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영농철인 요즘,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농작업으로 인해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농민들이 많다. 보통 허리가 오랫동안 심하게 아프면 ‘수술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우다. 척추질환의 90% 정도는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 아프고 다리 저리는 허리 디스크
과수농사를 짓는 50대 후반의 장모씨는 수년 전부터 무리하게 일을 하면 허리가 아프다가 쉬면 나아지는 증상이 반복됐다. 그러다 병원에 가기 보름 전부터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심해지고 오른쪽 다리 뒤쪽이 저리고 당겨서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을 정도였다. 그는 병원에서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자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걱정했던 그는 바로 당일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척추는 뼈와 추간판(디스크)으로 구성됐고 추간판 안에는 젤리 형태의 말랑말랑한 수핵이 들어 있다. 수핵은 양파껍질 형태로 보호막 같은 섬유륜이 둘러싸고 있다. 추간판은 체중을 흡수하고 척추뼈 마디마디가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돕는 일종의 스프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추간판이 약해지면서 척추의 압력이 가해지면 이를 이겨내지 못한 추간판이 원래 위치에서 뒤로 밀려나오게 된다. 추간판이 더 심하게 밀려나와 섬유륜이 파열되면 수핵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를 가리켜 추간판 탈출증이라고 한다. 추간판 자체의 손상으로 요통뿐만 아니라 뒤로 밀린 추간판이 신경을 자극, 다리가 저리거나 당기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우선 휴식을 취하고 약물·물리치료 등을 받아본다. 그래도 통증이 지속되면 ‘고주파 열 응고술’로 치료할 수 있다. 이는 문제가 생긴 추간판에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넣어 돌출된 추간판을 고주파로 응고·수축시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차단하는 치료법이다. 국소 마취 후 얇은 열선만을 삽입하기 때문에 주삿바늘 정도의 상처만 남고 치료에 걸리는 시간도 30분 내외로 짧아 당일 퇴원이 가능하다.
◆엉덩이·종아리에도 통증 오는 척추관 협착증
하우스 농사를 짓는 70대 박모씨는 몇년 전부터 오래 걸으면 허리가 뻐근하고 두다리가 저려왔다. 최근엔 5분만 걸어도 양쪽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저리다 못해 터질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해봤다. 하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병원을 찾은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척추관 협착증’.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 당일 치료가 가능했다.
나이가 들수록 척추 안쪽의 신경다발을 보호하는 척추관이 좁아지면서 신경을 누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허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신경이 압박을 받으면서 엉덩이나 허벅지, 종아리나 발까지 통증이 퍼지는 경우도 있다. 또 50m만 걸어도 다리가 저려 쭈그려 앉아 쉬게 된다. 좀 나아져 다시 걸어도 또 쉬는 걸 반복해야 한다. 바로 퇴행성 질환인 척추관 협착증이다. 추간판 탈출증 환자에 비해 연령대가 고령인 점이 특징.
척추관 협착증을 앓는 환자들은 허리를 구부리면 척추관이 잠깐 넓어져 통증이 감소하는 탓에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계속되면 허리가 점점 굽어지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가장 바람직하다.
이 증상 초기에는 물리치료와 운동요법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추간판 탈출증에 비해 치료 효과는 떨어지는 편. 이럴 때 ‘신경성형술’을 고려해 볼 만하다. 이 치료법은 꼬리뼈를 통해 가느다란 관을 주입해 튀어나온 신경과 주변 구조물 사이를 벌려준다. 또 눌려서 부은 신경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투여한다. 국소 마취와 5분가량 소요되는 짧은 시술시간, 신경 손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김재훈<제일정형외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