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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불교 공존가능한가

종교학(宗敎學)

by 巡禮者 2010. 8. 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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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불교 공존가능한가

 

                 발표:  하정남(영산원불교대)
                 사회:  해주스님(동국대)
                 논평:  조  은(동국대)  김은희(동국대)
                 일시 : 2000년 11월 11일(토) 09:30 - 18:30

                 장소 : 동국대학교 제1․제3 세미나실

                 주최 : 불교학 연구회

 

 

 

불교와 페미니즘, 공존 가능한가?

 

 하 상 의(정남) 교무(영산원불교대학교 교수)


I. 가부장제 종교문화와 페미니즘

 

I-1. 페미니스트 종교연구의 태동과 성장


페미니즘과 불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에서의 종교와 여성에 관한 연구와 최근의 논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여성운동의 물결이 점차 커지면서 많은 여성들이 기존의 종교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며 가부장제 종교를 떠나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거나 전통종교 속에 남아 있더라도 오랜 전통을 이루어 온 신학체계나 교학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신학과 교학 즉 여성의 관점을 보완하여 온전한 종교사상을 형성하고, 가부장제의 뒤안에서 빛을 보지 못한 여성들의 번뜩이는 지혜를 찾아 복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페미니스트 종교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2-30년간이다. 이 시기에 여성의 자유운동으로 결집된 성과에 힘입어 불교 속의 여성운동도 급격한 변화를 이루게 된다. 1975년 AAR(American Academy of Religion)에서 여성과 종교분과의 모임에서 여러 종교전통에 속해 있는 여성종교학자들이 함께 이루어 낸 성과물은 향후 종교사상과 조직에서의 여성문제를 연구하고 새로운 종교문화를 열어 갈 수 있는 범종교적인 여성연대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 첫번째 성과물이 Rita M. Gross가 1975년 AAR의 여성과 종교분과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아 편집한 Beyond Androcentrism: New Essays on Women and Religion이다. 그로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각 논문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역과 함께 종교의 영역에서도 파라다임의 전환을 반영한다고 한 후, 이 책은 페미니스트 종교연구의 첫 결실이며 파라다임 전환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여성과 종교에 관한 주요 연구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여성과 종교연구에 대한 지난 역사를 간단히 돌아 보다. 1960년대에는 가부장적 신의 이미지와 정신적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교회체계의 역사를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비판하였다. 1970년대 후반기와 1980년대에는 현대여성들이 자존감을 얻고 자기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여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신성을 다양한 문화 속에서 찾았다. 이러한 작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학자이면서 전통종교의 신학자이거나 교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종교가 남성/여성으로 정형화하는 틀을 만들었고, 그것이 아직도 우리 사회와 정치와 경제 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1990년대에는 여성종교학자들은 전통종교의 파라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즉 전통종교의 구원의 틀을 다시 해석하고 다시 짜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기존의 남자들이 그리고 남자 우월적인 종교들이 여성자신들을 규정해 온 틀을 거부하고 여성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여성을 규정하고 재개념화하는 일을 하면서 전혀 새로운 구원의 틀을 엮고 있다. 그들이 엮고 있는 구원의 틀은 남성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정립하고,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함께 주체적으로 온전한 인간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의 종교이다.

 

I-2. 가부장제 종교문화와 이분법적 이원론


인류역사를 통하여 소위 고등종교 혹은 세계종교라고 불리어지는 종교들을 보면 남자 중심의 종교교단과 남성적 가치의 종교사상이 주류를 이룬다. 남자중심의 종교교단에서는 중요한 종교적 의례나 교단조직에서 여성은 배제되면서 주변화되어지고 사소화되어진다. 예를 들면 남성 종교 지도자는 설교나 의례의 주관자이며, 여성은 청취자며 들러리일 뿐이다. 성직에서도 종교적 대가는 거의가 남성이며, 아예 여성은 고려대상도 되지 않는다.

 

설사 소수의 탁월한 여성이 있다 하더라도 종교전통의 중요한 사상가로 드러내려는 노력도 없었고, 따라서 여성은 역사 속에 파묻혀 존재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7-80% 이상이 여성들이다. 여성종교인들은 주로 일반평신도로 종교의례에 참여하면서 종교조직과 남성성직자들의 후원을 위한 경제적 지원의 주요한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여성들은 종교교단과 남성성직자의 주요한 후원자이면서도 항상 남성성직자들에게는 또한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되었다. 종교 전통에서 남성들은 신에게 다가가도록 자신의 영혼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잘 지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남성수행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타락하지 않도록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열악한 마음이 쉽게 유혹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여성이 자신의 수도에 방해되는 존재로 취급하였다. 그러한 남성수행자들은 여성들을 악의 존재로 취급하였고, 여성의 몸이 자신들의 타락을 부추기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여성혐오론을 그들의 종교사상속에 배태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여성혐오론 속에서 남성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속, 영/육, 이성/감성, 남/녀, 선/악의 이분법을 엿볼 수 있다. 남성들이 추구하는 성스러움의 세계는 세속과는 구별되어 있고, 정신의 순수함은 육신과 공존할 수 없으며, 남성과 여성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며 여성은 잠정적인 악으로 멀리 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감정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고 성스러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냉철한 이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전자인 성스러움과 정신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과 남성은 선이거나 선에 가깝고, 후자인 세속적인 것과 육신과 감성과 여성은 악이거나 잠정적인 악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양자는 결코 함께 하거나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왔다. 더 나아가 전자는 주체가 되고 후자는 객체로서 전자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종교사상의 이분법적 이원론은 우리 사회문화 속에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실제로 과거시대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지대하였고, 사회문화의 틀을 종교가 제공하였던 것이다. 주객의 도식의 근원을 제공한 이분법적 이원론은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강자들이 자기 중심주의를 합리화하면서 배타적 패권주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배타적 종교문화와 국가성장주의는 항상 맥을 같이 하면서 각종 침략주의를 합리화하여 왔고 아직도 국제질서와 종교문화 속에서 종교의 본질과는 다른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또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육체와 감성을 부정하는 사상은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던 근대성은 자연을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로 보면서 소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심하게 파괴해 오면서 생태계 문제를 야기하였고, 이것은 지상의 모든 존재를 위협하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여성문제 등 성차별문제의 근원지 역시 종교사상과 그 문화에 있다.

 

인도가 힌두교의 이념에 따라 사회신분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시대에 불타는 보통 평민이나 노예계급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출가수행의 길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였고, 여성출가를 허용하는 등 확실한 평등사상을 실천한 분이었다. 그러나 시대를 지나면서 다른 모든 종교가 그랬듯이 불교도 지배적이던 가부장제 문화속에 침식당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은 감이 없지 않다. 그리하여 불타의 근본사상은 가부장적 남성학자나 수행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왜곡되면서 불타를 성차별주의자로 혹은 현실문제의 도피자 혹은 방관자로 오인하게 하는 불교적 가부장제를 형성시켜 왔다.

 

II. 불교 페미니즘 실현을 위한 과제


II-1. 불교여성의 위상: 부처님은 남녀차별주의자였나?


팔경계, 여인오장설, 부처님 32상설 등은 여인의 성불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경전의 내용들이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들은 여인불성불설 혹은 변성남자성불설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불교의 여성혐오론의 근원인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때문에 앞의 장에서 스리랑카의 경우를 보았듯이 여성의 출가허용을 용납하지 않은 국가도 있고,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티벳의 경우 비구니 승단은 가난하여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도 부족하여 그야말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는 곳도 있다. 한국의 경우는 비구니 승단이 있지만 거의 남자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경전이 말하듯이 성차별주의자였을까? 페미니스트 불교연구가 보다 광범위하게 연구되면서 팔경계 자체도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팔경계의 다수 내용은 비구니계율에 포함된 것이 많다. 율장의 내용을 보면 부처님이 처음 승단을 창립하면서 한꺼번에 계율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는 계율이 한가지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 삶을 꾸리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그때마다 부처님에게 사실이 보고되었고 그에 따라 법이 만들어지는 형식으로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팔경계를 여성출가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주었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있다. 또한 팔경계의 몇가지 면을 보면 여성출가 이전에 비구승단이 존재하였으므로 비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의를 주었을 가능성은 있다. 즉 부처님은 당시 인도사회가 유지하고 있는 사회신분제를 타파하고 평등을 주장하면서 여러 계층의 비구들이 존재하였다. 이에 비해 여성출가의 허가를 부처님에게 간청한 최초의 여인은 부처님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이모이며 많은 신분이 높은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처님의 배려는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여성도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여성출가를 허용하였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방면의 노력을 하였다. 당시 인도상황이 사회신분제와 여성을 비하하는 사상들이 지배하던 때에 여성성불의 가능성이 남자와 다르지 않고 여인도 출가를 하도록 비구니 승단을 창립한 본의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본의를 헤아릴 때 계율정신도 다시 생각되어야 한다.

 

페미니스트 불교연구가들은 8경계 등 승가라는 출가공동체에서 관계된 내용의 진의와 성립에 관하여 연구하는 동시에 또한 그들은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나타내는 경전들을 찾아 내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비구니들이 깨달음과 수행에 대하여 기록된 문헌이 있다. Therigatha는 Pali Text인 초기 불교문헌에서 73편의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서 Theri는 어른 여성 혹은 지혜를 추구하며 성숙한 여성을 의미하고 gatha는 시 혹은 게송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長老尼偈라고 부른다.

 

이에 비하여 Theragatha는 비구들의 게송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Susan Murcott의 The First Buddhist Women: Translation and comentary on the Therigatha (Berleley: Parallax Press, 1991)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비구니들의 불법에 발심한 심경과 수행상의 감상과 깨달음을 노래한 내용들이다. 이들의 깨달음은 반드시 출가승단에서만이 아니라 출가이전 세속생활 등 여러경로를 통하여 나타난다. 이들의 노래에서 깨달음은 여인의 몸에도 그리고 어디에 거처하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II-1. 재가여성들의 위상: 출가만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부처님의 본의와는 관계없이 여성에 대한 비하와 차별은 불교내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여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은 비구의 육체적 욕망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다. 그 두려움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형성하며, 그것은 곧 가족생활을 비롯한 세속생활에 대한 도피로 이어지면서 출가위주의 승단을 형성하고 재가를 주변화시킨다. 어떤 면에서는 재가 여성의 경우 출가여성보다 불교공동체에서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그러나 재가 여성의 긍정적인 면은 승단을 유지하는 시주자로서이다. 불교공동체 내에서 재가여성들의 성불이나 불법공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출가의 이념에서 보듯이 세속생활은 마음의 자유인 해탈을 얻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처자식은 속세의 인연을 끊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모름지기 처자식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처승이 없는 것은 아니나 남자수행자가 가족을 갖는 것은 가능한데 비하여 여성은 가부장제 문화권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하다. 즉 대처를 허용하는 불교종단에서 조차도 여성은 결혼과 출가생활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렇게 출가와 재가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불교의 가부장적 경향은 현실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에 억불숭유책으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이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현실에 무관심한 이유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사실 불교속에 들어있는 출가위주 남성위주의 깨달음에 대한 견해와 그 진리해석에서 불교의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의 경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부분적으로 불교가 고아나 무의탁 노인을 돕는 등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적 기여를 평가절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불교의 교리를 사회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해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출가수행자들의 기호에 맞는 방식으로 교의를 해석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불교환경교육원 등에서 벌이는 미래 환경에 대한 관심이나 『불교평론』을 통하여 불교내에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바람직한 운동은 기대할만하다. 그러나 불교내의 관심에 국한하기 보다 불교를 보다 사회변혁을 위한 교리로 해석하고 정치화하는 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불교를 보다 사회변혁을 위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학자를 든다면 Rita M. Gross와 Joanna Marcy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중요 저서는 이후에 소개될 것이다. 또한 불교교단 밖에서 불교의 핵심교의에 근거하면서 탈가부장적 불교운동을 전개하는 경우도 있다. 페미니스트 불자들이 꿈꾸는 불교나 우리가 꿈꾸어야 할 새로운 불교는 어떤 것일까?

 

III. 여성불자들의 연합과 불교 페미니스트 이슈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20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각 국으로 전파되고, 그 나라 문화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형태의 불교문화를 형성하여 왔다. 19세기 이전까지는 불교의 문화권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20세기부터 불교가 서구문화와 만나기 시작하였고, 보다 본격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에 미국을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보다 적극적인 불교경전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히 불교는 구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페미니즘의 흐름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미니즘의 흐름 또한 세계적으로 새로운 문화의 축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으로 확산되면서 이미 구미의 것을 넘어 아시아 및 여러 문화권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만큼 불교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단순한 서구적인 상황의 이야기는 아니며 현시대의 보편적인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에서는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불교의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불교 수행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III-1. 페미니스트 불교연구의 선구자들

 

페미니스트 불교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번째 선구적인 연구는 I. B. Horner의 Women Under Primitive Buddhism: Laywomen and Almswomen이다. Horner는 영국인 학자이면서 팔리어 경전을 번역하였다. 호너는 1930년에 이미 그의 저서에서 소승경전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넘어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그리고 부처님의 본의에서 넓게 바라보는 안목을 제시하였는데, 부처님 당시의 여성교단과 여성들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며 또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책은 Diana Paul의 저서 Women in Religion: Images of the Feminie in the Mahayana Tradition이다. 이 책은 대승불교의 주요 텍스트들을 분석한 것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서구에서 여성과 불교의 관심을 태동시킨 중요한 저술이다. 폴은 이 저서에서 대승불교문헌에서 여성과 여성의 본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많은 대승서적들에는 여성성이 부정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여성들이 종교적인 목적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에 상당한 문헌들은 여성이 완전한 인간이며, 종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불교의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이아나 폴은 대승불교문헌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여성성에서 부터 긍정적인 모습으로 배열하여 서술하였다. 즉 이 저술에는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여성성 즉 여성을 악의 기질로 간주하는데서 부터 점차 변화되어 관음보살과 같은 보살의 이미지로 나아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연구는 Rita M. Gross의 Buddhism After Patriarchy: A Feminist History, Analysis, and Reconstruction of Buddhism이다. 그는 티벳불교를 처음 배운 이후, 철저한 수행자이며 종교학자이며 불교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와 페미니즘과 불교를 다양한 문화속에서 비교연구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의 책은 자신이 밝히듯이 불교의 페미니스트적인 변화를 위하여 철저히 불교역사 공부와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불교세계관의 중심개념에 대한 분석한다. 그러한 바탕위에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불교의 재건을 자세하게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저자는 Joanna Macy이다. 그의 주요 저서는 Mutual Causality in Buddhism and General System Theory: The Dharma of Natural Systems와 World As Lover, World As Self외 다수이다. 조안나 머시는 불교의 이념으로 생태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이며 불교신천가이다.

 

그는 화엄사상과 Prajnaparamita (지혜의 완성자)를 중심개념으로 불교의 세계관을 생태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한다. 특히 불교에서 여성성의 상징인 보살이념인 Prajnaparamita와 모든 존재의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을 강조함으로서 여성주의 윤리와 생태윤리를 연결시켜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을 갖는다. 그는 불교 연기설을 불교세계관의 기초로 보며 그의 연기설은 화엄사상의 모든 존재들의 상호연결성이다. 그는 천수천안의 보살은 중생을 위한 사랑에서 비롯되며, 그의 중생구원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구원으로 보고 있다. 즉 중생구원과 성불은 둘이 아니다.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모든 존재는 상호연결 되어있고 한몸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형성된 페미니스트 불교 연구와 그 영향은 구미를 넘어 향후 불교의 현대적인 해석과 새로운 변화에 페미니즘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 여성불자들의 네트워킹의 형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III-2. 불교여성들의 여성의식 성장과 페미니스트 불자들의 연대

 

1) 나로파에서 시작된 아메리카 여성불자들의 각성 : 복종과 보조자에서 주체적 수행과 가르치는 스승으로 불교가 페미니스트들과 일반여성들사이에 문제가 된 것은 1981년과 1982년과 1983년에 걸쳐 개최된 여성과 불교 회합에서였다. 1982년과 1983년 회합에서 남자 선 수련 교사들과 여자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스캔들이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많은 여성들은 분노했고, 선수련센타들을 떠나는 사태들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페미니스트 불교인들에게 불교의 가부장제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에 나로파 불교대 (Naropa Institute)에서 불교와 여성에 관한 회합이 처음 있었다. 이 회합은 불교학과의 쥬디 짐머(Judith Simmer)가 준비했고, 카나다와 영국을 비롯하여 미국의 12개주에서 50여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이 때 페미니즘과 불교의 인터섹션에 리타 M. 그로스와 수잔 무어코트(Susan Murcott) 그리고 샌디 보우쳐도 참석하였다.

 

1982년에 나로파에서 지난해의 두배나 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두 번째 여성과 종교 회합이 열렸고, 그 회합의 마지막 즈음에 한 참여자에 의해서 당시 출가수행자이면서 불교스승인 초감 투룽파와 그의 여자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스캔들이 제기되었다. 이를 계기로 여러 곳의 수련센타에 속한 많은 여성들이 같은 체험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에는 로드 아일랜드주에 있는 선 센터를 비롯하여 미국의 여러 곳에서 여성과 불교 회합이 개최되었다.

 

여기서 다시 남자 선 수련 교사들과 제자들 사이의 성스캔들과 알코올 남용과 그들의 힘을 남용하는 사례가 폭로되었다. 앞의 티벳 승려 외에도 다른 한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권의 선 센터에서도 똑 같은 사실들이 밝혀져 미국여성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불교의 권위는 심하게 손상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선 센타를 떠나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남성중심의 불교 가르침과 불교조직과 독신수행에 대한 문제제기 등 광범위한 문제가 토론되기 시작하였다.

1983년 회합중에서 Suzie Bowman이 6월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PZC(Province Zen Center)에서 “불교에서의 여성성(The Feminism in Buddhism)"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것 만이 자료로 남아 있다. 이 세미나는 1982년 나로파에서 세미나 ”Women in Buddhism“ 이후 이룬 첫번째 공식적인 모임이었다. 캠브리지 불교회에 속한 Maurine Freedgood이 주제발표를 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보자. “우리시대에서 우리자신의 문화속에서 우리는 예술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백그라운드인 한국과 일본과 소승불교국가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 속에서 철저히 훈련받았던 일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국적인 체험을 만들기 위하여 자유로울 것이다. 여성으로든 남성으로든.” “우리는 서로를 모방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있지 않다. 내가 가끔씩 보는 것 중에서 두려운 일의 하나는 사람들이 차이를 파괴하는 것이다.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동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하나의 획일적인 것으로 감소시키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 ‘불교에서의 여성성’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하여 여기 왔다. 그것은 어떠한 방법으로서도 남성성을 제외시켜서는 안될 것이다.”(Gathering, p. 7)

 

Babara Rhodes는 “우리자신과 우리 가족을 양육함(Nuturing Ourselves and Our Families)”에 관하여 발표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양육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우리자신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좌선을 통하여 일어나는 일이며, 그러나 또한 상대가 선의 대가이거나 않거나 간에 너의 스승에 대하여 열려있는 것을 의미한다. ” “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더 이상 자기를 느끼지 않고 단지 네가 체험하고 있는 것과 하나일 때의 마음의 상태를 찾아라.”(Ibid) Jacqueline Schwartz는 여성이 힘을 갖추는 도움이 되는 ”힘과 본래성(Power and Integrity"에 대하여 말하였다. “법은 우리자신을 위하는 것이여야 하며, 동력이 되는 것은 본래성이다. 즉 탐진치로부터의 자유이다. 깨달음의 순간에 우리는 이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Ibid, 8)

 

오후 워크샵에는 다섯 명의 발표자가 있었다. 마우린 프리드굿은 “어떻게 우리의 매일매일 수행생활에서 자비와 지혜로 활동하는가”에 대하여 토론을 이끌었다. Trudy Goodman은 “일과 가족생활(Work and Family Life)”에 대한 워크샵을 이끌었다. Susan Murcott는 “성성sexuality과 불교Buddhism”에 관한 워크샵을 이끌었다.  불교 공동체 내에서 sexuality와의 관계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토론하도록 하였다. Barbara Rhodes는 Providence Zen Center 공동체 삶을 토대로 “공동체 삶(Community Life)"에 대한 워크샵을 이끌었다. 쟈클린 슈바르츠는 “힘갖추기empowerment와 개인적인 수용personal Acceptance”에 관한 워크샵을 이끌었다.

 

그룹 멤버들에게 그들에게 힘을 주도록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속시키는데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물었다.(Ibid, 8) 마지막 토론에서 수잔 무어콧은 “불교에서의 여성성 The Feminism in Buddhism”에 관하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는 남성지향의 신화와 선의 형태 속에 있는 남성지향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신화를 따라 삶을 확장하여 간다...” “많은 부분은 전승된 전통을 답습하면서 스스로 그 속에 잠겨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에서 첫 불교 세대로서의 책임과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자신의 형태로 우리에게 진짜 맞는 수행을 창조해 내고 우리자신의 전통의 맥락에서 유산을 재해석하고 번역하도록 하는 힘과 책임이다.”(Ibid, 9)

 

 1884년에는 세미나 일정을 이틀로 연장하여 수행시간도 넣고 워크샵, 소그룹 모임의 패널 토의 형태로 진행하였고, 120명이 넘는 수가 참석하였다. 주로 전 해에 참여한 사람이 다시 오는 사례가 많아져 발전적이었다. 주제는 “아메리카에서 여성과 불교(Women and Buddhism in America)”였다. 발표자와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다. Maurine Freedgood의 “자비와 지혜: 부드러움과 강함(Copassion and Wisdom: Gentle and Strong)” / Gesshin Prabhasa Dharma의 “아메리카의 여성과 불교(Women and Buddhism in America)” / Jacqueline Schwartz Mandel의 “마음의 정책(Politics of The Heart)” / Toni Parker의 “형상을 놓고 화두로(Inquiring Without Images)” / Barbara Rhodes의 “자신을 믿음(Beliving in YourselfP” / Jan Chozen Soule의 “일상생활속에서 깨달음을 구함(Taking Realization Into Everyday Life)”(Ibid, 13-38)


1984년 11월 15일 오후의 패널 토의에서 아메리카 선에 대하여 한마디씩 하였다. “불교는 우리가 수입하거나 수출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든 있다.” “선은 우리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불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인용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는 여성을 자신의 시대에 해방시켰으므로 성차별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만약 불타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옷에 관하여 다른 규칙을 말하였을 것이다. ..... 그것은 인도에서 적합하였고 부처는 그 곳의 기후에 필요한 법을 말하였다. 만약 그가 시베리아에 계셨으면 달랐을 것이다.” 이 외에도 출가승려의 결혼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Ibid, 39-43)

 

1985년에는 보다 수행적으로 수련시간(retreat)을 3일 넣어 일주일간의 모임체를 구성하였다. 1985년의 세미나 주제는 “아메리카 불교의 조화로움(The Balancing of American Buddhism)”이었다. 발표자와 주제는 Ane Pema Chodron의 “마음의 장애가 바로 스승이다(Obstacles As Our Teachers)” / Joanna Macy의 “세상으로 돌아 가자(Going Back Into The World)” / Gesshin Prabhasa Dharmaa의 “흰구름과 조화하는 법(How to Balance A White Cloud)” 이다. 죠안나 머시는 20세기를 마감하는 새로운 법륜은 여성성의 이미지이며 보살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우리의 수행은 이 세상의 모든 중생과 관계(Interrelatedness)를 강화하는데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불교의 사회변혁을 위한 잠재성을 밖으로 끌어 낼 것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불교평화우(Buddhist Peace Fellowship)” 혹은 “참여하는 불교( Engaged Buddhism)”를 제안하기도 하였다.(Ibid, 47-61)


1985년 11월 14일 패널 토의에서는 스승에 의해 농간당한 일이 다시 제기되었다. 조안나 머시는 힘이 무엇인지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제자를 농간한 선생은 자신을 제자와 분리시켜 놓고 자신을 힘의 위치에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죠안나 머시는 힘의 핵심 가르침을 연기론에서 찾아야 하며, 그 때 힘은 관계적인 것이며 상호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1985년의 모임 이후 다시 모임을 계획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1983년과 84년과 85년에 이루어진 성과물 즉 발표문과 전체토론 내용은 Ane Pema Chodron와 Joanna Macy와 Toni Packer 등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A gathering of Spirit: Women Teaching in American Buddhism (Primary Point Presss, 1987)라는 이름으로 묶어 출판되었다.

 


2) 아메리카 여성불자연대를 넘어 세계여성불자들의 연대로

 

1987년에 세계적으로 여성불자들이 조직화하여 불교와 페미니스트 이념의 연결을 위한 포럼을 준비하였다. 당해에 Ayya Khema, Chatsumarn Kabilsight와 Karma Lekshe Tsomo를 비롯한 몇몇 여성불자들이 주체가 되어 인도 붓다가야에서 불교비구니 국제회의를 열었다. 달라이 라마는 축하 연설을 통하여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정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모임에는 25개국으로부터 150여명의 비구니들이 모였다.

 

물론 소수의 비구들과 재가여성들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여성의 잠재성과 불교국에서 여성 억압적인 실제 현실들에 대하여 토론을 하였다. 한 주 내내 여성불자들을 위한 교육, 사회복지에서 여성불자의 역할, 현대에서 계율실천의 문제, 비구니 수계의 기회 제공, 승가를 위한 삶(수도공동체), 서구에서 비구니로 살기 등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참여자들은 불교 사회가 전통적으로 어떻게 여성을 보았고, 여성불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았고, 그리고 전통적으로 불교사회에서 승가에서나 세속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하였고, 그리고 그 역할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모임의 결론에 Sakyadhita라는 국제여성불자연합이 창립되었다. Sakyadhita는 부처의 딸 (Daughter of the Buddha)이라는 의미이다. 샤카디타의 목적은 네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세계의 여성불자들사이의 코뮤니케이션을 위한 넷트웤을 만드는 것이며, 둘째 여성을 불교지도자로서 교육할 것, 셋째 불교에서 여성 연구(research on women in Buddhism)를 도와줄 것, 넷째 비구니 승단이 없는 나라는 비구니 승단(혹은 완전한 비구니 수계를 받는 일)을 설립하도록 도와준다.(Ibid, 2)


1991년 11월에 방콕에서 제2차 국제여성불교회합을 개최하도록 Chatsumarn Kabisingh이 조직하였다. 비구니 승단이 남아시아에 없었고, 비구니 승단의 설립에 심각한 저항이 있었으므로, 국제여성불자대회를 타일랜드에서 하는 것은 미래 변화에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존경받는 타이완, 한국, 베트남, 그리고 서구에서 온 비구니들의 존재는 타일랜드 사람들에게 “비구니는 있을 수 없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기에 족했다. 불교에서의 여성의 위상 특히 타일랜드에서 비구니의 모호한 위상을 밖으로 끌어냄으로써, 국제 회의는 여성을 위한 종교교육을 개선하고 여성을 위한 선센타를 설립하도록 자극이 되었다.(Ibid)

 

1993년에 제 3차 샤카디타 회의가 “현대사회에서 여성불자(Buddhist Women in Modern Society)"라는 주제를 걸고 콜롬보에서 개최되었다. 스리랑카의 불교부(Buddhist Ministery of  Buddhist Afair)에서 행사 주최측에 비구니 수계에 대한 논의를 못하도록 경고하였지만, 그 논의는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스리랑카 여성들은 비구니승단을 다시 설립하기로 결정하었다. 또한 그들의 불교 전통의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써 그들의 개인적인 유산도 확인하였다. Ayya Khema는 그 대회에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스리랑카에 여성불자들이 수행하도록 힘이 되어주었고 Parapaduwa 비구니 섬을 설립하였다. 그의 선물은 영국에서 교육받은 스리랑카 엘리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소박한 출가생활을 원하는 자매들이 그들의 출가승단을 만드는데 협력자들이 되기로 하였다. 이제 스리랑카에서는 비구니승단의 재설립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Ibid)

 

1995년에 열린 4차 대회는 “여성과 자비의 힘: 21세기에 살아남기(Women and Power of Compassion: Survival in the 21th Century)"라는 주제로 북인도의 라닥에서 개최되었다. 라닥, 티벳, 부탄, 네팔, 그리고 히말라야 지역에서 여성들이 100여명이 파견되었다. 그들의 고립되고 이질적인 생활방식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수행의 필요성을 느꼈고  종교적 욕구도 고무되었다. 불교의 과거와 미래에 여성의 역할에 관한 관심이 있는 여성들의 넷트워킹은 불교여성들의 고립을 단절시킨다. 서로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불교여성들은 교육, 건강, 대화, 생태문제, 문화적 전통 등의 새로운 영역에서 지도력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정보교환을 통하여 세계의 여성들은 서로 힘을 받고, 매회 모임을 통하여 재가나 출가나, 젊거나 늙거나, 여자나 남자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함께 독경하고 선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주저없이 사회정의를 위하여 손을 잡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아시아 여성과 서구여성이 서로를 배우면서 다양한 불교사상과 수행을 통합하도록 고무한다.(Ibid, 2-3)


1997년에 제 5차 대회는 캄보디아에서 열렸다. 주제는 다양한 관점과 수행과 생활방식과 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개별적 발표내용은 캄보디아의 불교여성의 과거, 불교와 인권, 새로운 시대에 재가여성불자들, 여성과 독신수행, 불교여성사의 애매모호성, 불교여성과 메디아, 비폭력문화를 만들기 위한 여성의 역할, 여성불자로서의 성장, 현대 중국의 비구니 교단들, 참여하는 불교, 스리랑카의 비구니 승단의 재생, 성행위와 음행, 세계 평화를 위한 내면적 변화이다.(Ibid, 3) 2000년 2월에 6차 대회가 네팔의 룸비니에서 열렸다. 주제는 “개인, 가족, 사회, 세계에서 평화를 만드는 여성”이었다.


요컨대 샤카디타의 목적은 여러 전통의 불교 여성들이 모여 서로의 힘을 모아 여성불자의 위상을 높이고, 개인적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 변화를 위하여 불교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고 새롭게 부흥시키자는 것이다. 세계여성불자들의 연합인 샤카디타 대회를 통하여 얻은 성과를 가지고 Karma Lekshe Tsomo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제기된 현실과 위상에 관하여 그리고 여성불자를 위한 새로운 불교전통의 형성에 관한 주제들을 가지고 Buddhist Women Across Culture(1999)에 편집 출판하였다.


이상에 소개한 내용이외에도 Sandy Boucher는 그의 저서 Turning The Wheel: American Womens Creating The New Buddhism (1988, 1993)에서 불교여성불자들의 여성의식의 성장과 현재를 잘 보여준다. 샌디 보우쳐는 처음 선을 배우고 불교강의를 들으면서 불교수행의 유익함을 체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교에서도 다른 서구종교들처럼 남성우월주의를 깊이 느꼈다. 선센터 내에서도 성역할은 분명하였다.

 

즉 남자는 강의나 주로 규범적인 일을 맡고 여성은 공양 준비를 위한 부엌일이나 보조적인 일을 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불교수행자들의 이름속에 여성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샌디 보우쳐도 1981년 나로파에 리타 M. 그로스와 수잔 무어콧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후 미국에서의 여성불교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는 다른 여성수행자들과 연구자들의 체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책은 다양한 전통에서 수행한 여성수행자들과 연구자들을 직접 만남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여성불자들의 여성의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페미니스트 불자들이 불교 공동체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과 세계여성불자들의 모임에서 제기된 문제를 보면 구미 특히 북아메리카 중심의 여성불자들과 아시아 여성불자들의 관심과 문제제기에 차이가 있다. 구미의 여성불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불교경전과 불교공동체 내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을 함과 동시에 아시아의 가부장제 불교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현저하다. 그들의 관심사는 불교를 현실생활에 연결시켜 보다 사회변혁을 위한 문제로 나아가며 재가수행에 대한 관심이 깊다.

 

따라서 그들은 성문화(sexualities)의 문제와 환경문제, 종족차별문제, 성생활,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술과 출판활동 혹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아간다. 이에 비해 아시아 여성불자들의 관심은 여성수행자의 빈곤과 교육문제, 그리고 충분한 수행과 출가수행자로써의 위상문제 등의 노력이 많다.


아시아의 경우 구미보다 불교의 역사가 오래이고 인식도가 넓음에 비하여 여성불자들의 관심에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일까? 출가의 인연과 동기부터 그들은 차이가 있다. 아시아의 여성들은 다음 생에 남성이 되기 위하여 혹은 보다 낳은 삶을 위하여 출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시아의 경우 가부장제가 극심한 나라가 많으므로 출가하는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그리 높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또한 사회나 불교공동체 내에서 여성불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빈약하다. 아마 가부장제 사회와 가부장적 불교공동체는 전생의 업에 의해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보고 당연히 치루어야 할 운명으로 볼 것이다.

 

이에 비해 구미 여성불자들은 대개 교육수준이 높고 엘리트 여성들이 주류다. 기독교가 주류인 서구에서 불교를 알고 믿는 것은 교육수준이 낮은 여성들 보다 서구종교의 모순에 식상한 엘리트 여성들이 새로운 사상으로 불교를 접하게 된다. 그들은 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불교과목을 수강하면서 불교의 교의에 심취되고 수행의 단계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현실이고 보니 자연히 서구여성들의 불교연구가 깊고 더욱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서구사회의 문화와 여성들도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도 훨씬 깊고 적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차이는 부정적이기 보다 오히려 앞의 여성불자연대 활동에서 보았듯이 서로를 고무시키고 문제의 심각성을 공동으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자매애로 보다 폭넓은 변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종교틀 내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한국의 예를 든다면 과연 한국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조계종의 경우 여자종정이나 여자총무원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통종교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여성들이 전통종교를 떠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불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불교 공동체 내에서도 기존의 불교공동체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불교문화를 만들려는 여성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쩌면 수천년 수백년 역사를 가진 전통을 바꾸기 보다 새로운 시작이 용이할 지도 모른다.


원불교의 경우는 여성들의 자각과 노력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탈가부장적 종교 혹은 탈가부장적 불교를 이루려는 노력을 하여왔다. 원불교에서는 여성교역자의 위상이 한국의 다른 종교에 비해 높고 교단의 발전에 미친 영향도 큰 만큼 케이스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완벽한 탈가부장적 교단을 형성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그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 여성들이 더 나아가 남녀 모든 불자들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과제들이 원불교 사상과 발전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원불교가 불교와 사상적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만큼 탈가부장제를 지향하는 원불교의 경우에서 가능성과 문제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VI. 탈가부장제를 모색하는 새로운 불교의 모델: 원불교의 경우에서

 

VI-1. 『朝鮮佛敎革新論』을 통해 본 소태산의 脫家父長的 宗敎構想

 

원불교는 1916년에소태산 박중빈(1891-1943)의 대각(大覺)으로 시작된 종교이다. 소태산은 당시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모순과 그 극복이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철저히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새로운 종교운동 내지 불교운동은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모순에 적극적인 대응의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소태산은 보다 근원적인 인간변화와 사회변화를 위하여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소태산의 새로운 종교사상은 불법을 주체로 하는 것이었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룬 후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중성(聖中聖)이라 하였고, 금강경을 경중경(經中經)이라 하면서도 출가위주의 교단조직과 중생의 현실적인 삶을 떠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관행으로 된 불교수행 방식에 대하여는 비판적이다.

 

소태산의 새로운 종교사상의 구도는 그의 저서 『조선불교 혁신론』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조선불교혁신론』의 구성은 “總論”과 ①“過去朝鮮社會의 佛法에 對한 見解,” ②“朝鮮僧侶의 實生活,” ③“世尊의 智慧와 能力,” ④“外邦의 佛敎를 朝鮮의 佛敎로,” ⑤“小數人의 佛敎를 大衆의 佛敎로,” ⑥“分裂된 敎化科目을 統一하기로,” ⑦“等像佛崇拜를 佛性一圓相崇拜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總論”에서 불교는 고대종교로써 세계적 종교로 되었지만 조선사회에서는 폐단이 있었으므로 그 폐단을 알고 혁신하므로써 다시 새로운 불법을 발전시키려 한다는 의지를 밝힌다.

 

즉 “혁신의 내역을 말하자면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과거의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로 산중 승려 몇 사람의 불교를 일반 대중의 불교로 혁신하되 부처님의 설하신 무상대도는 변치 아니할 것이나 世間 出世間을 따라서 世間生活에 필요한 人生의 要道를 더 밝혀야 할 것이며 모든 교리를 운전하는 제도와 방편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서 쇄신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불교 혁신론』의 서문에 해당하는 「총론」을 이어 다음 내용에는 부처님의 위대함과 출가수행의 참된 의미를 전제하면서 시대와 대중의 요청에 부응하는 새로운 불법(佛法)을 제시하고 있다. 즉 불법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표방하는 원불교의 이념이 담겨 있다. 소태산은 승려위주의 출가지향 불교를 비판하면서 세속생활을 하는 대중을 위하여 현실생활을 위한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중요 교리로서 천명하였다.

 

특히 『조선불교 혁신론』의 마지막 장인 “等像佛崇拜를 佛性一圓相崇拜로”에서는 가장 큰 혁신불법의 사상을 보인다. “불상숭배는 부처님의 인격에 국한하여 후대 제자들이 부처님을 추모 존숭하는 의미는 있으나” 일원상숭배는 우주만유를 관통하는 부처님의 심체를 보아 우주만유 전체를 부처님으로 모시고 신앙하는 것으로 “죄복과 고락의 근본을 우주 만유 전체 가운데서 구하게 되며, 또는 이를 직접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일원상과 같이 원만한 인격”을 닦게 함이라 밝힌다.

 

요컨대 소태산의 『朝鮮佛敎革新論』에서 나타나는 여성학적 의미에서 주목되는 점을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는 산중불교 즉 출가수행자만을 위한 불법과 출가위주의 불교교단에 대한 비판한 점이다. 소태산이 구제의 범위를 천지만물 허공법계까지로 보는 것은 남녀의 인간 모두를 위한 불법과 일상생활을 성스러움의 공간으로 포함시키는 것과 세간(secular life)과 출세간(clerical life)을 위한 수행법을 제시하는 것은 성속의 이분법을 타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 소태산은 남성학자 중심의 경전을 비판하고 남녀가 모두 읽을 수 있는 경전의 편찬을 구상하고 있다. 과거 통치자들이나 종교들이 여성이나 흑인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알 권리를 박탈한 데 비하여 소태산은 모든 사람의 알 권리를 성취하도록 인정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경전의 편찬을 구상한 점이다.

 

세번째 불교교파들이 서로 달리 주장한 경전과 수행의 방법을 통일적으로 보는 점에서 교파간이나 종교간의 에큐메니즘을 지향한다. 종교의 배타성은 자기 종족우월주의나 남성중심주의와 관련이 있다. 배타성은 자기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패권주의의 밑바닥에는 중심주의가 깔려있다. 남성문화의 특징인 패권주의는 바로 중심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보살핌의 윤리가 힘을 기본으로 하는 남성주의 윤리의 대안적 윤리로써 주장될 때 배타적인 종교의 모습은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네번째 일원상을 종교상징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일 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일원상과 같은 원만성과 조화성을 구유하고 있다고 보아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을 인간의 心象과 동일시 한 점이다. 이 때 여성성이나 남성성과 같은 구분은 없어지고 오히려 양면성을 다 가진 인간성이 종교수행의 모델이 되어 사회문화에 의해 인간에게 내면화 되어있는 젠더(gender)즉 양성차별의 관념을 근절시키어 兩性平等의 이념적 토대를 이루게 한다.

 

『朝鮮佛敎革新論』에 나타난 소태산의 새로운 불법을 실제사회에서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처처불상?사사불공, 무시선?무처선, 동정일여?영육쌍전, 불법시생활?생활시불법이라는 교리표어를 제정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새시대의 종교적 상징과 사상을 제시하기 위하여 일원상의 진리를 선포함과 동시에 과거의 二元論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 사회의 문화를 열기 위해 이 실천적 표어들을 내 세웠다. 이 실천적 표어들은 영과 육, 성과 속 남과 여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새로운 종교사상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가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社會的 聖化를 목적으로 한다.

 


VI-2. 소태산의 탈가부장적 종교사상의 틀

 

1) 성차별 없는 궁극적 진리

 

소태산의 탈가부장제 종교문화의 토대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은 일원상(一圓相) 즉 원(○)으로 표현되는 궁극적 진리에 관한 것이다. 소태산은 궁극적 진리인 일원은 “言語道斷의 入定處”라 하여 인간의 언어와 명상을 초월하는 자리라고 천명하면서, 동시에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남자도 여자도 궁극적 진리인 일원에 근원한 존엄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일원은 남성성과 여성성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오히려 양성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일원은 현상을 떠난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면에서 보면 오히려 모성(母性)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가깝다. 소태산의 수제자인 정산 송규는 일원을 “만유의 어머니”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2) 여성수행의 길

 

가부장적 종교들의 특징은 궁극적 진리를 초월자 혹은 절대타자로 보았다. 궁극적 진리를 초월자 혹은 절대타자로 간주할 때 모든 존재와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남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남성은 생명을 낳아 기르는 체험을 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를 깨닫고 체험하는 일을 직접 할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은 관념적 추상적 분리적인 진리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이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차이가 있다. 여성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 체험적이고 직접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가부장제 종교 내에서 남자들이 설정해 놓은 진리인식과 수련방식을 전제로 하는 종교조직과 문화에서 여성 대가들(female masters)이 나올 수 없다. 설사 탁월한 여성 선각자가 있더라도 남자들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기득권을 가진 남자들이 쉽게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원을 “언어도단의 입정처”라는 표현한 것은 초월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한계 내에서 여러가지 문화권에서 제기된 인간적 언어를 극복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일원을 “우주만유의 본원”으로 보는 것은 일원이 초월적이라기 보다 구체적인 존재속에서 진리의 모습은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진리인식은 구체적 삶의 체험 속에서 얻을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진리인식은 분리를 전제로 하는 남성적인 방식이라기 보다 체험과 구체적 삶에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여성적인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성/속 이분법의 극복

 

진리인식에서 분리를 전제로 하는 남성적인 방법과 달리 여성수행의 길은 구체적인 삶과 체험과 관련이 있다면 여성이 주체가 되는 종교문화는 성속을 이분화 할 수가 없다. 즉 세속생활은 수행과 진리인식의 장으로서 중요하다. 따라서 여성주의 종교영성은 세속적인 삶과 분리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중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에서 성속이분법을 극복하는 불교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선 그는 조선의 불교가 출가승려 본위의 교리와 제도로 조직된 점, 일반신자는 부처님의 직통제자로나 불가(佛家)의 조상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점, 사농공상의 직업을 놓고 시주와 동령에 의지하는 점, 출가자의 결혼을 금하는 점 등을 비판한다. 그리고 새로운 불교는 재가수행자나 출가수행자를 주객의 차별로 하지 않고 공부(수행)와 사업(자비실천)의 정도를 따라 대우할 것이며, 견성양성만 주재하지 말고 솔성을 함께 주재하도록 수행법을 세워야 함을 강조한다. 그의 교법은 재가를 위한 공부법이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4) 영/육이원론의 극복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중요시 여기고 성과 속을 이분화 하지 않는 종교사상은 영과 육의 이분법을 부정하게 된다.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종교사상에서 여성배제와 여성의 몸을 부정시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영/육이분법에서 출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부장제 사회문화가 구축해 온 이분법적 이원론의 뿌리는 바로 영/육의 이분법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문화에서 이루어진 몸에 대한 인식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규정은 탈가부장적 종교문화 모색에 중요한 출발이 된다.

 

소위 세속생활이라는 것이 출산과 육아와 가사일에 관한 것이라면 이것은 여성의 몸과 밀접한 관련이 되는 것이다. 성과 속을 이분화하지 않고 세속생활을 영성수행의 장으로 인식한다면 자신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육체적 욕망을 두려워하여 그 대상인 여성의 몸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여성혐오론을 정당화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법을 수행하기 위하여 처자(妻子)를 비롯하여 가사의 모든 책임을 뒤로하고 일생을 무위도식으로 지내는 수도인의 무책임과 의존생활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일원을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천명할 때 궁극적인 진리에서 보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도 없으며 다 일원의 진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소중한 것이다. 영육(靈肉)을 쌍전(雙全)하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인간에서 정신생활 못지 않게 육신생활 또한 중요하다고 할 때는 의식주를 포함하여 육체로부터 일어나는 추위와 더위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욕구도 일차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육체생활을 무조건 부정하는 과거종교사상을 소태산은 비판하였다. 그러나 육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모르고 방종하는 것 또한 옳은 일로 보지 않았고, 육신생활과 정신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른 삶으로 보았다.


소태산의 영육일여관(靈肉一如觀)과 궁극적 진리를 현실세계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종교사상은 「사은(四恩)」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일원을 신(神)이라 지칭하는 초자연적 존재나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원의 내용은 무엇이냐가 제기된다. 일원의 내용이 바로 「사은」이다. 사은은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으로 우주 만유는 「사은」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한 제자가 소태산에게 일원을 어떻게 신앙하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일원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써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항상 존엄한 부처를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사물에 응”(『원불교교전』, 「대종경」, 교의품 4)하라고 하였다. 모든 만물이 일원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은 바로 사은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소태산이 일원의 내용을 사은으로 그리고 사은은 곧 우주만유라고 할 때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면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만유는 일원으로부터 나온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정신과 육체 모두 사은으로부터 부여받은 거룩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과 육신을 통일체로 바라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우주만유 개개는 다 사은의 큰 은혜 속에 나온 존재이면서 존재와 존재는 다 서로서로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상의상자의 관계로 맺어진 유기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관과 세계관에서 자/타의 이분법을 비롯하여 모든 이분법과 중심주의가 정당성을 잃게 된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주체이면서 다른 존재에게는 객체가 되는 다원적 관계망이 형성되며, 이것이 원불교 은사상의 기초가 된다. 은사상은 개개인 개개물이 다 관계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우주만유로 나타난 개개물과 개개인을 서로서로 은혜로 맺어진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는 은사상은 곧 상생과 보살핌을 기초로 하는 여성주의 윤리를 배태하게 된다.

 

5) 상호의존의 유기적 세계관에 근거한 여성주의 윤리

 

원불교의 은사상은 유태기독교의 창조설과는 전혀 다르며, 불교의 연기론과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유태기독교의 창조설에서는 창조자와 피조물이 구분된다. 그리고 창조자의 본성과 피조물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창조자를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로 파악할 수 없는 절대타자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명령과 절대복종이다. 창조자의 명령을 어기는 것 그것이 곧 죄이다. 따라서 유대기독교의 윤리는 율법주의로 가부장제 윤리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에 비해 불교의 연기론은 기본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론(無我論)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불타는 모든 중생들이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여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불타의 깨달음의 견지에서 보면 모든 현상은 인연화합에 의하여 일어나며 인연이 다하면 소멸하는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무(無) 혹은 공(空)으로 상징한다. 그러나 불교의 공사상은 세계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임시적 존재를 고정불변의 실체인 것처럼 집착하는 중생의 마음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소태산은 기존의 불교적 연기론에 바탕한 무아설(無我說)을 수용하면서, 제법이 인연화합에 의해 생성소멸하는 것을 근거로 존재들의 관계윤리로 전개시키면서 사은(四恩)을 말한다. 원불교의 은사상의 축은 사은 즉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네가지 은혜에 근거한다. 모든 존재는 사은에 근원하여 생긴 존재이며 영원히 독립적인 실체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사은없이 모든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생명을 영위해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은사상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으로 서로서로 없어서는 살지 못한다. 불교의 연기론이 모든 현상을 단지 인연화합에 의한 임시적 존재이며 무상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진리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교를 허무주의로 간주하게 할 여지가 있었다. 이에 비해 은사상에 근거한 원불교의 연기론은 모든 존재가 사은의 축복 속에 태어나고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절대적 생명긍정의 사상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는 역동적이면서 상호의존의 유기체임을 밝히고 모든 존재가 상생상화하는 것이 마땅한 천륜임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여성주의 윤리로 간주하는 배려와 보살핌은 보다 더 철저한 여성주의 윤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상생의 도(相生之道)이다.

 

소태산의 시대는 반/상, 적/서, 그리고 남/녀차별 등을 전제로 하는 신분제로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원망과 상극의 원한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함부로 짓밟고 약탈하는 전쟁을 일삼으면서 상호 죽임의 고리로 얽혀 있었다. 소태산은 그 모든 원인은 사람들이 근원적인 은혜를 알지 못하는 배은의 소치라고 보았다. 은사상에 근거한 윤리는 보은행을 하는 것이며, 약육강식이 아닌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에서 보는 상생과 상화와 공존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윤리는 사회신분제와 강자위주의 패권주의라면, 여성주의 윤리는 인간과 인간간에 상호존중과 평등과 상생상화가 그 이념이 된다.

 

이러한 면에서 은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여성주의 윤리에서 보면 인간을 차등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신분제는 근본적인 은혜에 위배되는 배은(背恩)적인 것이다. 소태산은 근원적 은혜를 자각하면서 자연히 평등과 상생의 새로운 사회질서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사회변혁의 원리로 제시한 「사요(四要)」이다. 소태산은 가정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둘로 보지 않았다. 평등과 상생의 사회질서는 바로 가정에서 부부관계로 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소태산은 파악하였고, 그에 따라 사요의 첫조항은 부부동권에 관한 것이다.

 


VI-3. 가부장제의 종식을 위한 남녀동권

 

1) 부부동권?남녀동권?자력양성

 

가부장제란 한 가정에서 장자가 가계를 이어가는 가장이 되고, 그 가장이 중심이 되어 가족 내의 모든 결정권과 주도권을 갖는 가족문화를 말한다. 이러한 장자중심의 가족문화는 성별역할론과 부계혈통제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의 순결이데올로기,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모성 이데올로기 등의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기제들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제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는 남녀차별, 반상차별, 적서차별, 종족차별 등의 사회계층을 이루면서 지배와 종속의 수직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남자 어른 중심의 가족문화가 가부장제의 기초가 되고, 가장 가까운 부부관계가 종속관계가 되어진다. 사실 인간차별 중 부부관계가 가장 근원적이며 가장 널리 펴져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상하관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노예해방운동 등 각종 차별로부터 일어난 인간해방운동이 전개되면서도 여성의 인권문제가 가장 늦게 제기되었다.

 

소태산은 사회의 병과 가정의 병을 둘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부부관계의 문제가 사회전반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상극(相剋)의 고리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였다.

 

소태산은 평등과 평화의 인간관계를 이루는 첫 과제를 부부평등으로 보았다. 부부권리동일은 소태산의 사회변혁 사요 가운데 첫 조항이다. 1920년에 인생의 요도로서 처음 발표된 「사요」는 부부권리동일(夫婦權利同一), 지우차별(智愚差別), 무자녀자타자녀교양(無子女者他子女敎養), 공도헌신자이부사지(公道獻身者以父事之)이다. “부부권리동일”은 1932년 『보경육대요령』을 발간하면서 “남녀권리동일”로 그리고 현재 『원불교교전』에서는 “자력양성”으로 고쳐 남녀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차별제도를 넘어서도록 그 의미를 확대하였다. 부부권리동일을 사회의 남녀권리동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로 보았고, 남녀권리동일은 남녀가 서로 의존생활을 버리고 자력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인권평등을 위한 기초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부부권리동일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여성의 무권리와 부자유를 비판한다. 구체적으로는 재산권과 사교권과 친부모부양권이 없는 것을 비판하고, 동시에 권리에 따른 의무도 지지 않음으로써 가정 국가 사회의 각 방면에 손실이 큼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부동권을 철저히 이행하여 여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모든 의무를 남녀가 똑같이 지게 하여 서로 원망이 없게 하고자 함임을 밝히고 있다.

 

원기16년에 발간된 『보경육대요령』에 나타난 「남녀권리동일」은 위의 부부권리동일을 조목화 해서 남녀가 남녀동권을 위하여 실천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놓고 있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여성의 생부모(친부모) 부양권 및 제사권, 호주권, 교육권, 사교권, 직업권과 재산권, 심신통제권이다. 남녀평등은 부부동권의 가족문화에서 출발하며, 또한 부부동권은 가족단위를 벗어 종교나 사회의 모든 면에도 두루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2) 폐쇄적 가족주의와 사회 신분제를 넘어 공동체 사회로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이 머물 곳은 바로 가정이며 여성의 미덕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비해 「부부권리동일」이나 「남녀권리동일」의 내용에서는 여성의 경제권과 사교권과 직업권을 인정하므로써 은연중 여성이 머물 곳이 가정이 주가 아니라 가정 밖의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미덕도 또한 현모양처가 아니라 여자도 직업도 갖고 사회활동도 하면서 심신의 통제권도 스스로 갖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여성의 위치가 가정에서 사회와 직장으로 옮겨지면 육아와 가사 등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사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도 자연히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사요의 나머지 세 항목은 바로 공사의 영역과 자타의 관념을 극복하고 평등과 평화의 사회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사요」의 두번째는 “지우차별(智愚差別; 현재의 智者本位)”을 말한다. 모든 사람의 인권을 평등하도록 하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지우차별을 두었다. 지우차별은 근본적인 인간차별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구하는 때에 있어서 하자”는 것이다. 지우차별의 근본 뜻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자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 남자나 양반이나 노인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과거 종족차별이 심하였던 서구의 경우 흑인이 백인을 가르칠 수 없었다.

 

아예 여자나 상민이나 흑인은 교육도 받지 못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혹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낮은 신분의 사람이 높은 신분의 사람을 대하여 아는 체를 하지 못하게 하였고 오직 복종만 하도록 하였다. 남녀권리동일에서 여자가 남녀권리동일을 실천할 만큼 뛰어나고 남자가 그에 미치지 못할 때는 여자의 가르침을 따르라 한 것도 지우차별을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지우차별의 본 뜻은 가부장적 사회신분제를 폐지하고 사회가 진화하도록 널리 인재등용을 하자는 것과 모든 일을 처리할 때 그 방면에 가장 앞선 사람의 의견을 따르자는 것이다.

 

「사요」의 세번째는 “무자녀자타자녀교양(無子女者他子女敎養; 현재의 타자녀교육)”이다. 이것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하여는 모든 후진을 교육시켜야 하고 가난한 자녀들도 교육의 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혈연중심의 가족주의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자녀가 없는 유산자와 가난하여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부모자녀의 인연을 맺게 하였다.

 

이러한 취지로 은부모시자녀(恩父母侍子女) 결의법을 제정하여 당시부터 교단 내에서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소태산은 개인적으로 자녀가 없는 유산자들이 무산자의 자녀들을 교육시키도록 권장하면서 정부와 종교와 각 사회단체들이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적극 힘쓰도록 촉구하였다.


「사요」의 네번째는 “공도헌신자이부사지(公道獻身者以父事之; 현재의 공도자숭배)”이다. 자력생활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무산자가 늙고 병든 경우에는 유산자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본의이다. 그 외에도 여성이 가정에서 사회로 위치를 옮기게 되면 어린자녀들 양육과 노인부양의 문제들은 국가나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공도자 숭배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여유 있는 사람이 자기 자녀에게만 재산을 물리지 않고 공익을 위해 쓰도록 하는 것으로 여기서도 가족이기주의를 타파하고 공도주의로 나아가도록 하는 의미에서 큰 사회공동체를 이상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남녀권리 동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부부동권의 민주적 가족문화를 만드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여성이 전담하던 가사나 양육의 책임을 국가나 사회가 나누어 책임지게 하는 사회적 보완책이 필요하므로 「사요」의 2? 3? 4항의 내용이 자연히 나오게 된다. 그러나 「사요」는 남녀동권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은 아니다. 「사은」을 기초로 하는 은사상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유기적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가부장제는 남녀를 비롯하여 인간관계를 대립과 갈등과 억압의 구조로 만들므로써 인간관계를 지배종속의 관계로 되게 하였고 또는 자타의 관념으로 배타적인 이기주의를 초래하였다. 「사요」는 은사상에 바탕한 사회윤리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인격체로써 자율적으로 삶을 유지하게 하며 나아가 모든 인간이 서로서로 은혜로운 관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사요」는 모든 차별제도를 없애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도록 하면서 동시에 폐쇄적 가족이기주의나 혈연중심주의를 넘어 열린 가족 즉 사회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요」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가족의 문제와 사회문제가 함께 해결되게 하는 것이다.


3) 여성사제와 여성회상의 꿈

 

여성을 종교적 성역(聖域)에서 배제시키기 위하여 가부장제가 정당화해 온 사상의 틀은 성/속과 영/육의 이분법이라는 것은 언급한 바와 같다. 특히 여성의 몸이 출산과 육아의 기능을 갖는다는 것은 육체에 속한 일이며 세속적인 일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여성은 성직에서 배제되어 왔다.

 

소태산은 세속적 일상생활과 종교적 영성수련을 조화시키면서 전통종교 속에서 형성되어 온 성속이분법과 영육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여성들도 주체적으로 종교수행과 조직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 두었다. 소태산은 수행법을 재가들(laity)을 위한 수행법을 출가인을 위한 수행법과 함께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현재의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이다. 동시에 출가수행자도 직업을 가지게 하는 등 출가(clergy)와 재가(laity)의 구별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이러한 요소는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출산과 육아의 기능에 묶어 두고 여성의 일을 세속적이고 사소한 일로 치부함으로써 여성을 종교적 영역에서 배제시켜 온 관행을 깨는 중요한 관점이다.

 

소태산은 가부장제 종교가 해 온 여성사제의 금기를 깨고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자격의 교무를 인정하였고, 더 나아가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교단의 주역으로 참여하도록 남녀조직을 따로 두어 여성의 지도력과 자율권을 기르도록 하였다. 그에 따라 원불교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을 남녀각각 9인으로 하는 등 남녀의 교단참여 비율을 50대 50으로 정하는 소위 할당제(?)를 시행하였다. 초기에 여성들이 자유의지를 갖도록 소태산의 지도력을 비롯하여 그의 남성제자들의 부추김도 새로운 모습으로 돋보인다. 주산 송도성은 “남녀권리동일을 하려면 자유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설교를 하였고, 삼산 김기천은 교리송에서 남녀권리동일법을 가사로 지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의식을 갖도록 노력하는 등 남성제자들의 부추김은 당시 여성들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소태산의 남녀평등의념은 단순히 여성에게도 사제 즉 완전한 종교지도자의 위상을 갖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남녀동권의 실현을 위하여 남성조직과 동등한 여성조직을 공존시키는 소위 여성회상(여성교단)을 구상하였다. 소태산은 여성회상의 준비로써 인재양성과 재산관리를 남녀별도로 하게 하였다. 1931년(원기 15년) 매년 총회에서 보고되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여성회상의 준비로써 여성인재양성 여성인력양성을 위하여 “여자인재양성창립단”을 결성하게 하여 “여자인재양성소”라는 정식기관을 두었고, 각산업기관도 그에 합당하게 분리하여 경제적 토대를 갖추어 인재양성과 재산관리를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다.

 

“本會統治更組團時 男女 各團이 分界됨을 따라 本人材養成團과 農業部 創立團 兩團도 男女를 갈으기로 한바 後日 彼此 異議가 없기 위하여 男女代表로써 추첨을 시킨 결과 本人材養成所는 여자들의 事業機關으로 되었음으므로 명칭을 女子人材養成創立團이라 칭하난 동시에 本團을 위하야 납부한 남자들의 前團金은 의연의 형식으로 받기로 하다.”

 

소태산은 남녀조직과 동등한 자격의 여자조직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그 규정를 법규화하는 『佛法硏究會統治組團規約』에 명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규약의 제2장 “남녀구별의 조직”과 제3장 “수위단의 조직 및 선거방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제3장에 있는 규약 제15조는 여성조직을 따로 두면서 그 최고 조직장도 남녀 동등한 수준으로 두기로 명시하였다.

 

“男女區別의 組織” / “회원으로 단을 조직할 때에는 남녀를 구별하여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단을 조직하고 공부와 사업의 기관도 각각설치하기로 함” “首位團의 組織 및 選擧方式” / “제7조 본단의 목적을 摠監하기로 正首位團이라 명칭하고 남자로 一團, 여자로 一團을 조직하여 모든 단의 原始가 되기로 함” / “제8조 정수위단의 자격은 교리에 대한 理解나 事業에 대한 功勳이나 是非에 대한 言論이나 信望實行이나 그외 어떠한 常識으로든지 團員內 제일 優越한자로써 조직함.” / “제15조 男女正首位團의 團長은 現 宗師主께서 兼帶하시되 創立限度 36년을 經한 後에는 男女團長을 各各選擇하야 管理하기로 함.”


창립한도는 소태산의 대각을 기준으로 108년을 교단의 창립기로 정하였다. 그리고 108년을 36년씩을 나누어 3대로 하고 1대는 3회롤 나누어 12년씩으로 하였다. 1대 1회 12년은 여러 중요제자들을 만나는 시기로, 2회 12년은 중요교서 편찬을 하였고, 3회는 각회원들의 공부를 성숙시키는 시기로 하였다. 소태산은 3회가 되기 전 원기 28년(1943년)에 열반에 든다.

 

소태산의 열반후 한국은 해방을 맞이하였고, 이어 6?25동란을 겪었다. 이러한 와중에 당시 교단의 형편상 소태산의 교단의 남녀 분리조직은 뜻은 이루지 못하였다. 원기 77년(1992년)에 남녀혼성조직으로 다시 하면서 여성회상의 꿈은 일단 실현을 보류되었다. 생각하면 교단의 형편이 어려워 남녀 힘을 합쳐야 하였다 할지라도 생각하면 미래를 위한 기약도 없이 유야무야한 감이 없지 않다.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소태산대종사는 평등과 상생의 세계를 열기 위하여 새로운 종교사상을 구상하고 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마련하였다. 과거 인도에서 처럼 소태산 당시에도 여자는 오직 결혼이 보편적인 길이었다. 그러나 소태산은 여자에게 남자와 동등한 자격과 위상으로 여성사제 제도를 두었다. 그러한 덕분에 원불교 여자교무의 경우 자존감과 자신감도 높으며 교단에 기여한 바도 크다. 원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에도 공부가 깊고 선출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명쾌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아직도 남녀권리동일법은 결혼한 교역자 생활에서도 교단의 여러 면에서 불투명한 면이 없지 않다. 필자는 그 문제를 여성교역자의 의식문제에서 우선적으로 찾는다. 즉 교단의 분위기가 우리는 이미 교리적으로 다되어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원불교의 남녀평등사상이 여성스스로 획득하는 과정이 없이 주어진 것이었으며, 차후에라도 이를 재의식하는 여성의 의식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선의 가능성으로는 사고방식 태도 관행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제가 엄연히 존속하고 있다고 느끼는 교역자들이 상당히 있다는 점이다.


V. 탈가부장제 불교를 위한 방안


여성불자들이 탈가부장적 불교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전략을 생각해 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전에 대한 확실한 이해이다. 三法印의 諸行無常과 諸法無我의 법에서 나타내듯이 불교의 공사상과 무아설은 가부장제의 망념을 끊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다. 특히 공사상에 바탕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문자의 법에 의지하지 말고 참진리를 찾으라 하고 살불살조를 주장하는 선종의 전통을 이어온 조계종이 불확실한 8경계를 운운하는 것은 진리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소치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무아설에 기본한 연기설을 허무한 법으로 만들기 보다 자비심을 일으켜서 적극적 사회참여의 가르침으로 유도하는 Joanna Macy의 경우처럼 여성주의 관점에서 그리고 적극적인 삶의 관점에서 법을 해석하자. Rita M. Gross는 해탈의 의미를 세속을 떠나서가 아니라 철저히 세상속에서의 마음의 자유를 주장한다.

 

둘째는 앞의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비구니나 재가 여성들의 교육에 힘을 쓰자. 페미니스트 의식을 가진 여성불교학자를 양성하여 그들이 불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가르치게 하자. 더불어 출가한 승려라고 여성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말자.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이상 그리고 우리의 육체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남아있는 이상 비록 비구니라 할지라도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재가여성 뿐만 아니라 비구니들의 여성의식 향상도 중요한 방법이다.

 

셋째는 종교나 불교가 규정하는 남성중심의 인간 규범을 양성성을 갖춘 인간성으로 해야 한다. 불교의 인격의 완성자는 가부장제가 남성성으로 상징하는 지혜와 여성성으로 상징하는 자비가 함께 갖춘 사람이다. 이는 남성규범의 출가생활이나 성역할론을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인식이다.

 

넷째는 재가 여성불자와 출가비구니간의 연대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신화는 가부장제 가족문화에서 생긴 것이다. 가부장제 속에서 세뇌된 여성간의 적대관계를 벗고 새로운 자매애로 가부장적 교단관행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시주자로써의 재가여성은 실질적인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불교여성들과의 연대도 한국여성불교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의 여성운동과 연대도 여성의식의 형성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관행에서 같은 여성의 처지로 고통받는 일반여성문제에도 관심을 돌리자.

 

다섯째 출가 재가여성들이 힘을 합하여 여자총무원장과 여자종정에 도전을 할 수 없을까? 만약 기어이 어렵다면 차라리 자매애로 뭉친 재가 출가 여성불자들이 탈가부장제 불교로의 법륜을 굴리기 위하여 여성교단을 남자교단과 분리하여 창립하면 어떨까?

 

여섯째 남자들의 자각도 중요하다. 남녀평등 뿐만 아니라 인간평등의 사상과 인권의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교단이 바뀌지 않는다면 교단을 떠나는 여성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미 서구종교에서 그러한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곱째 스승과 제자의 관계 더 나아가 출가자와 재가수행자와의 관계를 위계적으로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스승과 제자사이 그리고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는 파트너쉽으로 변화하여 상호영향을 주는 관계로 변화하여야 한다.

 

페미니즘과 재가불교운동은 시대의 흐름이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 교단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남녀와 성속의 이분법을 벗어나 참자아를 찾고 고통받는 중생세계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 불자의 참길이라면 자신수도를 이상화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불자가 이상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불교와 페미니즘, 공존 가능한가?>에 대한 논평

 

                                                                                                      김은희(동국대 강사)

 

불교와 페미니즘 즉, 불교와 여성주의는 함께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이 논문은 불교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며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면한 문제이다. 사실상 불교교리면에서 볼 때 불교와 여성이라는 단어조차 성립하지않는다. 불교는 평등사상이며 무차별사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불교와 페미니즘을 말해야하는가가 문제가 되는데 이러한 면을 문제제기한 것이 바로 이 논문이라고 생각된다. 불교와 여성학의 접근에서 가장 필요한 시각이며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상의교수님의 논문은 가장 기본적인 시각을 제공해주신것이라고 생각되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선 이 논문은 크게 가부장제 종교문화와 페미니즘, 불교페미니즘 실현을 위한 과제, 여성불자들의 연합과 불교 페미니스트 이슈들, 탈가부장제를 모색하는 새로운 불교의 모델-원불교의 경우에서-, 탈가부장제 불교를 위한 방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가부장제 종교문화와 페미니즘’에서는 미국의 경우를 들어 종교와 여성에 대한 연구동향과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1960년대서부터 1990년대까지 종교안에 속해있는 여성의 연구내용을 말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는 여성학자들이 전통종교의 파라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여성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여성을 규정하고 재개념화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구원을 틀을 엮고 있다. 이때 남성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정립하고, 여자들뿐아니라 남자들도 함께 주체적으로 온전한 인간으로 참여할수 있는 종교의 모습인것이다.

 

그 다음으로 종교에서의 이분법적 이원론을 말하고 있다. 세계종교들은 남자중심의 교단과 남성적 가치의 종교사상이 주류를 이루며 이것은 성/속, 영/육, 이성/감성, 남/녀, 선/악의 이분법을 낳은 것이다. 이렇게 전자인 성, 정신, 이성, 남성은 선이거나 선에 가깝고, 후자인 세속, 육신, 감성, 여성은 악이거나 잠정적인 악을 간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주체가 되고 후자는 객체로써 전자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거나 제거되어야할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불교 또한 평등한 종교지만 가부장적 남성학자나 수행자들에 의해 왜곡되면서 불교적 가부장제를 형성시켜왔다.

 

 1.논평:<이 부분이 상당히 이 논문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공존가능할 충분한 교리와 이론을 가지고 있는데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잘못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적 가부장제를 형성시킨 원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리라 본다. 불교문헌의 전승의 문제, 인도사회의 여성관이 이에 해당이 된다. 인도사회는 강력한 가부장제로 여성을 모멸적으로 취급(4성계급, 마누법전)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남성수행자들이 교단의 중심이 되면서 (결집을 통해) 불교경전에 부정적인 여성관을 기술한 것이다.


두 번째 ‘불교페미니즘 실현을 위한 과제’로서 승단에서의 여성의 평등성, 특히 8경법에 대한 문제점과 데리카타를 통해 서술한다. 재가여성불자의 입장에서 불교의 가부장적 경향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야기시켜 세속생활을 도피하고 재가를 주변화하여 현실문제를 무관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불교교리를 사회변혁을 위한 교리로 재해석해야 된다고 한다.


2.논평: <부처님의 성평등사상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문헌인 데리가타에 대한 설명이 보완되었으면 한다. 불교페미니즘 실현을 위한 과제로서 긍정적 여성관이 가장 기본이 되기때문이다. 즉, 데리가타는 73편의 여성수행자들의 체험의 시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최초의 출가자인 마하파자파티고타미를 비롯한 출가수행자들이 나온다. 비구니교단의 지도자, 계율제일인자, 정진제일인자를 비롯하여 모든 계층의 여성들까지 포용하는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읊은 시의 게송을 살펴보면 8정도, 4성제, 12처, 6근, 18계, 7각지 등 초기불교의 교리내용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했음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초기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가 여성승단에도 정통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여성불자들의 연합과 불교페미니스트 이슈들’ 부분에서는 페미니스트 불교연구의 선구자들, I.B. Horner를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의 불교여성연구의 동향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다음 여성의식성장과 더불어 페미니스트 불자들이 연대하는 것을 연도별로 그 성과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어 세계여성불자들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구미여성들과 아시아여성들의 문제제기의 차이가 있다. 즉, 구미여성들은 불교를 사회변혁을 위한 문제로 나아가며 재가수행에 관심이 깊으며 성문화의 문제, 환경문제, 종족차별문제, 성생활 등등에 관심을 가진다. 이에 반해 아시아여성불자들은 여성수행자의 빈곤과 교육문제, 충분한 수행과 출가수행자로서의 위상문제 등의 노력이 많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도 서술하고 있다.

 

  네 번째 탈가부장제를 모색하는 새로운 불교의 모델로서 원불교의 경우를 기술하였다. 조선불교혁신론을 통해 본 소태산의 탈가부장적 종교구상과 종교사상의 틀로 성차별없는 궁극적 진리, 여성수행의 길, 성/속이분법의 극복, 영/육이원론의 극복, 상호의존의 유기적 세계관에 근거한 여성주의 윤리, 가부장제의 종식을 위한 남녀동권으로서 부부동권?남녀동권?자력양성, 폐쇄적 가족주의와 사회신분제를 넘어 공동체 사회로, 여성사제와 여성회상의 꿈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부장적 모습이 남아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 이유를 여성교역자의 의식문제에서 우선적으로 찾고 있다.

 

  4.논평:<원불교의 재가여성들은 원불교의 평등사상에 따라 어떻게 현실화, 생활화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 보완되었으면 한다.>

  다섯 번때 탈가부장제 불교를 위한 방안이다. 경전에 대한 확실한 이해, 비구니나 재가여성들의 교육, 불교가 규정하는 남성중심의 인간규범을 양성성을 갖춘 인간성으로 해야함, 재가여성불자와 출가비구니간의 연대?세계불교여성들과의 연대?사회여성운동가와의 연대, 출가 재가여성이 힘을 합하여 여자총무원장과 여자종정에 도전, 남자들의 자각, 스승과 제자의 관계 더 나아가 출가자와 재가수행자와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5. 논평:<이러한 일곱가지 방안가운데 모두 중요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절실한 문제가 무엇이지 하상의교수님의 고견을 듣고싶다. 또한 이러한 방안들이 나오기위해서는 서구 페미니즘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여성사회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삼국시대에 여성불자들의 적극적인 신앙생활, 신라왕족들은 그들의 이름을 불교에서 모범을 찾았고, 니승교단의 책임자인 도유나랑이라는 직책이 있었으며, 또한 니승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있었다.

 

이어 고려에도 여성들의 경제적인 면에서나 결혼제도에 있어서 지위가 높았고 불교를 생활화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교의 가부장제에 의해 여성의 지위는 현저히 매우 낮아진다. 이것이 일제시대의 억압의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한국여성들은 민족분단, 종교다원화사회, 뿌리깊은 유교전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한국의 여성사회가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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