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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낮은 곳에서 행하는 사명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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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낮은 곳에서 행하는 사명 / 배광하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마르 16, 15-20) : 환호소리 가운데 주님 오르신다
발행일 : 2009-05-24 [제2649호, 10면]

지상에서의 승천을

지구 한 편에서는 아이들이 뼈가 앙상한 채 말라 죽어가고, 이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점점 비만해진다고 아우성입니다. 학교 체육시간에 비만한 아이들이 별로 높지 않은 뜀틀을 오르지 못하고 숨 가쁘게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정신이 비만한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산사람 ‘박인식’은, 얼음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산 정상을 오르면서 가다가 중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에는 젖은 등산화를 가슴에 꼬옥 품고 잔다고 합니다. 그래야 다음날 마른 등산화를 신고 정상을 향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추워 등산화를 가슴에 안고 잠든 사이 얼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같은 등반 대원의 얼어 죽은 처절한 사진을 보고 ‘이현주’ 목사는 이런 감동의 글을 썼습니다.

“얼음산에서 머리카락도 수염도 허옇게 얼어붙은 얼굴로 하나같이 등산화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나란히 얼어 죽어간 등반 대원들의 모습, 장엄한 순교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 현장 보도사진 한 장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 우리는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오르고 있고 그 길에서 죽어갑니다. 내일, 또 내일, 내일 아침이면 우리도 죽어 있을 것입니다. 나, 무엇을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죽어 있을텐가!”

정말 중요한 것은 몸의 비만이 아닙니다.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비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폼페이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를 뒤집어쓰고 죽은, 그리하여 끔찍한 화석이 된 인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세상 것들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천상의 것이 아닌 세상 욕망을 끌어안았기에 승천은커녕 땅속 깊이 묻혔던 것입니다. 완덕에 이른다는 것은, 그리고 완덕을 향하여 나아간 성인 성녀들처럼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무엇을 자꾸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털어내는 과정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바오로 사도는 이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에페 1,19).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오체투지를 하시며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대며 마치 벌레와 같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작열하는 태양,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기어서 기어서 생명과 평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티벳의 구도자들이 이 같은 오체투지로 그 먼 성지까지 순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지에 도착한 그들의 얼굴빛은 환희와 감격으로 빛났습니다. 그것이 승천입니다. 승천은 목줄기를 뻣뻣이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늘에서 무엇인가 떨어지지 않으려나 하는 바람으로 멍청히 서있는 자세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인 것입니다.

가끔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비행기는 자신의 배를 땅 바닥에 대고 길게 달려가야 뜰 수 있습니다. 승천은 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낮은 땅에서 태어나셨고, 땅을 두루 다니시며 자신을 낮추실 대로 다 낮추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영광의 승천이 있게 된 것입니다. 승천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만 보다가 이내 자신들이 땅에서 해야 할 바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스승 예수님을 닮는 일이었습니다. 고통과 신음과 억압의 슬픔 속에 짓눌려 있는 하느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영영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늘 하나로 붙어 다니시며 함께 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우리는 자주 승천은 하늘로 오르는 것에 신경을 곤두 세웠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땅에 계셨습니다. 그것도 땅 끝에 이르기까지 계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들도 땅에서부터 승천을 찾고, 승천을 꿈꾸어야 합니다. 오늘은 좀 더 낮은 자세로 땅을 걸어야 하고, 내일은 그 땅에서 주님 분부하신 사명을 행해야 합니다. 그 같은 행위가 반복될 때, 애벌레가 기어 껍질을 벗고 날개짓을 하여 날듯이, 비행기의 이륙이 가능하듯, 우리 또한 언젠가 승천의 환희와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지상에서 흘린 모든 눈물과 땀이 승천으로 말미암아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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