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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 쟁기를 잡고 뒤만 보는 사람들/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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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 쟁기를 잡고 뒤만 보는 사람들/ 손용환 신부

연중 제13주일 (루카 9,51-62) : 그분을 따르는 길
발행일 : 2010-06-27 [제2703호, 12면]

그분을 따르는 길

그분과의 만남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자기부정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따르는 길은 고난과 역경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엘리야는 길을 가다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소를 그냥 두고 달려와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열왕기 상 19,20) 그는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어떤 사람이 그분께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복음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그분을 따르는 길의 험난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삶이 그분을 따르는 길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를 따라라.”(루카 9,59)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 그분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아버지의 장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요.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61)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고백대로 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쟁기에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그분은 그에게 하느님 나라는 차선이 아니라 우선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전부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쟁기를 잡고 자꾸 뒤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고 다음부터 그러겠습니다.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 그러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바쁩니다. 숨 쉴 틈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기면 당신을 꼭 따르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고, 내일은 친지 결혼식이며, 모레는 고모 장례식이라서 미사도 빠집니다. 그리고 제 딸이 손자를 낳아서 꼼짝달싹 못해 주일도 거릅니다.

예수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따르겠습니다. 적당히 주일이나 지키고, 판공 때 대충 고해성사나 보고, 약간의 착한 일을 하면서 지내겠습니다. 그리고 요령도 피워가면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런 우리가 그분을 따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우리가 그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분은 우리에게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고, 그리스도의 자유를 얻으라고 하십니다. 육의 욕망을 채우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육을 위한 사람은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어 파멸할 터이지만, 성령을 위한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 섬겨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때 우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셨던 그분처럼. 그러나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처럼.


손용환 신부(군종교구 쌍용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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