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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예수와 자캐오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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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예수와 자캐오

발행일 : 2004-10-31 [제2421호]

“최고의 친교는 무조건적인 용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란 책이 있습니다. 저자가 무게 3톤이 넘는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멋진 쇼를 펼치는 것을 보고 그 범고래를 훈련시킨 조련사들을 만나 범고래의 훈련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포식자로 알려진 범고래가 그토록 멋진 쇼를 하게 되는 것은 조련사의 긍정적인 태도와 칭찬이라고 강조하면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추어라』 『벌을 주지 말고 시간을 주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지혜를 가족과 직장 그리고 동료들에게 적용한다면 비록 칭찬의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결국은 가족과 직장에서 성공을 가져온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세관장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 예리고라는 도시에서 예수님을 뵙기를 열망하는 세관장 자캐오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집에 머무름으로 그 가정이 구원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줍니다. 부정 축재의 대표자요, 검은 돈과 관계된 인물, 매국노들이 세리라면 이러한 인물들의 으뜸인 세관장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관장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상기해야할 부분은 이 구절에 앞서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자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부자인 자캐오가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회개의 대상에서 제외될 사람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같이 묵상해 보고 싶은 내용은 자캐오의 변화입니다.

즉, 『제 재산의 반을 나우어 주고…네 갑절은 갚겠다』라는 자캐오의 회개가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캐오의 내면의 갈등 등 참으로 많은 요소들이 작용을 했겠습니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결정적이요 근원적인 요소는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머무르겠다」라는 말은 「밤을 지내다」 「숙박하다」는 뜻으로 당시의 관습으로는 식사와 더불어 최고의 친교를 드러내는 행위요, 또 이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용서를 뜻하는 행위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자캐오를 감동시키고 남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자캐오로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너무나 예외적이고 특별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세관장 자캐오는 남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며 살았던 인물로 지금은 비록 부자로서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그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증오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이 그에게 보이는 반응은 적대감과 조소요, 접촉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자캐오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캐오는 심한 외로움과 고독감에 묻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자캐오가 그토록 예수님을 뵙기를 원했던 것도 어쩌면 이러한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어떤 교훈이나 충고를 듣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나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을뿐더러 충고나 교훈도 없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집에 머무르겠다는 최고의 친교를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가정이긴 합니다만 오늘 복음에 앞서 나오는 부자 청년에게와 같이 예수님이 어떤 가르침을 주려 하였다면 아마 죄인 자캐오는 죄인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이유와 따짐없이 최고의 친교를 보이고 그러기에 자캐오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그 때의 심정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 꾸중을 기대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았을 때의 감동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교육 심리학에서 보면 인간의 긍정적인 변화에 역할을 하는 것은 긍정적인 행동에 대한 칭찬과 격려와 보상 등 긍정적 강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잘못에 대한 꾸중 등 벌은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긍정적인 일에 대한 칭찬과 격려보다는 욕심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못에 대해 따지고 판단하고 질책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기억해야 할 점은 판단과 질책이 아니라 예수님의 최고 친교가 자캐오를 변화시켰다는 것이고 이 모습이 오늘의 우리가 힘들지만 따라야 할 교훈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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