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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용서는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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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용서는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손용환 신부

남북통일 기원 미사 (마태오 18,19ㄴ-22) : 용서의 시
발행일 : 2010-06-20 [제2702호, 10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마태오 18,21)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18,22) 그렇다면 내가 용서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용서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족함 때문에 실수를 하고, 그 실수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만일 이런 실수들을 용서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한 순간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남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용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반복된 실수를 하고,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용서해주고, 친구들이 용서해주며,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늘 용서받고 있기 때문에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나도 용서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이 나에게 화를 내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화를 내면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특히 내 실수로 짜증을 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실수한 것을 용서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네 번째 이유는 용서는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살인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를 저주하고 모욕한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면 거꾸로 나도 삽니다.

그러기에 남도 살리고, 나도 살리기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서의 시를 바칩니다.

용서의 시

용서의 반대말은 증오랍니다.

믿는 사람은 용서를 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증오를 합니다.

증오를 하면 사람을 죽이고

용서를 하면 사람을 살립니다.

용서에는 사랑이 감추어져있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은 용서를 합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면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사람은 원망만 합니다.

자기만 알아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남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기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하면 행복해집니다.

자기도 남도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만나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도 남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자기의 결핍을 인정하게 되면

남의 상처도 감쌀 수 있습니다.

나도 용서받아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용서합니다.

그는 자기의 약점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의 약점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감사함도 없고, 긍정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단지 남의 탓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남이 용서해달라고 하기도 전에 용서합니다.

그는 남의 잘못 속에 숨겨진 자기의 잘못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용서는 망각도 아니고, 무시도 아니며, 덮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용서는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을 하면 섭섭함이 쌓이지도 않고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하면 또 하나의 용서를 낳습니다.

그런데도 난 용서해 주는 분량만큼 용서받는다는 것도 모르는 체

어리석은 인간이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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