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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는다/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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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는다/ 손용환 신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마태오 10,17-22) :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
발행일 : 2010-07-04 [제2704호, 12면]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이십니다. 그분께서 어디에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사셨으며,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떻게 성인이 되셨는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떠납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을까요? 그분은 1821년 8월 21일에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김제준(이냐시오)이었고, 그분의 어머니는 고 우르술라입니다. 그분의 가족들은 종조부 때부터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그분은 신앙인의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을까요? 그분은 골배마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7살 되던 해인 1827년에 정해교난이 일어났습니다. 박해를 계기로 그분의 가족들은 골배마실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1836년 4월에 용인의 은이공소에서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7월에 모방 신부님에게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공부하셨을까요? 그분은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공부하셨습니다. 모방 신부님은 1836년 12월 3일에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를 선발하여 정하상(바오로) 등에게 부탁하여 마카오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난 탓에 두 번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을까요? 그분은 만주에서 부제품을 받으셨고,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1844년 12월 15일에 부제품을 받고, 세 차례나 조선에 입국했으며, 1845년 4월 30일에는 선교사 영입을 위해 현석문(카를로) 등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에 상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8월 17일에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사제가 되어 어디로 들어오셨을까요? 그분은 나바위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사제품을 받고, 1845년 8월 31일에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에 제주도의 해안에 닿게 되셨고, 10월 12일에는 강경부근 나바위라는 교우촌에 닻을 내리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체포되셨을까요? 그분은 순위도에서 체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주교님의 지시에 따라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1846년 5월 14일에 교우들과 함께 마포를 출발하여, 해주 연평도로 가서 중국 배에 서한과 지도를 전달하고 오다가, 6월 5일에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셨습니다.

그리고 6월 9일에는 해주 감영으로 압송되셨고, 6월 21일에는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순교하셨을까요? 그분은 1846년 9월 16일에 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그분은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 묻히셨을까요? 그분의 시신은 왜고개에 가매장되었고, 후에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 순교 후 서 야고보 등이 시신을 홑이불로 싸서 왜고개에 가매장했다가 40일 후에 이민식(빈첸시오)에 의해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

그분의 유해는 어디에 모셔졌을까요? 지금 그분의 유해는 성직자들의 요람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당에 모셔졌습니다. 1901년 5월 21일에 무덤을 발굴하여 그 유해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 안치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9월 28일에는 밀양성당으로, 1951년에는 혜화동 소신학교로, 1960년 7월 5일에는 혜화동 가톨릭대학교로 옮겨졌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성인이 되셨을까요? 여의도공원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순교한 지 11년 후인 1857년 9월 23일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 칭호를 받게 되셨고, 1925년 7월 5일에는 복자위에 오르게 되셨으며, 1984년 5월 6일에는 여의도공원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의 첫 자리에 올렸습니다.

아픔을 참고 견디는 영혼은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마태오 10,22) 크게 참는 사람만이 큰사랑을 할 수 있고, 큰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머무셨던 자리가 거룩한 땅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성지를 순례하며 그분의 큰 뜻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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