 뜻한다는 점입니다.


>> 동양의 심오한 우주철학, 주역

명리학의 뿌리가 된 점복서인 <주역>은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으면서도 태극, 음양, 사상, 8괘 등 우주의 순환원리를 비롯한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어 동양은 물론 서양의 저명한 학자들도 이를 극찬하고 심취했다고 합니다.


1. 주역의 철학
주역대전 본문 (새창)주역은 유교의 4서3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입니다. 간편히 <역(易)>이라고도 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의 지혜와 나아가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하였습니다. 점서이지만 주역의 괘는 인간사의 길흉화복 예측보다는 인간의 수덕(修德)에 더 집중되어 있으며,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심오한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공자는 책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며 책을 너무 늦게 접했다고 통탄했다고도 전해집니다. 한편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이 주역을 연구했다고도 합니다.

(전문 발췌)

“(생략)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법칙만을 찾던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 탈피해 주역의 음양적, 상대적 관점으로 정립한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독일에 있을 당시 8년간이나 주역을 연구했으며, 마지막 생애를 통해 4개의 힘(약력, 강력, 전자기력, 중력)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에 매진한 것도 오행과 그 속에서 통일/조정 역할을 하는 토 자리 힘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생략)” (이성환 김기현 저. 주역의 과학과 道).

'바뀐다' '변한다'는 뜻인 주역의 ‘역’자에는 易簡(이간)·변역·불역(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합니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이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주역의 유래와 원리
팔괘문의 화로 (새창)<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역의 작자에 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복희씨(伏羲氏)가 황허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든 뒤 이를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는 설과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는 설, 괘사는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는 설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역은 음양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으로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입니다. 주역 (새창)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입니다.

태극(太極)은 음 ·양으로 변하고, 음 ·양은 다시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8괘가 되는데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經文)입니다.



>> 토정비결의 차이점과 원리

토정비결은 사주팔자와 함께 연초에 일 년의 신수(身數)를 알아볼 때 쓰이는 점복서의 하나로 주역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이지함의 묘 (새창)
〈토정비결〉은 월별(月別)의 길흉을 총 6,480구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은 16세기의 앞선 학자이자 그래서 당시 기인으로 보였던 토정 이지함(李之菡 : 1517~78)의 저술서로 알려져 왔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비록 술서(術書)에 능통하고 복서(卜筮)를 잘하여 앞일을 내다보는 데 유별난 재주가 있어 토정과 토정비결이 전혀 무관하다고만 할 수만도 없지만 토정비결이 세시풍속으로 정착된 것이 19세기 이후로 토정이 살았던 때보다 훨씬 뒤이기도 하고 본디 이지함의 학문적 바탕이나 경향으로 보아 이러한 점복서를 남길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세시풍속을 다룬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등의 서적에 오행점을 다루면서도 토정비결이 언급되지 않았기도 합니다.

토정 이지함은 현감으로 재임 당시 스스로 남루한 옷을 입고 백성들에게 토정비결 보는 모습 (새창)친화적으로 다가가는가 하면, 걸인청을 만들어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힘썼고 이러한 점이 존경을 넘어서 당시 써진 야사에서 그를 기인으로 과장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토정비결 역시 〈주역〉의 음양설에 기초하고 있으나 〈주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역〉은 64괘이나 토정비결에서는 48괘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사주(四柱) 중에서도 시(時)를 제외한 생년월일 3가지만으로 상중하(上中下) 3괘를 만듭니다. 또 인간의 길흉화복을 중심으로 괘사가 꾸며져 있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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