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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한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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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한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
 
이홍근 바오로(대구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북경 원인을 발굴한 신부
 
테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은 1881년 프랑스 중부 오베뉴(Auvergne)에서 출생하여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1911년 30세 때에 사제로 서품될 때까지 신학 외에 지질학, 인류 고생물학에 몰두했고, 그 후에도 파리 대학에서 이 부문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져 1914년부터는 전선에 나가 위생병으로도 근무했다. 대전이 끝난 후 1919년말에 전선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와 ‘포유류의 전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파라 가톨릭 대학 교수가 되어 그 곳에서 잠시 강의를 맡았다. 특히 그의 진화론적 인간관과 우주적 그리스도론과 진화를 앞으로 이끌어 가는 신 즉 과학적으로 추론된 신에 관한 새로운 사상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가 속한 예수회로부터 해외 주재 연구라는 구실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1923년부터 1946년까지 20년 이상 중국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 연구에 열중했고 그 동안 1929년에는 인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난 북경 원인(北京原人)을 발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6년에서 1951년까지 다시 파리로 돌아와 ‘파리 과학 연구원’과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연구와 교수 생활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교수 활동이 교회 당국으로부터 제약을 받고 있던 중 1951년 인류학 연구 가관인 뉴욕의 웨느-그렌(Wenner-gren) 재단의 상임 연구원으로 초청받아 거기서 일하다가 1955년 4월 10일 부활대축일 아침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경력이 말해 주듯 테이야르는 사제인 동시에 지질학자와 인류 고생물학자로서 지층의 구조를 면밀히 연구하고 고생물의 화석(化石)과 인류의 두개골을 더듬어 보면서 고대 인간의 발자취를 탐구하고 그 속에 함축된 인간과 우주의 의미를 숙고하고 재발견하려 했다. 그는 사제요 동시에 과학자였으므로 그 누구보다도 과학적 결론인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할 수 있었고 또 과학과 종교를 종합하여 일원적이고도 미래 지향적인 세계관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의 생전에 그의 사상은 이단적이라고 위험시되고 원고는 출판 금지당했으나 사후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선풍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현대 과학에서 지적 윤리적 위기를 발견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심지어 인류 멸망에 대한 공포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테이야트는 자신의 과학적 진화론과 그리스도론에서 인류의 미래를 멀리까지 낙관적으로 예시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런 점으로 보아 그는 현대 사상가와 신학자들 가운데 인류의 미래를 누구보다도 가장 장엄하고 희망차게 열어 보인 사상가라 하겠다.
 
 
진화에는 법칙이 있다
 
테이야르는 과학자로서 지질계로부터 생명 발생과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하나의 통일체로 고찰했다. 그는 이와 같이 우주의 전체 구조와 의미를 알기 위해 우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현상학적으로 관찰한 것이다. 현상학적 관찰이란 우주의 본체론적(本體論的) 원인이나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순수히 감성이나 지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놓고 나타나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과학적 관찰이지 결코 철학적 형이상학적 관찰이 아니다. 그러므로 테이야르는 자신의 우주론을 과학적 진화 현상론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또 진화의 초물리학(hyperphysics of evolution)이라고도 했다.
 
테이야르는 우주를 결코 정적(靜的)이고 완결된 어떤 체계로 보지 않고 동적(動的)이고 발전적인 즉 미래 지향적인 하나의 역사로 보았다. 따라서 우주는 완성을 향해 진화하는 도중에 있다. 테이야르에 의하면 우주의 역사는 이미 120억 년이나 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 우주는 그 완성점 즉 오메가(Ω) 점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도 1백만 년은 걸릴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우주기를 넘어서면 물질이 영화(靈化)되는 새 세계가 닥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되어 가고 있는 이 우주에는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테이야르는 그것을 ‘복잡화-의식의 볍칙’이라 불렀다. 이제까지 우주에는 무한대와 무한소라는 두 개의 방향만 있는 줄 알았는데 테이야르는 우주 진화에서 ‘무한 복잡’이라는 현상을 포착했다. 즉 우주는 인간을 기준으로 하여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방향과 아울러 무한소로 뻗어 나가는 방향이 있는데 그것은 지구, 은하수, 성운(星雲), 우주 직경 등의 세계와 세포, 원자, 전자, 원자핵 등의 세계이다. 그런가 하면 이 세계에는 매우 단순한 것에서 매우 복잡한 것에로 뻗어나가는 제3의 무한 즉 무한 복잡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 진화의 방향이다. 무한대의 방향에서는 상대성이, 무한소의 방향에서는 양자 현상(量子現象)이 나타나는데 제3의 무한의 방향에서는 의식(意識), 자유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복잡화 현상은 유기적 관계의 복잡화를 말한다. 즉 사물이 구조상으로 복잡하면 내적으로 더욱 큰 의식(정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데 테이야르는 사물의 구성 요소를 외면성이라 하고 사물의 활성(活性) 또는 의식을 내면성이라 불렀다. 이것은 알아듣기 쉽게 물질과 정신 혹은 질량과 에너지라 할 수 있겠다. 물질과 정신은 엄연히 구별되나 동일한 사물의 양면이다. 테이야르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그 내부에 진화의 에너지가 잠재해 있어서 언제나 더욱 큰 복잡성과 더욱 큰 내면성 즉 더 높은 의식을 지향한다. 간단히 말하면, 우주 진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금부터 30억 년 전에 생명이 처음 지상에 발생하여 생명권을 이루다가 지금부터 약 1백만 년 전에 생명을 모태로 삼아 사고(정신)가 돌현했다. 이 사고의 창발이 바로 인간의 출현이라 한다. 그 후 지금부터 약 3만 년 전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고 지혜인(知慧人, Homo Sapiens)이 나타나 집단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테이야르는 이것을 공동 사고(共同思考, Coreflection)라 부르는데 이것은 1백만 년 전 인간 출현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임계점(臨界點)이다. 그런데 3만 년 전 지혜인이 출현한 후부터 진화의 양상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이제 진화는 자율 진화와 계획 진화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진화를 이끌어 가는 인간
 
인간은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즉 자아 의식적 존재이고, 자가 주변의 세계에 관해 반성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타고난 지성과 창조적 의지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지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의 미래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이제 인간은 우주 진화의 첨단 즉 진화의 화살촉으로서 세계를 진화의 궁극 목표 즉 오메가 점으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인간 안에서 또 인간을 통해 진행되는 진화는 염색체에 의한 생물학적 유전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적 문화적 유산(사회적 유전)과 함께 지성 및 의지에 의한 고안(考案) 즉 창조력의 발휘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 진화는 개인의 발전뿐 아니라 개인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에 근거하는 사회와 관련된다. 즉 인류의 진화는 인격간의 내적 인력과 일심(一心)을 통해 마음이 서로 밀접하게 결부됨으로써 더욱 유기적이고 통일된 사회를 이룩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인격 상호간의 관계가 더욱 커지고 다양화될수록 인간의 행위나 자유 선택의 범위도 더욱 넓어지고, 인간 상호 의존과 협력에 의하여 사회는 발전하고 마침내 인류 집단이라는 초유기체(超有機體)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공동 의식 즉 사회적 반성 의식이 나타나게 된다. 더욱이나 19세기말부터 세계적인 인구 격증, 자연 과학의 급속하고도 현저한 진보와 함께 인류의 사회화는 급진전하고 증대되고 있다. 또 현대의 새 기술 과학은 인류를 하나의 통일체 즉 초인간을 형성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중력기는 인류의 근육이고, 교통 기관은 인류의 혈맥이며 통신 기계는 인류의 신경 계통이고, 컴퓨터는 인류의 두뇌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술화하는 현대의 모습으로, 테이야르는 인류의 통합, 기술화, 점차적 이성화(理性化)를 현대 세계의 세 가지 특징으로 보았다.
 
 
진화의 궁극 목표는?
 
이와 같이 세계는 복잡화-의식의 법칙에 따라 더욱 큰 내면성(의식)을 지향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통일체 즉 초유기체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가 앞으로 무한정으로 계속될 수는 없고 어느 점에 가면 끝맺는다 한다. 이 점이 바로 진화의 종국점 즉 오메가 점이다.
 
그런데 테이야르는 과학적 진화 현상론에서 오메가 점을 포착한 후 그리스도교 계시를 이용하여 우주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오메가 점과 동일시하였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과 목적이고, 아울러 만물을 완성하는 통일력이다. 테이야르는, 우주에는 결코 두 개의 다른 목표와 정상이 있을 수 없으므로 진화 현상론에서 언급된 오메가 점이 바로 계시에서 언급된 위격신(位格神) 그리스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의 궁극 목표는 유일한 오메가-그리스도(Ω-Christ)뿐이라고 한다. 이 오메가-그리스도는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우주의 진화를 앞으로 이끌어 가는 동시에 위로 이끌어 간다. 이리하여 진화는 전진하는 동시에 상승하며 오메가-그리스도는 과학의 신(神)인 동시에 신앙의 신이다. 따라서 세계 진보를 지향하는 현세적 충동과 신에게로 나아가려는 종교적 충동은 그리스도-오메가 안에서 하나로 통일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과학의 상호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종점 즉 오메가인 동시에 우주를 진화시키는 진화의 원동력이다.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내재하는 자연 법칙이고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주는 통일 원리 즉 신의 지혜인 로고스이다. 이 그리스도는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함께 계시는 성자로서 인간성을 입고 강생한 분 즉 신인(빼人)이다. 그런데 과학은 우주의 갖가지 현상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자연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므로 결국 우주의 창조자인 신을 탐구하게 이끌어 간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과학과 종교의 상호 관련성과 보완성이다. 과학은, 신이 창조한 세계를 탐구하고 자연 법칙을 발견하여 인류 복지에 응용하고, 종교는 과학적 업적을 인정하고, 또 과학의 진로와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과학은 어디까지나 자기 고유의 연구 분야가 있어서 자연 현상의 일부분만을 탐구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문제나 인간 실존의 근본 문제에 대해 아무 해답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천문학자가 천체의 변화와 운동을 발견하고, 생물학자가 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고, 의학자가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아내고, 물리학자가 물질 세계 안에서 작용하는 역(力)관계를 발견하고, 지질학자가 지층의 구조와 지구의 연대를 알아낸다 해도, 그런 것으로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실존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과학은 종교의 영역에 넘겨야 한다.
 
또 과학이 만일 자기 본연의 사명인 ‘행복한 세계 건설과 인류의 복지’에 전적으로 기여하지 않고 인류의 비극과 가공할 결과를 낳는 경우, 종교는 과학의 자기 과장과 횡포를 견제하고 그 본래의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종교는 과학의 직분과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과학에 대한 경시나 무지는 결국 종교가 담당할 과학 시대의 선교적 사명을 제대로 수행 못하게 할 것이다.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는 게 아니다
 
테이야르의 진화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우주의 종국점인 오메가로서 우주 만물을 초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우주 안에 내재하여 진화를 이끌어 가는 진화의 원동력이고 우주의 완성자이다. 이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 신에 대한 경배와 현세적 활동, 영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는 서로 결부되어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신이 창조한 세계는 바로 신이 내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세계인만큼 인간의 현세적 노력은 우주 진화의 종국점인 그리스도 오메가를 향해 세계를 전진시키고, 이때 인간의 현세적 활동은 그 자체로 종교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의 현세적 활동의 일면인 과학적 탐구는 바로 신에 대한 공경과 예배가 된다.
 
결론을 말하면, 종교와 과학은 우주 진화와 세계 완성의 두 요소로서 전자는 세계를 위로 또 후자는 세계를 앞으로 이끌어 가되 이 양자는 그리스도-오메가 안에서 종합된다.
 
사제인 동시에 과학자였던 테이야르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화 현상론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삼아 그리스도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관을 수립하여 종교와 과학의 종합을 시도한 것은 현대 사상에 큰 공헌이라 하겠다. 더욱이나 테이야르는 과학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학의 본래적 사명을 역설하고, 우주 진화에서 차지하는 인류의 위치와 역할을 명시하며 미래의 새로운 전망을 예시하여 예언자적이고 혁신적인 신학자요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다.
 
[경향잡지, 199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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