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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난

기도

by 巡禮者 2010. 8. 5. 18:00

본문

 

 

 

 

예수님의 수난
 
 
 
 
그분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모든이에게 다가가시려고
무력하게 되셨다.
 
  마음만 먹으셨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쉽게 매혹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소박함과 헌신을 택하셨다.
이 선택 뒤에는 내적인 나라, 마음의 나라가 있다.
그분은 모든 이의 형제가 되려 하셨고,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내적인 사람으로 사는
모험을 감행하셨다.
곧 적당히 타협하거나 다른 이의 눈을
속이지 않으며 진실하게 사는 내적인 사람!
그분은 인간 기본권을 빼앗긴 이들과
좌절한 이들을 위해 사셨고,
짓밟힌 이들과 함께하셨으며,
인간의 비참과 무기력을 감당하셨다.
그분은 결코 기분이 좋아서라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민족의 요청 때문에,
나아가 우리의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으로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다.
병자들을 치유한 것은
영적 의미가 있을 때뿐이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용하는
내적인 힘을 세상에 주고자 하셨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삶의 원칙을 세우고자 하셨다.
우리 삶의 내적인 혁명,
세상에 자비로움과 사랑이
시작되기를 원하셨다.
그분의 관심은 사람들이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립관계를 풀어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주고
모든 이의 친구가 되고자 오셨다.
자, 이제 그리스도의 실존에 관한
이 관점을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포하신 것 중에서
우선 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미워하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모든 이, 특히 자신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들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들한테서 지켜주셨고,
어린이들과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이들을 보호하셨다.
사람들은 그분한테서 고향을 찾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에 대한 경외심과
삶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계셨다.
그분의 삶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분은 나약하기 때문에
무력함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다가가시려고
스스로 무력하게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서도
기쁨을 만끽하셨다.
맛있는 식사와 활기를 주는 음료,
아름다운 산책과  진실한 우정,
사람들 앞에서도 그분은 눈부시지 않았다.
너무 빛나면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난을 당하실 때도 '요란하지'않으셨다.
그분은 절규하고 피땀을 흘리셨다.
텅 빈 공허감과 모두 떠난 고독감을 느끼셨다.
참 인간으로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남김 없이 맛보셨다.
최후의 시간에도 좌절한 이에게 희망을 주셨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34)
 
 
그분은 파릇한 영혼이셨고, 세상의 권력과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분한테는 생명의 싱싱함이 있었고,
실존(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분 자체가 '기쁜 소식'이었다.
그분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기뻐하셨고,
삶에 대한 걱정이 없으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인간 삶의 친밀성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1베드 1,8)
  
 
좀더 깊이 묵상해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명성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삶은 바닷속 깊은
심연과도 같은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모두 표면적이고
겉핥기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비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사람은
오랫동안 홀로 있어야 한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혼자 해야 한다.
성숙하기 위해 홀로 있어야 하고,
유혹받을 때도 혼자여야 하며,
삶의 위대한 행업 역시 온전히 홀로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독에서 그분 말씀이 발아한다.
그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그 본질을 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당신 영혼에 받아들여 삶으로 변화시키셨다.
세상을 내적으로 체험하셨고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계의 사물이
근원적으로는 하나임을 아셨다.
그분 이야기의 소재는 거의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실존은 고요하다.
그분의 영혼은 '듣는다'.
내면은 고요하고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분은 일상과
습관의 힘을 극복하셨고,
걱정이 없었으며,
모든 만남을 위한 내적인 공간을
마련해 놓고 계셨다.
 
 
그분은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이처럼 정화된 내면의 힘에
사도들은 매료되어 그분을 따랐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았다.
그분의 친구들이 그분을 일컬어
'좋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론에서 그리 중요한 진술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자비와 사랑을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험한 사람은
오직 신인(神人)만이
자비와 사랑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그대로 자애(慈愛)였다.
그분은 끝까지 -십자가상의 종말까지-
고요와 위로와 평화를 선사하셨다.
그리스도의 어떤 면이,
사람들이 '경탄하여'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라고 소리칠 정도로,
그리고 그분을 "좋으신 선생님"
이라고 부를 정도로
감동을 준 것일까?
그리스도는 위대한 스승도 아니었고,
그분의 삶 역시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분의 삶은 십자가 위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자비와 사랑은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에서 잘나가는 사람,
어떤 것을 성취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도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몸매가 아릅답다거나 잘생겼다고 해서
'훌륭하다'고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자비는 서로 다르다.
또한 어떤 사람이 뛰어나게 명석하고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다고 해서
그를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우리가 어려울 때
예리한 통찰력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걸까?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해보자.
자애란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무엇이 주변 사람들을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그리스도의 삶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면 즉시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자애는
바로 그분 삶의 평범함에 있다.
이 평범함은 그분이 삶과 인간 존재를
그냥 좋게 생각한 것에서 드러난다.
그분 마음에서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나오는 움직임은
불신이나 적대감이나 미움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기꺼이 용서하셨고, 실수를 했다고
못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그 사람이 피어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그분은 마치 모든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대는 살 권리가 있소,
나는 그대를 해롭게 하고 싶지 않소.
그대는 존재해야하오"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삶을 좋게 생각하신 것은
사람을 한 번도 판단하지
않으신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분은 아셨다. 인생은 아주 짧다는 것을.
사람들이 왜 서로 싸우느지를.
사람들이 왜 서로 아프게 하는지를!
 
 
왜 사람들이 우리에게
악한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을 발전시키고
보호하고 꽃피우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삶의 뿌리는
기쁨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분 역시 실망하고 불행하게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삶에는
즐거운 평온이 깃들어 있다.
아주 피곤한 순간에도
그분은 어둔 세상에 빛을 주고자 하셨다.
그리스도는 평화이셨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말은
그분이 직접 선포하신 것이다.
평화의 복음은 그분 삶에서 가장 큰 힘이었다.
호의, 사랑,우정,평화와 같은
부드러운 마음의 움직임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평화'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평화'는 우리 신앙의 핵심어다.
 
 
 
 
이 사람을 보라
-라디슬라우스 보로스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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