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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형편에 맞게, 정성을 다해/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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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형편에 맞게, 정성을 다해/배광하 신부

연중 제32주일 (마르코 12, 38~44) : 가난한 과부의 헌금
발행일 : 2006-11-12 [제2524호, 6면]

-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 -

저마다의 능력대로

사제들이 강론 시간에 가장 하기 싫은 말은 헌금에 관계된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난한 과부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보여 주듯이 교우들의 영적 신심의 발전을 위해서도, 교회의 재정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을 위해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나눔에 무척 인색했습니다. 특히 하느님께 바치는 데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집과 자가용은 그렇듯 화려하고 멋진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봉헌하는 데에는 너무 인색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수 십년 전이나 오늘이나 천 원짜리 헌금을 바치고 있습니다. 2천 원도 없는 사람의 편에서는 큰 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하루 운행 하거나 식구들과 직장 동료들과의 하루 외식 비용보다 엄청난 액수의 차이를 헌금 한다면 이는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반대되는 배은망덕이며 재화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도 성바오로께서는 분명히 꼬집어 말씀하셨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 6~8)

오죽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천 원만을 헌금하기에 천주교이다. 만주교(?)라고 바꾸면 만 원을 헌금할 것이다”라는 비아냥과 “성당 들어가는 입구에 성수대가 있어서, 그 축성된 소금물을 찍고 들어가기 때문에 자린고비가 되어 헌금을 짜게 내는 것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생겨 났겠습니까?.

내가 하느님께 형편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봉헌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지, 억지로 마지못해 내는 것은 반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겉치레 뿐, 정성이 깃들이지 않던 예물을 바치던 것을 단호히 배척하셨던 그 진노의 말씀을 오늘 우리의 정성없는 마음을 보시면 또다시 호통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아모 5, 21~22)

사랑했던 교우들

예전 첫 주임신부로 부임했던 본당에서는 주교님의 명으로 새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교우들 약 600명이 구제금융때 성전을 짓기 위해 정말 많이 고생 하셨습니다. 워낙 공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저인지라 교우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성전을 짓지 않으리라 다짐 하였습니다. 그냥 저냥 머물다 떠나려는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도회지 큰 본당으로 모금운동을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착하디 착한 교우들의 정성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할머니 한 분이 오시어 당신께서 그동안 남의 밭에 나가 품을 팔아 모은 돈을 자신은 늙었으므로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성전을 남겨주어야겠다는 각오로 몇백만 원은 족히 되는 돈을 봉헌하셨습니다.

또다른 날은 한 분 할머니께서 당신 평생 소원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시는 것이었는데, 이제 성전을 짓는다면 그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겠냐며 성지순례를 위해 모아 두셨던 돈을 봉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겨울방학 동안 신문 배달하여 모은 돈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골 성당 교우들을 위하여 더는 부담을 드리지 말자고 결심하여 도회지 성당으로 새 성전 짓기 모금운동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끔은 그때의 어려웠던 기억을 되새기며 사랑했던 교우들의 마음과 정성이 없었다면 새 성전이 완성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교우들의 정성이 미천한 사제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온 정성을 다한 봉헌은 얼마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아주실까 생각합니다.

그 착한 교우들은 모두 독서와 복음의 과부들이었습니다. 죽을 처지임에도 엘리야를 위하여 밀가루 한 줌과 기름을 썼던 사렙타 과부였고, 가진 생활비 전부를 봉헌한 복음의 과부였습니다. 그분들 모두에게, 아니 우리 모두의 정성에 주님께 그 옛날 엘리야 예언자 시대의 기적이 재현되기를 청하여 봅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1열왕 1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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