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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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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0. 6. 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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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8,22-26)


 마르코복음서를 읽어보면 치유와 구마 기적이 몇 개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시는 모습이 다 다릅니다. 단순히 용서를 선포하실 경우도 있고, 이웃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하신 경우, 환자에게 어떤 동작을 시킨 경우, 환자를 고친 것이 아니라 그 부모를 고쳐서 구마한 경우 등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꼭 알맞게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을 살피시어 쓸데없는 것은 쫓아내시고, 막힌 곳은 뚫어 주시며, 부족한 것은 메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으로나 육으로나 정신으로나 완벽한 분이셨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예수님을 인간의 원형(原型)이라고 보았습니다. 안셀름 그린 신부는 50가지의 예수의 모습이라는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족한 모습을 역으로 그려냈습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이런 예수님을 관조(게슈탈트)하시는 분이라 불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소경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것은 과거와 단절입니다. 잘못된 악습으로부터 단절을 상징합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치유를 그저 어떤 마술과 같은 기적으로 격하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가 다 끝난 뒤에도 그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요청하십니다. 어두운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살라는 주문이며 쓸데없는 소문을 내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소경의 치유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차 육신의 눈이 열리는 것이고 그 후에 영의 눈이 온전히 열려 모든 것이 또렷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옆집에 사는 사람이나, 이웃에 있는 상점도 수년 동안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뒤 늦게 이런 데가 있었나하고 놀라게 됩니다. 즉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마저 그렇다면 영적인 것을 보려면 얼마나 더 통찰하고 직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뜻을 앞서십니다. 그러기에 소경을 치유할 때 단계를 거쳐 수행하신 것입니다. 정작 필요한 대로 알맞추 베풀어 주십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언제나 끌탕하고 애면글면하기만 합니다. 미쁘신 주님만 따라야 할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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