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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6: 조르쥬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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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6) 조르쥬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은총인걸요"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
 
 
▲ 1936년 발표되자마자 그해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부문 대상을 차지한 조르쥬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사진은 1960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제5권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표지.
 
 
프랑스 가톨릭 작가 조르쥬 베르나노스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을 아르또아 지방 한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마을은 숲이 우거지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비롯해 주로 수도회 학교들을 택해 공부했다. 이같은 성장과정 때문인지 그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어린이 심성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에 투철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는 온건한 경건성 자체라기보다 타락한 현대세계를 그리스도교가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비판을 가하는 첨단적 지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인간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생각이다.
 
베르나노스는 대학에서 원래 법학과 문학 두 과정을 전공했는데 1926년에 소설 「악마의 태양 아래서」를 발표해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이 1936년에 발표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이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쌩 봐스뜨 언덕 아래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 본당 신부가 일기체로 써 나간 것이 이 소설이다. 일기체이니만큼 묵상과 잠언 성향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스토리 자체는 일상 현실의 구체성들을 섬세하게 그려놓고 있다.
 
특히 이 소설 문체는 신선한 감수성을 구사하고 있다.
 
"허파 가득히 집어삼켜 배에까지 내려가는 그런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쌩 봐스뜨 언덕에서 보니 십일월 보기 흉한 하늘 밑에서 동네가 별안간 몹시 찍어 눌리고 비참한 것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본당이 있는 마을의 이러한 장면 묘사는 또 3㎞ 떨어진 다른 본당에서 삼종을 치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때가 있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이처럼 감각적이고도 근육질적 공간 묘사 안에서 본당 신부와 신자들의 일상 삶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본당 신부로서 총괄하는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 사람들에게 문제점이 많이 있다. 그 첫째는 사람들이 대체로 권태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권태는 교회 공동체에도 마찬가지로 있다는 것이다.
 
이 권태는 사람들이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 마저 피하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비본질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사람들은 겉으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방탕과 교만에 차 있으며, 이러한 세태는 어린이들의 순진성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문제가 있다.
 
백작 부인과 그 가문의 어린 딸을 비롯해 신자들은 신부를 괴롭히는 세력이 돼 있다. 의사 델방드는 신부에게 들이댄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지 2000년이 지났어도 누추한 가난뱅이 환자들을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당신네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했기 때문이오."
 
올리뷔에도 신부에게 들이댄다. "국가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교회는 국가를 지배한다고?" 허울 좋은 명분으로 국가별 권력에 결탁한 교회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해체시켰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속화되고 파문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이 잔 다르크의 경우이다. 교회에 의해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했고 교회에 의해 뒷날 다시 성녀가 된 이 무원칙의 문제다. 교회가 사람들을 국가에 넘겨주었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무기와 의복과 음식을 주고 사람들의 양심을 차지해 버렸다. 신학자들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지난 4월 12일 예수부활대축일을 맞아 공개된 프레스코화 '부활'. 르네상스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프랑스 남동부 사부아 지방 성 세바스티안 성당에 소장돼 있다.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자리한 거룩함과 악의 실존인 사탄과의 싸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 "20세기 모든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집필한 조르쥬 베르나노스의 가톨릭 문학은 이같은 프랑스 천주교회의 오랜 신앙적 전통과 토양에서 잉태돼 꽃을 피웠다. 【사부아 랑스르빌라드=CNS】
 
신부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한다. 그러면서 인간 본질의 내면을 지적한다. 하느님 안에서 초자연적 인식을 갖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믿지 않게 되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를 원치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진리가 우리에게 흥미를 일으키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래도 본당 신부에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한 어린이가 나를 고독에서 끌어낸 것 같습니다. 신부님은 어린이입니다. 하느님이 신부님을 영원히 그대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내가 죽을 때엔 신부님 외에는 부르지 않겠습니다."
 
신부는 자신에게 시달림을 주는 사람들과 오래 고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승리였다. 그러나 신부는 이 승리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만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은총'에 대한 인식은 다른 사람들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끝에서 한 사람이 병자성사를 줄 신부가 채 도착하지 않은 순간에도 "아무려면 어떤가? 모두가 은총인걸"하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결론은 '은총'으로 맺지만 베르나노스는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많은 갈등을 이야기한다. 현대인들의 권태, 자신과 진리에 대한 무관심, 방탕, 국가 권력의 횡포, 황금만능주의 등에 대해 다 알았고 다 대응해 생각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 소설부문 대상을 수여하면서 다음과 같이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 소설은 20세기의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1급 소설로 평가될 수 있다. 작품 구성에 대해서도 다른 일반적 언급을 가할 여지가 없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이후에 베르나노스는 1948년에 희곡 작품으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를 발표했다. 인간 죽음에 대한 묵상이 주제이다. 베르나노스는 인류 역사 안에 의롭지 않은 세력의 도전이 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래도 선의가 끝내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나 그 승리 과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 남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영성에서 얻는 보람을 마음에 새겨 나아갔다.
 
이것은 인간 정신의 폭넓고 긴 역정이며, 끝없는 이상주의자의 현실이다. 그리하여 베르나노스는 유럽의 비정신화와 그리스도인들의 변질을 비판하며 한때 브라질에 이주해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날은 고국 프랑스에서 맞이했다.
 
 
조르쥬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1948)는?
 
▲ 20세기 초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톨릭 작가로 꼽히는 조르쥬 베르나노스.
 
1888년 2월 20일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파리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법학,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왕당파 주간지 「노르망디 전위대」 주필을 거쳐 1차 세계대전에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상을 입는다. 제대한 뒤 보험회사 세일즈맨으로 일하면서 첫 작품으로 희곡을 썼다가 잃었고, 두 번째 작품으로 1919년부터 7년간에 걸쳐 대표작 중 하나인 「악마의 태양 아래서」를 발표하며 필명을 얻는다.
 
이후 「사기」(1927년), 「환희」(1929년,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한 범죄」(1933년)를 발표했고, 1936년에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발표하면서 "20세기 전 문학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로 간주될 것"(피에르 보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혔다.
 
베르나노스는 주로 악의 실존인 사탄과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자리한 거룩함과의 싸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밖에도 「무셋드 후일담」(1937년), 「달빛 어린 공동묘지」(1938년), 「진리의 스캔들」(1939년), 「영국인들에게 부치는 글」(1942년), 「윈씨」(1943년), 「영혼들의 십자가의 길」(1942~1945년),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1947~1948년) 등을 남겼다. 「악마의 태양 아래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등은 뒷날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마지막 심판 날, 천사들께서는 나팔을 아주 크게 불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묻힌 자는 가는귀를 먹었습니다"라는 비명을 남겼다.
 
[평화신문, 제1021호(2009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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