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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열심한 평신도에게 박수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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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열심한 평신도에게 박수를/배광하 신부

연중 제33주일 (마르코 13, 24~32) :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발행일 : 2006-11-19 [제2525호, 6면]

- 착한 그리스도인들 -

구별해 내는 일

작가 공지영(마리아) 선생은 ‘착한 여자’에서 ‘구별해 내는 일’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구별해 내는 일이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사랑하지 않았으면 한낱 군중일 뿐인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그 사람을 구별해 낼 줄 알아지는 것이다. 마치 쌍둥이 어머니가 쌍둥이형과 동생을 구별해 내는 것처럼…. 그러니 인간을 창조한 신은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분은 모두를 구별해서 다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모든 인간을 하나 하나 사랑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각 사람의 몫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살 때, 과연 자신의 행실이 어떠하였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마르 13, 27)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가 놀라고 있듯이 평신도들의 힘이 대단한 나라입니다. 특별히 신심적인 면에서는 아주 놀랍습니다.

여러 강의 등으로 매주 서울에 올라가게 되는데 지하철을 타다 보면 묵주기도를 바치는 교우들을 근래에는 더욱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제인 제가 오히려 더 부끄럽습니다. 철야기도 모임에 초대되어 갈 때에도 그러합니다. 그 긴 기도 시간동안 그렇게 열심히, 간절히 기도 드리는 열심한 교우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들 가정사의 일이든, 세상을 위한 보편적 일이든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 선택받기 위한 착한 교우들의 열심과 열성이 있기에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몫과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탈렌트를 값지게 키워나가는 평신도들의 열심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는 여러 신심운동들도, 이를테면 레지오, ME, 꾸르실료 등도 이 땅에서만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모든 성장의 뒤에는 진정 천국을 향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에는 모든 성당의 신부님들께서 아낌없는 갈채의 칭찬을 평신도들에게 쏟아 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운 님 만나는 날

신학교 4학년 때 군대에 입대하는 동창들을 위하여 가을 음악회에 함께 불렀던 노래가 문득 생각이 납니다.

군대에 가서도 우리가 간직했던 그 소중한 사제의 꿈이 변치 말자고 숙연한 약속으로 불렀던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 작사 작곡의 ‘봉숭아’였습니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 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거쳐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그때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착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불렀습니다. 세상을 위한 구원의 별빛이 될 꿈을 안고 말입니다. 그 같은 느낌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안고 살았으면 싶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 모두가 만나게 될 그리운 님, 주님의 모습을 그리며 말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아가 3, 4)

올해도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두고 세월이 흐릅니다. 쏜살같은 세월, 유수와 같은 세월이라 말들 합니다.

우리의 옛 신앙의 선조들은 가버리고 말 세상에 대하여 그리 큰 미련이 없으셨습니다. 오직 하나, 꿈에서도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은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그리운 만남의 날을 위하여 세상 온갖 시련을 이겨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굳게 믿고 또 믿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하신 약속이라 굳게 믿으신 것입니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나리라.” (다니 12, 3)

그리고 기적같이 만난 주님을 붙잡고 끝내 놓지 않으셨습니다.

세월이 흐릅니다. 우리가 또 다시 붙잡아야 할 가장 소중함을 흐르는 세월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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