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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로 가는 일곱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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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0. 5. 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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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로 가는 일곱단계

 

불교의  옛경전에는 ‘일곱개의 寺院’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는 수피(Suffism)의 ‘일곱개의 골짜기’, 그리고 힌두에서의 일곱 차크라(charka)와 같다.

1.첫 번째 사원‐물질적 차원 :  물라드하르(muladhar)챠크라
우리는 육체에게 감사해야 한다. 육체는 신비한 것이다. 육체는 실재다. 육체는 신의 위대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단 한순간도 육체를 반대해서는 않된다. 동시에 단 한순간이라도 ‘나는 오직 육체일 뿐이다’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사다리의 첫단계인 이 육체만을 숭배한다면, 나머지 여섯 단계를 망각해 버린다면 첫단계에 갇혀 버리게 된다. 여기 더 이상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첫 번째 단계는 그 다음 단계와 연결됨으로써만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 이상이다. 하나의 도약 발판으로서 육체를 사용해야 한다.

2.두 번째 차원‐정신 신체 상관적인 사원 : 스외드히스탄(svadhistan)챠크라
프로이이트파 정신분석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단지 행동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꿈의 영역을 넘어가지는 못했다. 꿈은 인간 속에서 하나의 환영처럼 존재하고 있다. 꿈은 인간 무의식세계로부터 의식계로 표출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꿈은 암시다. 그러나 꿈만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의 해결책은 없다. 꿈을 사용하되 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아 단계는 모든 것을 性의 용어로 해석되는 성의 단계이다. 프로이트파의 정신분석가에게 가면 모든 행위를 성으로 환원시킨다. 모든 시나 미켈란제로 같은 위대한 예술성을 성으로 환원시키고 아름다운 자들을 모두 추하고 억압당한 성으로 환원시켜 버린다. 프로이트이에 따르면 붓다도 역시 환자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는 성의 절제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접근태도는 가장 위대한 인간을 가장 추한 인간으로 환원시켜 버리고 있다.
두 번째 단계로서의 정신분석학에 바탕을 둔 프로이트식 견해는 첫 번째 단계보다 높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3.세 번째 사원‐심리학적인 사원 : 마니뿌라(manapura)챠크라
아들러(Adler)가 이 사원의 세계에 해당한다. 그의 세 번째 차원은 프로이트의 차원보다 약간 높다. 그러나 아들러에게 있어서도 프로이트가 모든 것을 성으로 환원시켜버렸듯이, 모든 것을 열등 콤플렉스로 환원시키고 있다. 아들러는 위대해지려고 하는 이면에는 열등감이 자리잡은 것이며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남을 지배하려는 야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들러는 에고)ego)이상의 어떤 목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에고는 성보다 약간 높은 차원이다.

4.네 번째 사원‐정신 영적인 사원 : 아나하따(anahatta)챠크라
칼 융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이 이 영역을 통달했다. 불합리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그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결코 이성권에 갇혀 있지 않으려 하였다. 불합리한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모드 용납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 차원에서 현대 심리학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네 번째 영역의 사원에서 정지하고

있다.

5.다섯 번째 사원‐영적인 사원 : 비쉬드히(visuddhi)챠크라
이슬람, 힌두이즘, 기독교 등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종교는 모두 이 다섯 번째 차원에 고정되어 있다. 이들은 이 차원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조직화된 모든 종교들, 교회나 사원은 모두 이 차원에 머물고 있다.

6.여섯 번째 사원‐영적 초월 사원 : 아즈나(ajna)챠크라
요가와 그 외의 다른 방법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 세계를 통하여 무수한 방법들이 계발되었다. 집단을, 조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론보다는 경험을 더 중요시 하는 실천가들에 의하여 영적 향상을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계발되었다. 몸과 마음으로 이 방법들을 수련하게 되면 인간 자신속에 어떤 하모니가 창조된다. 요가는 이런 종류의 방법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7.일곱 번째 사원‐궁극적인 사원, 사원의 사원, 초월,그자체 : 사하스라르(sahasrar)챠크라
탄트라, 타오(道), 禪, 그리고 붓다의 태도, 즉 반야바라밀다(지혜)가 여기에 해당한다. 초월의 지혜를 의미한다. 육체적인 이 모든 것을 지나가 버렸을 때 그리하여 注視者로서의 그 순수한 자각성만 남아 있을 때, 그 주관성만 남아 있을 때, 오직 그때만이 이 지혜의 차원을 가능하다.

반야심경은 누가 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집필자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 집필자는 그것을 받아쓴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령은 저 높은 차원에서부터 내려왔다.

B.S. 라즈니쉬의 반야심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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