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 흔들림 없는 믿음과
그리스도께 대한 무한한 찬양 강조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첫 부분은 필리피 신자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한다.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필리 1, 4~5)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회 신자들 생각만 해도 기쁘다. 그만큼 필리피 신자들을 생각하는 바오로 사도의 마음이 각별한 것이다. 필리피 교회는 코린토, 테살로니카 등 다른 교회들 처럼 말썽이 일어나는 곳도 아니고 분열이 있는 교회도 아니다.
오직 바오로 사도와 함께 꾸준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인 그런 교회다. 그리고 늘 바오로 사도를 걱정해 주고, 하느님 사업이 잘 되도록 협조한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깨달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다른 교회에 보낸 서간은 대부분 잘못을 꾸짖고, 행실을 바로잡기 위한 내용이었지만 필리피 서간은 성찰한 내용과 묵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꾸짖을 내용이 없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 그런데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필리 1, 20)
바오로 사도의 절대 목표는 ‘살더라도 혹은 죽더라도’ 오직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것도 바오로 사도에게는 이득이 된다.(필리 1, 21 참조)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깨달은 것이다.
물론 바오로 사도도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필리 1, 22)라고 말한다. 약간의 갈등도 보인다.
하지만 이내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여러분의 믿음이 깊어지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남아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나 때문에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필리 1, 23~26)라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에게 예수의 재림은 그 때가 언제든 상관이 없다. 죽음 이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죽는 것도 좋고, 살아서 신자들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는 것도 좋다.
바오로 사도는 죽음도 담대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많은 이들이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는 그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도 죽음 못지 않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어떤 신자들은 빨리 죽어서 하느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조금 덜’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죽는 그 날까지, 하느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진정으로 하느님과 일치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보든지 이렇게 떨어져 있든지 간에, 여러분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한뜻으로 굳건히 서서 한마음으로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함께 싸우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대자들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표이며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표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전에 나에게서 보았고 지금도 나에 대하여 듣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여러분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필리 1, 27~28)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믿음은 투쟁이다. 필리피 교회라고 해서 분열의 위기가 없었겠는가. 반대자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필리피 교회는 영적인 것이 아니면 미동도 하지 않는다. 흔들림이 없다.
세속적인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설쳐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필리피 교회는 이처럼 차분하고 평화스럽고, 영적 기운이 가득했던 교회다.
필리피 교회는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