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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뉘우치는 사람이 세상의 빛/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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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뉘우치는 사람이 세상의 빛/ 손용환 신부

사순 제5주일(요한 8,1-11) :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발행일 : 2010-03-21 [제2689호, 10면]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성화는 특별합니다. 그는 보이는 것만 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새로운 해석으로 성화를 그렸기에 그의 그림은 특별합니다. 그는 요한복음 8장 1-11절을 소재로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화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는 다릅니다. 이 성화에는 돌을 든 군중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무엇인가 쓰지도 않습니다. 나이 많은 자들부터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깊은 생각으로 우리의 시선을 성화에 머물게 합니다.

나이 많은 자들부터 떠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장엄한 죽음의 행렬을 하고 있습니다. 행렬의 끝에는 장례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계단 위 그림의 중심에는 사제가 있고, 사제의 오른쪽에는 향을 든 사람이 있습니다. 사제의 왼쪽에는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제의 맞은편에는 애도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습니다.

왜 군중들이 죽음의 행렬에 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남의 잘못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쉽게 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중들 중 간음한 여인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가 봅니다.

간음한 여인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제자밖에 없습니다. 또 그들만이 자기의 가슴을 치듯이 손을 자기 가슴에 대고 있습니다. 자기를 탓할 줄 아는 자만이 남의 허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자기 가슴을 치는 예수님의 손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로 보이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간음한 여인의 잘못만 탓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십니까?”(요한 8,4-5) 그래서 그의 손짓은 자기가 아닌 남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옷을 보십시오. 죽음의 색인 검은 옷이 아닌가요? 왜 검은색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남을 탓하는 자의 종말이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혹시 남을 탓하고 있는 이 사람이 아닐까요?

하지만 간음한 여인은 긴 베일이 달린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마치 새신부가 된 듯합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음을 예수님 앞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뉘우치는 사람이 세상의 빛 아닌가요? 그래서 그 여인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죄를 자기 스스로 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요? 남의 죄를 탓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허물을 깊이 묵상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여인처럼.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램브란트 作(1644).
손용환 신부·군종교구 쌍용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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