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무엇 하는 사람인가?
2010. 2. 20.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강의
글라렛선교수도회 김인환 비안네 수사신부
칼의 노래, 남한산성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 훈씨는 언젠가 산다는 것은 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건네는 악수와도 같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계신 여러분들 앞에도 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되었던 ‘2000년 대희년맞이 평신도대회 기념 선교 심포지엄’에서의 인천교구 김효철 그레고리오 선교사의 당시의 글을 발췌해 봅니다.
“지금도 평신도선교사들은 변함없이 시골 공소, 도시 본당, 해외, 교회기관, 사회복지, 청소년, 신자 교육, 사창가와 같은 특수 사도직 등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투신하여 그리스도의 생애를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40년 역사 동안 평신도선교사가 배출된 숫자에 비하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숫자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우리 평신도선교사들의 삶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에 대해 아무런 보장도 기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유는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겠지만, 한국 천주교회가 평신도의 손에 의해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성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관계에 놓인 사제 중심의 교회는 평신도선교사에 대한 이해 부족과 봉사만을 요구하는 교회 안에서는 더더욱 발을 딛고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선교사란 한 곳에 머무는 법 없이 언제라도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떠나는 것이 당연한 도리요 이치이긴 하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불림을 받았다 하더라도 신분 보장은 거의 생각할 수 없고 수시로 타의에 의해 그 자리를 물러설 수밖에 없는 고통과, 생계마저 외면당하는 정신적 번뇌는 우리 평신도선교사들로 하여금 끝내 선교사명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사례도 있다. 그런가 하면 본당의 경우 업무 분담에 따른 수도자와의 갈등이 심각하게 야기될 때가 있으니, 최종 선택은 수도자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한 사제의 이야기는 평신도 선교사들의 의욕을 떨어트린다. 사목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신자들이 아무래도 수도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평신도 선교사 한 사람의 보수면 수도자 2명을 모실 수 있으며, 수도복으로 인한 사목 효과가 크다는 사회적 경제적 논리에 절망하게 된다. 물론 시골 공소와 같은 경우에는 예산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예산 부족과 같은 경제 논리를 빌미로 때로는 돈만 아는 선교사라는 오해와 함께 지난 세월 많은 평신도선교사들이 응답조차 없는 교회를 향해 우리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기회를 달라며 외쳐 왔다. 그러나 그 힘은 미력했고 교회는 무감각하게 반응조차 없었으며, 강 건너 불 보듯 서로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평신도선교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이 선교사님의 글이 언급된 지 또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현실은 얼마나 변했을까요? 그 답은 이미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선교사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글만 보자면 평신도선교사들의 현실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절망을 저 역시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수도회에 입회했을 당시 저는 큰 꿈에 벅차있었습니다. 자율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분위기의 수도회가 제가 추구하는 선교의 꿈을 충분히 채워 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만 근근이 움직이는 수도회의 현실은 답답함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른 수도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밋밋한 사도직들, 소수의 인원으로 집지키는 일도 벅찬 현실, 수도회에 대하여 철저하게 닫혀있는 교구행정과 몰이해, 교구 본당들에 손님 신부로 일하는 데 만족하는 형제들의 식은 열정, 무엇보다 참된 선교사로 커야한다면서 이끌어주시던 선배 신부님들은 그저 수도원에서 화분만 기르면서 유유자적하는 것 같아 성소에 대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분에 물 안줬다고 뭐라 하시는 신부님께 북받쳐 물었습니다. “신부님,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선교사로 키웠으면, 또 키워졌으면 선교를 해야지, 화분 기르는 게 우리가 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런 비전을 보지 못하기에 너무 답답합니다!” 차분히 제 얘기를 들으신 신부님께서 미소를 보이시며 대답하셨습니다. “이보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도 선교할 준비가 안 되었군!” 저도 모르게 짜증이 솟아올라 다그치듯 되물었습니다. “준비가 안 되다니 무슨 소리십니까? 신학공부만 7년, 수도생활 십여 년, 수도회의 양성과정도 충실하게 따랐는데, 아직도 뭘 더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럼 몇 년 더 있어야 하나요?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합니까? 또 그렇게 한들 교회가 수도회에 대하여 이렇게 닫혀 있는 데 우리가 뭘 또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눈빛으로 신부님은 차분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모자르거나, 공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네가 아직도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야!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선교를 원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할거야. 선교는 특정 사도직이나, 맡게 되는 직분이나, 카리스마와 달란트를 드러내는 어떤 일들이나 사업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실 그런 것들은 본질적인 선교가 아니지.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고 초조해 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드러냄과 만족감을 찾는 것일 지도 몰라! 진정 선교가 하고 싶은가? 진정 선교사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네 자신을 먼저 선교하게!” 그렇게만 한다면 자네가 가서 만나고, 행하고, 기도하고, 웃고, 울고 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선교가 될 것이며, 이러한 선교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자네가 그토록 바라는 사도직과 직분, 사업들이 구체적으로 열매 맺게 될 것이야. 안달하지 말고, 좀 더 초연해져보게. 길이 보일 것이네.”
두 명의 여행가가 깊은 산속을 여행하는 길에 독수리가 다람쥐 한 마리를 번개처럼 낚아채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한 여행가가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쯧쯧, 오늘 저 다람쥐네 초상 날이구먼!” 그러자 다른 여행가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하하. 왜 그렇게만 생각하는가! 다람쥐네 초상 날이 아니라 독수리네 잔칫날이지도 않은가!" 천년의 어둠도 초 한 자루면 충분하고, 아무리 어려운 시련도 1g의 긍정적인 태도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리하여 초연함을 갖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가득 했던 부정의 씨앗들을 제 안에서 거둬내는 일, 이것이 저의 첫 사도직이 되었고,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제 영혼이 저의 첫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구사제가 아니라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수사신부입니다. 그러다보니 본당 위주의 사목으로 정립된 한국교회의 실제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습니다. 따라서 이렇다 할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마땅한 위치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수도회의 창설자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성인의 정신이자 본 수도회가 지향하는 영성의 초점이 평신도선교사 양성1)에 맞추어져 있기에 나름대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이 있어 왔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통해 평신도선교사들의 고민에 소극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도회 입장에서 보더라도 평신도사도직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로
서의 삶은 본질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보증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직자와 수도자가 잘 살아도 많은 경우 선망의 대상이자 모범적 대상으로서 남을지는 몰라도, 세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있어 뺨에 와 닿고, 손에 잡히고, 가슴에 아로 새겨지는 현실이 되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속의 모든 조건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도직의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있다면 그 자체가 진정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는 것이고, 가능성을 알리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과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더디게 여겨지는 평신도사도직의 발걸음을 우리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요? 앞에서 언급된 그레고리오 선교사의 글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21세기를 맞아 우리 교회 안에서 평신도선교사들의 역할과 위상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이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몇 가지 과제와 전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 같은 경우 평신도선교사 양성기관인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졸업한 이들을 위해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다. 그래서 특별히 불림 받은 평신도선교사들의 위상을 정립하고 각자 개개인의 지니고 있는 고유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한데 모으며 적재적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전문기구로서의 조직이 아직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미래지향적이며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 나가야만 한다. 둘째, 교회 안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평신도선교사들에게 낯선 곳으로 파견될 때 과감하게 떠날 줄 아는 용기와 도전 정신이 부족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개척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셋째, 평신도선교사를 위한 교회의 관심과 후원, 제도적 장치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나아가 졸업 후 평신도 선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후속 프로그램이나 특별 영신 수련, 교회의 가르침,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현대사회에 발맞추며 시대를 이끌어 갈 선교 전략의 기획과 창의력은 물론 자기 개발을 위한 재교육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넷째, 세상과 교회는 날로 세분화, 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만큼 결코 혼자 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문 사목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막지 말아야 하며 팀워크를 이루어 공동 사목에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특히 사제는 자신들의 고유 영역을 잃는다는 사고방식이나 수직적 지휘 계통에서 일을 시킨다는 편협 된 틀에서 벗어나 평신도선교사과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새로운 일거리와 아직까지 해내지 못한 일들을 찾아 나가도록 성령께서 길을 인도해 주고 계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평신도선교사들을 양성해 낼 것이다. 지금 몇몇 교구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설립하여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는 만큼 그들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여섯째, 평신도들의 의식의 변화가 시급히 요구된다. 평신도선교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될 수는 없다. 부족한 것을 인정해 주고 감싸주며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북방 및 중국선교를 책임져야 한다면 우리 평신도들이 앞장서서 평신도 선교사를 키워야만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어떤 분을 떠올려 봅시다. 1983년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의 무료 의술 봉사를 시작으로, 1987년 8월 영등포역 건너편 쪽방 촌에 요셉의원을 개원하여 평생 가진 것 없는 영세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신 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님을 생각해 봅니다. 조창환 시인은 이 분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검은 옷 입은 수도자보다 경건하고, 부름 받은 성직자보다 신성하고, 눈물 많은 여인보다 더 순결한 이 영혼을 하느님은 바삐 불러 곁에 두고 싶으셨나 봅니다. 더 없이 낮아지고 아낌없이 비워내던 삶, 퍼주고 또 퍼주어도 샘솟던 사랑으로 몸 바쳐 쓰러질까봐 이제 그만 쉬시라고 손잡아 불러올리신 하느님의 크신 뜻이 있으셨나 봅니다.”
안타깝게 떠나보냈지만, 이 분의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어지럽고 타락하기만한 대한민국 땅에서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다양한 조건하에서 실천되어지는 구원을 끊임없이 세상에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몫이 바로 평신도선교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선우경식 선생님을 선교사라 부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선우경식 선교사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신학생 때 이 분 밑에서 실습도 했었지만, 실제로 본 선우경식 선생님의 삶은 선교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잠시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우경식 선교사에게 처음부터 체계적인 조직과 관리가 제공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전문적인 기구를 통해 배출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관심과 후원이 처음부터 그에게 있었을까요? 그가 병원을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효율적인 체제로 잘 운영했기 때문에 그의 삶이 조용한 혁명이 되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도 이 병원은 차트를 일일이 손으로 뒤져 찾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하느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선교를 삶으로써 살아냈던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했겠습니까?
우리들이 잘 아는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구두 회사가 오스트레일리아 오지로 두 명의 영업사원을 파견했습니다. 원주민들 사회에서 구두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후 회사는 두 사람의 영업사원들이 각기 보내온 전보 두 장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전보에는 ‘전망 없음. 원주민들은 신발을 신지 않음.’ 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전보는 당당하게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음. 원주민들은 신발을 신지 않음.’ 이었습니다.
많은 평신도선교사들이 말합니다. “희망이 없다. 선교할 곳이 없다. 교회는 황량한 광야와 같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희망이 넘친다. 선교할 곳이 너무 넓고 많아서 광야처럼 막막해 보이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서부터 땅을 일군다면 내가 손대는 모든 곳이 나의 개척지가 될 것이다.”
얼마 전 교리신학원 5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이 무색하게도 차차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 제자리걸음인 분야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 끊임없이 노력함에도 잘 발전되고 변화되지 않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골자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교회가 평신도선교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를 탓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가 선교사인 것은 맞는지 자문해 봅시다. 자격증을 받았다고 모두가 다 선교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저희 수도회의 형제들은 보통 수사님, 신부님 등으로 불리지만 저희 안에서는 선교사로 통칭됩니다. 글라렛 선교사들은 언제나 선교를 이야기하고, 선교를 꿈꿉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양성’이라는 바탕 위에서 그려집니다. 흔히 양성하면 교육시키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영성 안에서 특히 수도영성 안에서 말할 때는 양성과 교육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교육이 지식과 기술 따위를 익히게 하는 것이라고 친다면, 양성은 성령의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된 강화(굳게함)를 위한 과정을 잘 식별하고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은총의 역사를 매일 매일 써나가도록 보살피고, 밀어주며, 때로는 다그치고, 깨어지게 하는 총괄적인 과정을 말합니다. 적어도 저희 글라렛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이 양성은 선교보다도 우선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양성을 하고, 또 양성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선교의 본질을 이룬다고 믿습니다. 저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교회의 평신도선교사들이 교리신학원 2년 과정을 마치고 바로 선교 현장에 나가는 현실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선교사 명함만 나눠주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선교사가 성령을 통해 담금질 되어 하느님의 준비된 도구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게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느님 뜻대로 열심히 살겠다는 어설픈 각오와 열망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특별한 달란트와 남들이 인정하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서 당겨지는 것도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양성의 과정에 놓아두고 그분의 열기로 다듬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오만가지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저희 수도회에서는 ‘용광로 체험’2)이라 부릅니다. 즉 대장간에서 쇳덩어리가 용광로에 들어가 잘 다듬어지는 과정을 함축한 의미입니다.
이 비유에서 각 부분은 상징성을 띠고 있습니다. 대장간은 양성 환경을 말합니다. 즉 선교사 양성은 대장간적인 환경을 띠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장간이라는 환경은 변화와 완성을 이끌어내는 곳입니다. 단순히 쉬어가는 휴게소도 아니고,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하는 유원지도 아닙니다. 대장간은 공장이고 생산의 터전입니다.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곳이며, 삶이 있는 곳입니다. 나아가 단순한 학교의 개념도 아닙니다. 지식을 전달하거나 높은 단계로 거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존재성을 바꾸고 완성시켜 세상으로 파견하는 곳입니다. 대장장이는 성부, 성자 그리스도, 성모님, 그리고 양성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개념입니다. 대장장이는 대장장이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단순한 지도자, 스승, 전달자가 아니라 쇠막대를 낫으로, 쟁기로, 칼과 방패로 만드는 임무를 가졌습니다. 쇠막대는 수동적인 주체로서 모양을 만들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제자인 선교사 본인을 말합니다. 내어 맡김 없이, 또 선교사 스스로가 쇠막대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선교사 양성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이미 완성된 화살촉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차가운 쇳덩어리를 무슨 수로 용도변경 할 수 있겠습니까? 식은 쇳덩어리를 망치질 하면 깨어질 뿐입니다. 한편 용광로는 성령과 마리아의 성심이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합니다. 기도와 영적 수련, 금욕적 방편들과 선교사들이 나누는 모든 친교들처럼 뜨거운 사랑이 넘치는 모든 영적 요소들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그리고 모루는 선교사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상황들과 시련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루는 선교사들이 그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의미와 효과를 제공합니다. 조수란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선교사 자신을 일컫습니다. 선교사 양성은 스스로에 대한 연마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박자가 맞아야 번갈아 가며 쇳덩이를 다듬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망치질이란 이 모든 개념에 대한 동일한 인식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양성 활동들을 말합니다. 이리하여 완성된 선교사는 화살로서 재탄생하여 복음의 원수들을 향해 발사되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양성과정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까? 적어도 글라렛 선교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지 않다면 그 누구도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대장간일까요? 대장장이들과 모루와 기타 필요한 여건들일까요? 제 생각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평신도선교사들이 쇳덩어리인 자신들을 인정하고, 온전한 도구로 완성되기를 바라며, 또 그래야함을 받아들이는 인식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존재감을 교회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로는 이러한 양성의 시간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실 교회가 우리의 대장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시련과 고민들로써 우리는 이미 담금질되고 있고, 망치질 되고 있습니다. 사제들의 인식을 말하기에 앞서, 선교사 본인들의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제들의 인식이 변하는 길은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학생들의 실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리학과 학생들이 심리학적 방법으로 심리학과 교수를 골려 먹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짜고서는 수업시간 동안 시선을 교수 바로 옆 5cm 지점을 한참 동안 바라보자. 교수가 조금씩 그 시선에 자신을 맞추더랍니다. 교수가 움직이면 또 시선을 이동하고, 또 옮기고 해서 결국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구석에 가있게 되었던 것이죠.
어쩌면 사제들이 그리고 교회가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변화를 이끌어야 할 우리 선교사들의 시선이 각자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있어 중구난방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우성치고, 따지고, 외쳐서 바뀌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두 시선을 모아 조금씩조금씩 거룩한 자리, 올바른 자리, 겸손의 자리, 그리고 열린 그 자리로 유도한다면 교회는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렇지. 사제들이 그렇지. 신자들이 그렇지.” 하며 포기한다면 그 무엇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선교사들의 시선을 모으는 작업, 이것은 참된 양성을 모든 선교사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제가 제 자신을 선교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안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선교사로서의 담금질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나를 양성시키는 것’이 선교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선교는 작게나마 ‘글라렛사도회’라는 작은 가족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사도회 안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교리신학원 출신도 있지만, 아닌 이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이들과 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가와 전례를 통한 작은 피정의 시간 ‘쉼! 기도모임’을 얼마 전 명동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을 위한 재복음화 교육과정 ‘다시보기’도 시작되었습니다. 새터민, 폭력피해여성, 그룹홈 아이들을 위한 복지활동도 시작되었습니다. 국내와 국외의 버려진 아기들을 후원자와 직접 결연 맺어주는 활동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평신도선교사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 ‘푸라구아(Fragua: 용광로)’ 양성코스도 계획 중에 있고, 평신도선교사 전문 출판 업무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문제없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려움이 많고, 산적한 갈등에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절망과 낙담만이 전부였었지만, ‘나를 양성하고, 나를 선교하는 작은 시작’은 불과 3년 만에 엄청난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제게 던져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저는 지금도 여기저기 본당들을 돌며 손님신부 역할이나 하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하며 긴 한숨과 함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을 위한 후속 양성기관이나 프로그램과 같은 구체적인 대장간이 절실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탄만 한다고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대장간이 없어도 불은 지필 수 있습니다. 대장간이 없어도 망치질은 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 총동문회가 친목모임에 만족하지 않고, 영적인 감화의 장이 된다면, 그리하여 능력 있는 이들의 개인기가 펼쳐지는 스테이지가 아니라, 앞 다투어 겸손을 경쟁하는 회개의 장이 된다면 대장간은 저절로 지어질 것입니다.
사실 오늘 나누고자 한 얘기의 주제는 “선교사, 무엇하는 사람인가?”입니다. 답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찾아야 할 여러분의 몫입니다.
1994년 발간된 저희 수도회의 총장 회람 “쇄신된 선교적 투신을 향하여(Toward a renewed missionary commitment)"에서는 “그들은 담대히 하느님 말씀을 만방에 전했다.”(사도 4,31)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모든 선교사들에게도 언제나 유효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회 정의의 문제, 인권의 문제, 영적 도전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진행되는 물질주의, 개인주의, 가치관의 혼란 등의 문제들 앞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도전들은 넘지 못할 산처럼 거대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 또한 이 가운데 함몰되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 지도 잊고 사는 경우가 생깁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 우리는 우리가 육적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다운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자신의 현실의 삶에 적용하고 있는지, 다른 이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분을 위해 역경을 견디어 내며 새 생명의 시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는 언제나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일거리와 안정된 신분보장과 지원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대화는 단절됩니다. 선교사의 길은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와 평화가 가져다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축복과 은총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손에 잡히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도구를 통해서 활동하십니다. 나를 통해 하느님의 손길이 누군가를 만지십니다. 그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강렬합니다. 그 손길에 사람들은 작고 큰 떨림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떨림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나를 통하셨음을 알고, 그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이고, 이것이 선교사가 하느님을 아는 방법입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길이며, 신앙이고, 삶 자체입니다.
이 본질을 먼저 찾는 인식이 하나의 운동으로 모든 평신도선교사들에게 우선적으로 깃들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교회가 평신도선교사들을 바라보는 좁은 인식이 바뀔 것입니다. 교회가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저희 수도회의 선교사 형제들도 여러분을 지원하고 또 기도할 것이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의 본격적인 선교는 시작도 안 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선교사들의 사도적 성공을 위한 글라렛 선교사들의 기도
주 예수님, 당신은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저희의 공로 없이도 저희를 뽑으셨으며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지신 것처럼 저희를 파견하시나이다.
저희로 하여금 적재적소의 선교사들이 되게 하소서.
당신 성령을 저희에게 전해 주시고
사람들의 구원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힘을 주소서.
그들의 사업을 증진시켜 주시고
그들의 입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말씀하소서.
모든 이가 당신 말씀에로 돌아오도록,
우유부단한 이들이 강해지도록,
의로운 이들이 언제고 당신을 더 사랑하도록
그들을 축복하시고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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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라렛 성인은 자신의 생애 동안 수많은 단체들을 설립하거나 제안했는데, 이는 모두 사도직에 헌신하기 위한 단체들이었다. 그 이름을 몇 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모성심사도회(the Apostolic Society of the Heart of Mary : 평신도 사도직, 1847년), 대중을 위한 종교 서원(the Religious Library : 출판 사도직, 1849년), 글라렛선교수도회(the Congregation of Missionaries, 1849년), 성모성심재속회(the secular institute of Cordimarian Filiation, 1850년), 쿠바에서 설립한 교구 신용조합(licensed credit unions, 1852년), 티 없으신 마리아의 글라렛선교수녀회(the Claretian Missionary Sisters of Mary Immaculate, 1855년),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성 미카엘 학원(the Academy of St. Michael, 1859년), 교구 도서관(Parish Lending Libraries, 1869년). 이처럼 성인은 자신의 사도직에 쉼 없이 매진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 곧 사제, 수녀, 평신도들의 사도적 투신을 일깨우고 육성하였는데, 이는 그의 영에서 특별히 드러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인은 당시의 평신도 단체들이 신심운동, 즉 개인의 신심 함양에만 집중하던데 반해 평신도들의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즉, 성인의 교회론적 생각에 따르면, 평신도들이라고 해서 단지 수동적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 신비체의 선익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지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서품된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경신례를 거행하며, 성사를 집행하는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는다. 반면 평신도들은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제 직무 이외의 분야에 참여한다. 사실, 평신도들은 실생활 가운데 머물고 있는 바, 평신도들이 사제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도직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성인은 이러한 생각으로 교구 도서관 사도직을 지도 사제 외에는 평신도들에게만 위임하려 했는데, 고위 성직자 가운데 사도직에 평신도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초대한 경우는 당시로서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2) 글라렛 성인은 한 사람의 사도적 선교사가 배출되기까지 필요한 양성과정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다. “내가 빅(Vic)에 체류하던 초기에 나는 한 자물쇠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 공장장은 용광로에 쇠막대를 넣고 완전히 달궈지면 그것을 꺼내서 모루위에 올려 놓고 망치질을 하였다. 조수와 박자에 맞춰서 번갈아가며 망치질을 하였다. 공장장이 의도했던 모양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망치질을 하였다. 그 기억은 왠지 생생하였는데, 후에 그 망치질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당신께서는 나의 마음을 영성피정과 빈번한 성체조배의 용광로에 담그시고 당신과 성모 마리아께 대한 사랑의 불로 나의 마음을 달구시어 겸손의 망치로 치기 시작하셨음을 말이다. 나는 그분이 원하시는 모양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망치질되어야 함을 느꼈다. 그래서 주님의 망치질이 시작되면 나는 스스로 나를 연마하여 그분의 수고를 덜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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