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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대화 협력 운동- 과거 · 현재 ·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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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0. 8.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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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대화 협력 운동- 과거 · 현재 · 미래
 

변 진 흥 (철학박사, KCRP 사무총장)

  한국의 다종교사회이다. 그러나 종교간의 갈등이 표출되기보다는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긍정적 분위기는 한국 민족이 일본 식민지배 하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종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특히 3․1만세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어둠 속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1945년 8월 15일에 민족독립을 성취한 뒤 한국 사회는 정치 사회적으로 파행을 거듭했고, 1961년에 군사 쿠데타 정권이 수립됐다. 군사정권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명목 하에 군사독재를 실시하면서 국내적으로는 극도의 억압정책을 폈다. 이처럼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의 숨통을 트는 노력이 종교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출발이 개신교의 크리스챤 아카데미 대화운동으로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대화운동을 시작하여 민주화운동의 단초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때 종교계의 대화운동이 싹터 종교간 대화협력의 계기 마련이 이루어진다.

  당시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던 강원용 목사의 주도로 시작된 한국의 종교간 대화운동은 1965년 10월에 출발했다. 천주교에서는 노기남 주교가 참여했고, 불교의 청담 스님과 유교의 이병주 박사 등이 함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모임을 갖기 시작하여 강원용 목사가 명동대성당에서 강론을 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후 이 모임은 <한국종교인협의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점차 협의체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모임에 통일교가 가입하여 주도하게 되자 천주교와 개신교가 빠져나오게 되어 한동안 정체상태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에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혁명적 성격의 운동과 투쟁이 가열되기 시작했고, 개신교의 도시산업선교회와 천주교의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이 불붙어 개신교 목사들과 신부들이 함께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사회사목적 에큐메니칼운동이 펼쳐졌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종교간 대화협력운동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sian Conference on Religion & Peace 약칭 ACRP) 제3차 총회에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용 목사 등이 참석하고, 제4차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하여 1986년에 서울에서 이를 개최하였으며,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힘을 모았던 한국내 6대 종단 즉 개신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 등이 60년대 종교대화운동의 맥을 되살리기로 하고 ACRP 총회 개최를 계기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재조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는 ACRP 및 WCRP와 연대하여 아시아 및 세계 차원의 국제적 종교대화 협력운동에 참여했고, 이에 따라 한국종교계는 세계종교의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리우환경회의(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 등에도 참여했다. 1994년부터 한국 정부는 종교지도자들과의 대화를 위해 KCRP에 <종교지도자세미나>를 개최를 요청하여 이후 연례적으로 종교계 전체를 포괄하는 민관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중반 이후 민주적 정권 수립 등 열린 사회로 이행하면서 종교계를 가장 중요한 opinion leader의 하나로 인식하게 되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교간 대화협력운동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한국에서의 종교간 협력은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가기 위한 노력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70-80년대에 종교계에서 힘을 쏟아 부었던 민주화운동의 추진은 곧바로 통일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에 종교계가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개신교는 80년대 초반부터 유럽 등 해외에서 북측과 만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 WCC의 중재로 KNCC와 북측의 조선기독교연맹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시작되었다. 천주교의 경우 1984년의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계기로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기 시작,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기구로 북한선교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불교는 1991년에 미국 LA 관음사에서 첫 남북불교모임을 개최하였고, 천도교 역시 90년대에 들어서서 남북간 접촉과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북한 천도교는 청우당을 포함하고 있어서 북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1988년 10월에는 평양에 장충성당과 봉수교회가 설립됨에 따라 가시적인 형태의 근거 설정이 뒷받침되어 북한 정권의 종교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중요한 남북관계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1995년 여름에 북한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함에 따라 북한 정권이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 식량 지원을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호소하였고, 한국 종교계가 대북식량지원을 위해 노력함에 따라 남북종교교류의 새 지평을 마련하고,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처럼 북한에는 천주교를 비롯하여 개신교, 불교, 천도교가 공인되어 종교단체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4대 종단을 연합한 조선종교인협의회(Korean Council of Religionists 약칭 KCR)가 있다. 2004년에는 4대 종단 외에 러시아 정교회가 추가되어 5개 종교단체으로 확장되었다. 조선종교인협의회 대표는 장재언 사무엘 위원장으로 장 위원장은 조선카톨릭교협회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북한적십자를 대표하는 위원장이기도 하며, 국회의원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대희년이었던 2000년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이후 남북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간에는 당국간 회담을 포함하여 적십자회담이 이루어졌고, 남북이산가족의 만남 등이 계속되었다. 종교계에서도 남쪽의 7대 종단으로 구성된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가 민간 통일운동단체인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및 통일연대와 함께 남북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를 조직,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와 8․15광복절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한국 7대 종단은 KCRP 뿐 아니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등 복수의 종교연합기구에 참여하여 종교대화 및 일치를 위한 노력을 다양한 형태로 펼치고 있다. 특히 1998년부터 ‘타 종교’라는 용어 대신 ‘이웃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종교간 대화와 협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계기를 마련한 KCRP는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강좌와 종교지도자 세미나 등 상부구조에서의 네트워크 형성 뿐 아니라 청년과 같은 하부구조에도 심층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모든 종단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종교청년평화캠프>와 <종교청년문화축제> 등의 행사를 연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종교대화 및 일치 운동은 천주교와 개신교 차원의 에큐메니칼운동 뿐 아니라 7대 종단 모두가 참여하는 종교대화협력운동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갈 것이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견인력을 발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종교계는 이처럼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세계에서의 역할도 점차 증대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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