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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치맛자락을 붙잡고…

기도

by 巡禮者 2013. 4. 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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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묵주이야기] 성모님 치맛자락을 붙잡고…

 

처음 천주교를 받아들인 조선 사람들은 세계 교회와 접촉해야 했다. 그리고 신부를 모셔와야 했다. 이 일을 나서서 하는 이들의 경비는 신자들이 성의를 모아 충당했다. 신부를 모셔오지는 못하고 소식만 들고 오는 이들은 묵주나 십자고상, 상본들을 갖고 와서 경비를 부담한 신자들에게 주었다. 그들의 교회 건설의지에 대한 보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시대에 이미 우리 신자들은 묵주를 잘 만들었다. 성물을 모두 외국에서 들여와야 했던 시절, 최양업 신부는 묵주는 더 이상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편지를 썼다.

 

 병인박해 시기, 소백산 산골의 한실 마을은 칼레 신부를 숨겨주고 있었다. 신부가 마침 신자들의 안전을 생각해 잠시 피신처를 옮겼는데, 그때 마을에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성물이나 책을 내놓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는 포졸들에게 신입교우 몇몇이 묵주와 교리서를 갖다 바쳤다. 신부가 돌아왔을 때 그들은 울면서 보속했다. 이 무렵 영천에서 어떤 여인이 길에 떨어져 있는 저고리를 주웠다. 여인은 저고리 안에서 진주 목걸이를 발견했다. 그 여인은 집에다 잘 감춰 뒀다.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에서 사람들이 자기 목걸이 같은 것을 들고 중얼거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신앙의 자유가 오자 신자들이 모여서 묵주신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인은 신자가 되었다.

 

 나는 역사 속의 살아 움직이는 묵주 이야기들을 해 왔다. 그러나 내 묵주기도의 체험은 퍽 늦다. 소리기도(염경기도)가 거의 없는 개신교에서 개종한 지 30년이나 지나도 정해진 기도문을 되풀이하는 묵주기도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묵주기도를 하다가 온갖 참견을 다하고 나서도 또 이어서 계속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갑상선암으로 입원했을 때 은사님이 묵주와 9일기도 책자를 갖다 주셨다. 물론 세 번의 9일 청원기도를 다 마치지 못하고 퇴원했다. 그 후 나는 밤이고 새벽이고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이었다. 기도문을 외우고 있으니, 깜깜해도 기도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날, 한밤중이었는데 묵주기도를 시작하자 몸에 전율이 일었다. 몸이 따뜻해지며 행복한 느낌이 있었다. 그 뒤 묵주기도는 몸으로 확인하는 성모님께 말걸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되풀이하며 외우는 기도문이 자기를 비우는 방법임을 알게 됐다. 즉 끝없이 되풀이되는 묵주기도는 결국 관상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는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즉 예수님 일생을 체험해 들어가게 된다. 묵주기도는 성모님 치맛자락을 붙들고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기도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뜻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묵주기도를 하면 꼭 이뤄진다거나, 성모님께서 특별히 전구해 주신다고 한다. 응답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 인생에 이뤄지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실제로 모든 것이 그때그때 이뤄졌기 때문에 오늘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묵주기도를 통해서 주신 것을 더 잘 깨닫는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묵주는 손으로 쥘 수 있도록,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부여하신 배려이다.

 

 나를 통제해야 할 때 주머니 안에 있는 묵주에 손을 대 본다. 나의 불완전함이 기억된다. 이렇게 역사 속 그 많은 이들과 함께 오늘도 나는 내 묵주를 짓고 있다. 묵주기도 고리가 이어진다.

 

- 김정숙 아기 예수의 데레사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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