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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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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라/배광하 신부

연중제26주일 (마태 21,28~32)
발행일 : 2008-09-28 [제2616호, 6면]

- 생각을 바꾸어라 -



가거라

<집으로 가는 길>이란 책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국제 인권감시기구 ‘휴먼 라이프 워치’의 어린이 인권분과 자문위원과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스마엘 베아’라는 분의 어린 시절 전쟁 체험기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고, 겨우 열두 살이었던 때에 피비린내 나는 광기의 전장에서 소년병으로 어린 영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년 병사들은 마약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어른들의 손에 미쳐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마엘 베아는 그 같은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는 30만 명이 넘는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살육의 현장, 그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한 어린이 강제매춘, 마약판매, 강제노동, 장기매매, 인신매매, 에이즈 전염 등 끔찍한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사는 현대에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수치입니다.

때문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있는 현장으로 우리더러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라’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수없이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겠습니다’하고는 가지 않은 복음의 그릇된 아들처럼 살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우리에게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 31~32)

실로 얼굴을 붉힐 부끄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우리가 쉽게 경멸해 버릴, 단죄했던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을 바꾸지 않음에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는 하느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 영광된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만으로 만족했던 안일과 태만과 방관자였던 무관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진정 우리가 바꾸어야 할 생각이 무엇인지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가르침입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 4~5)

‘암브로시오(340~397)’ 성인은 이렇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제 몫의 유산을 남에게 빼앗긴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유산이란 재물의 유산이 아니라 불멸하는 영혼의 유산이다.”

짧은 인생의 시간 안에 결국 후회될 선택만 하다가 두렵고 떨리는 본고향으로의 길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아버지 집으로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승에서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은,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아픔의 현장으로 직접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북한에, 아프리카에, 남미에, 동남아시아의 여러 통곡의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만은 영등포 쪽방에,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KTX 승무원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아픔 속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 않아 그들을 외면하는데 어찌 도울 수 있으며, 어찌 세상에 하느님 나라니, 기쁜 소식이니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과 마음이 있는 곳에 도움과 해결의 실마리와, 함께 한다는 사회적, 교회적 연대성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이며, 그 때에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이 세상에서부터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질책은 당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성직자와 고위 공무원, 지도자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이들의 편협된 이기주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본당, 내 교구, 내 고장, 내 나라의 좁은 안목에 사로잡혀 있는 아집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분명 보편 구원을 위한 무한한 희생이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상의 구원이셨습니다. 그분의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여 또다시 편협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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