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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5)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디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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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디에?/배광하 신부

대림 제1주일 (루카 21, 25~28, 34~36) :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발행일 : 2006-12-03 [제2527호, 6면]

- 기다림의 계절 -

기다림, 그 영원한 설레임

주님 오시기를 깨어 기다려야 하는 설레임의 대림시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진정 환희와 찬미의 마음으로 전례력의 새해를 맞으며 아름다운 시 한편으로 글을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아침, 그대를 맞으며… 조희선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이야 / 하루를 산다는 건 / 그물을 싣고 바다를 향해 떠나는 싱싱한 희망이야 / 어젯밤의 졸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건 싫어 / 지난날의 어둔 습성으로 아침 창을 여는 건 싫어 / 살아간다는 건 설렘이야 / 하루를 산다는 건 / 인연을 따라 운명을 건져 올리는 황홀한 만남이야’

집없는 사람들을 돕기위한 <엠마우스>운동의 창시자이신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 )’신부님은 ‘죽음’에 대한 당신 일생의 명상을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음과 관련해서 이별을 말한다. 남겨진 이들에게 죽음이 이별로 경험된다면 죽는 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 죽음이란 모든 상상을 뛰어 넘는 환상적인 만남이 주는 눈부신 순간이다. 하느님과, 천사들과, 이 땅에 살았던 무수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다. 죽음은 우리네 삶에서 황홀한 순간일 수 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인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되는 그 두 가지 일은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

대림시기가 시작되는 오늘, 교회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한 복음을 읽습니다. 자못 심각하며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종말은 다시 오시겠노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재림인 것이며, 교회는 2000년 동안 그 약속을 기다리며 구세주께서 빨리 오시도록 노래 하였습니다.

때문에 종말이 오게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오게되면 맨발로 뛰어나가 환희로 맞이해야 하는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나 구세주의 재림을 그토록 환희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아베 피에르신부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황홀한 주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망쳐서는 안되는 두 가지 일, 즉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하는것과 아낌없는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 34. 36)

거지 구유

전 세계의 모든 성당에서는 이즈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뉘일 구유를 만들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들이 벌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저 자신은 본당 주임신부가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성탄 구유를 좀더 아기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은 것으로 만들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주임신부가 되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교우들에게 만약 우리 마을에 아기 예수님께서 오시면, 어느 집에 오실까를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2천 년전 집도 없이 짐승 마굿간에 초라하게 탄생하셨던 예수님,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헐벗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셨던 예수님, 그분이 이제 우리 마을에 오신다면 어느 가정에 오실지 생각하여, 우리 주변 이웃 중 가장 헐벗고 고통스러운 이웃, 큰 슬픔 중에 있는 이웃을 찾아가 작은 성탄 선물을 드리고, 혹은 위로와 말벗이 되어 주고, 그 가정을 나올 때 버려진 물건을 가져와 구유를 꾸미자고 제안 하였습니다.

매번 수많은 자금과 몇 사람의 수고로 만들어지는 구유가 아닌, 전 교우들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구유를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잘 실천해 주었고, 저 또한 그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대림 1주일부터 온갖 쓰레기(?)들이 성당에 쌓였고 그것으로 지저분한 거지 구유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성탄 자정 미사때 아기 예수님을 그 거지 구유에 안치하던 저는 아기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비록 초라하여도 전 교우들의 사랑의 실천이 깃든 구유, 모두가 동참하여 함께 만든 사랑의 구유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성바오로의 말씀대로 그것이 대림 준비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1테살 3, 12~13)

거룩한 성탄을 사랑으로 준비하는 대림시기이길 저 또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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