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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7) ‘참된 나눔’으로 성탄 준비해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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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참된 나눔’으로 성탄 준비해야/배광하 신부

대림 제3주일 (루카 3, 10~18) : 세례자 요한의 설교
발행일 : 2006-12-17 [제2529호, 6면]

- 나눔의 기쁨으로 오는 축제의 날 -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

해마다 맞이하는 성탄의 축제이건만 언제나 성탄은 가슴 설렘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다는 사실은 진정 가슴 뛰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맞이하는 성탄의 기쁨이 온 세상 모든 이들을 이토록 설레고 가슴 뛰게 만드니, 훗날 우리들이 천상에서 맞이하게 되는 참 성탄은 얼마나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인가를 자주 묵상하여 봅니다. 바야흐로 성탄의 막바지에 다다른 교회는 그 기쁨을 스바니야 예언서를 통하여 환희로 노래합니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스바 3, 17~18)

이 지상에서의 성탄도 기쁘게 맞이해야 하겠지만 저 영원한 천상의 기쁜 성탄을 위하여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야 할 몫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신앙인입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영원한 천상 성탄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 얼마나 많은 불쌍한 이들을 예수님으로 알고 사랑을 나누었느냐가 심판의 열쇠가 된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시기를 뺀 연중 모든 장례미사의 전례에서 듣게 되는 ‘최후의 심판’ 복음 내용(마태 25, 31~46 참조)입니다.

이 같은 성경 말씀을 교회가 장례미사의 복음으로 읽고 있는 까닭은 죽은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장례미사에 참례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죽은 망자의 시신을 곁에 두고 살아있는 이들 역시 곧 그 길을 따라갈 터인데, 그때 가서야 후회하지 말고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새겨들으라는 경고요, 깨우침인 것입니다.

교회는 오시는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며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2천년 전 탄생하신 예수님의 성탄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전례의 의미도 있겠지만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있는 교회가 참으로 준비해야 할 내용을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나눔이 성탄을 준비하는 길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에 성탄 노래가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게 됩니다. 성탄과 함께 불우이웃을 돕겠다며 한겨울 추위에 애쓰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애씀으로 많은 가난한 이들이 가슴 따뜻한 겨울과 성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됩니다.

그때 도시의 빈민 천여 명이 슬픈 성탄을 맞이하며 먹을 것이 없자, 구세군의 ‘죠셉 맥피’라는 사람이 부두로 나가 근처 식당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연결하여 세운 뒤 거리에 내걸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얼마 되지 않아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충분한 기금이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국이 해마다 성탄절 즈음에 실시되는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은 세례자 요한에게 자신들이 심판의 날을 준비하고 징벌을 피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근심어린 얼굴로 묻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능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 11)

예수님께서 병자와 불구자들을 보실 때 언제나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고 복음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측은지심이 드셨다는 것인데, 그리스 원문의 신약성경은 가엾은 마음을 ‘창자가 찢어질듯 한 아픔’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이들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이 아프지 않거나, 갈가리 찢겨지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다면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신들만의 축제인 것이며 그 축제에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는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필리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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